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리 시대'... 상가·강남 재건축으로 돈 몰린다

    입력 : 2016.06.14 09:38

    ["수익률 3~4%가 어디냐"… 투자형 부동산 인기]


    초저금리 유지했던 美·유럽도 도심 상업용 부동산에 자금 몰려
    송파 재건축아파트 올 5% 급등… 일반 아파트는 가격 변동률 제로
    "실물 경기 살아나지 않으면 강남 재건축·상가도 위축 우려"


    "수익률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해도 고객들이 상가나 재건축 아파트만 찾습니다. 1년 전만 해도 강남 상가를 살 때는 수익률이 적어도 5%는 돼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3~4%도 상관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서 시중은행의 PB(프라이빗뱅킹)센터와 부동산투자자문센터는 비상이 걸렸다. 기준금리가 연 1.25%까지 떨어지자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상담 전화가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장은 "고객 중에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상가를 그나마 안전하면서도, 은행 금리 이상을 보장해주는 투자 상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상 최저 금리 행진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가와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같은 투자형 부동산에는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지방 주택시장 등에선 오히려 가격이 떨어져 '경고등'이 켜진 곳도 등장했다. 일각에선 2000년대 후반 경제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정부가 제로(0) 금리와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대도시의 상업용 건물 등 투자용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영국, 상업용 부동산값 폭등


    2000년대 후반 이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던 미국과 유럽에선 시중 자금이 도심의 상업용 부동산과 고가(高價) 주택 시장으로 몰렸다. 미국 뉴욕의 투자자문회사 그린스트리트자문이 집계하는 미국 '상업부동산 지수'(CPPI)는 2009년 4월 61.2포인트로 바닥을 찍은 뒤 두 배 이상 치솟아 현재 124.8포인트를 기록 중이다. CPPI 집계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최고치다. 종전 최고치는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7월의 100포인트였다.


    지난 8일 올해 서울 최고 평균 청약 경쟁률(45대1)을 기록하고 마감한 서울 강남구 개포택지개발지구 '래미안 루체하임' 모델하우스가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저금리 효과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같은 투자형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삼성물산 제공


    맨해튼의 상업용 부동산 중개업체인 'PD자산운용'의 일라드 드로어 대표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연 5~6%대이던 맨해튼 사무용 부동산 투자 수익률이 지금은 4%대 초반까지 낮아졌는데도 매수자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며 "고객들은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성이 아무리 나빠도 은행 예금 금리보다는 높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남'에 해당하는 뉴욕 맨해튼의 집값도 강세다. 부촌(富村)으로 꼽히는 어퍼웨스트 지역의 137㎡, 방 2개짜리 아파트는 최근 250만달러(약 29억300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3.3㎡당 가격이 8400만원에 이른다. 작년 같은 시기만 해도 시세가 200만달러 안팎이었다. 올해 1분기 맨해튼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작년 동기 대비 18% 급등한 205만달러를 기록했다고 NBC 뉴스가 최근 보도했다. 영국의 수도 런던 집값도 저금리로 인해 천정부지로 올랐다. 런던의 올 1분기 평균 집값은 54만6000파운드(약 7억5000만원)로 작년 1분기 대비 11.5% 급등했다. 작년 한 해 동안 12.2%가 뛰었고,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보다 50% 이상 높다.


    ◇강남 재건축·상가 투자 인기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저금리로 투자처를 찾아 헤매는 시중 자금이 상가와 재건축 단지로 몰리는 것이다. 3년 전 서울 강남 지역의 대지 면적 300㎡ 상가(2종 주거지 기준)는 25억~30억원 선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올 들어 4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고액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50억~100억원대 상가는 매물 자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현재 강남 일부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부동산 거품(버블)' 논란이 벌어졌던 2000년대 후반의 역대 최고가 기록을 돌파했다.


    부동산리서치회사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올 들어 5.28% 올랐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3.66%, 2.39%씩 뛰었다.


    ◇양극화 더 심해질 수도


    저금리의 수혜를 모든 부동산 시장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같은 강남이라도 재건축 아파트와 일반 아파트 간에는 온도차가 확실하다. 송파구의 경우 재건축 아파트는 매매가격이 올해 5% 넘게 급등했지만, 일반 아파트는 가격 변동률이 제로(0%)다. 강남구와 서초구 일반 아파트도 가격 변동률이 각각 1.12%와 0.99%로 재건축 아파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기도는 0.51% 오르는 데 그쳤고, 대구는 집값이 오히려 1.34%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중 자금은 충분하지만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실물 경기가 극도로 위축됐고, 지방 부동산 시장은 주택 공급 과잉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어 부동산 시장 전체로 자금이 흘러들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분간은 저금리 현상으로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진행되겠지만, 실물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강남 재건축도, 상가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