M&A 나서는 화학업계 "안 바꾸면 죽는다"

    입력 : 2016.06.15 09:34

    한화·LG그룹 화학계열사, 美 자동차 부품사 인수 나서… SK도 中 화학업체 인수 검토


    현금흐름 좋아 경쟁 안밀리지만 국제유가 50달러대 회복되면서 美 셰일가스 등 재가동 가능성
    공급과잉 시기 다시 올 우려


    국내 화학업체들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인수합병(M&A)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화학이 먼저 움직였다. 종자(種子) 사업을 하는 팜한농을 사들이며 바이오 사업을 시작한 것. 이달 들어서는 한화그룹과 LG그룹이 미국 자동차 부품사인 콘티넨털 스트럭처럴 플라스틱스(CSP) 인수전에 각각 뛰어들었다. 최근 검찰 수사로 불발됐지만 롯데케미칼도 지난 7일 미국 화학 회사인 액시올(Axiall) 인수를 추진했다. SK이노베이션도 중국 화학사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 업계가 일제히 인수합병에 나서는 표면적 이유는 '신사업 확대와 시너지 창출'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 지난해 호황으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지금 당장 사업 재편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에서 사업 재편을 하지 않으면 조만간 최신 설비로 무장한 중국 업체들에게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


    업체마다 M&A 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LG와 한화는 고부가가치 신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롯데와 SK는 현지 업체를 인수해 북미·중국 등 큰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롯데와 한화는 지난해 삼성그룹으로부터 석유화학 계열사를 인수한 데 이어 추가적인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지금 사업 재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제 유가 상승세 때문이다. 석유화학 산업의 원료인 국제 유가는 현재 배럴당 50달러 안팎이다. 지난해 7월 이후 1년여 만에 50달러 선을 회복했다.


    유가 상승은 화학 업계에는 큰 악재다. 완제품 가격과의 격차가 줄어 수익성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화학 업계에서 수익성 지표로 삼는 '에틸렌스프레드'를 보면 올 초에는 에틸렌 제품 1t을 팔 때 800달러 가까이 남았지만 이제는 같은 제품을 팔아도 650달러밖에 남기지 못한다.


    유가가 60달러대로 오르면 사정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가동을 중단했던 미국 셰일가스 업계와 중국 석탄 업계가 다시 제품 생산에 들어가면 공급 과잉이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60달러로 오르기 직전인 지금이 사업 재편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승자의 저주 피할 수 있을까


    국내 화학 업체들이 M&A 시장에 나서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해 저유가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실탄이 두둑한 만큼 향후 외국 업체들과 인수 경쟁이 붙어도 국내 업체들이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얼마에 인수하느냐가 각 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가격을 과도하게 웃도는 금액에 사들이면 인수에 성공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인수 가격이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단 국내 화학사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독일 바스프, 일본 미쓰비시 등 글로벌 화학사들도 M&A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더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하는 매각 주관사와 피인수 기업이 이런 상황을 놓칠리 없다"며 "시장에서 절박한 건 국내 업체들인 만큼 가격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