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짖은 '워치도그'... 회계법인이 대우·STX조선 不實 키웠다

    입력 : 2016.06.13 09:45

    [구조조정의 적들] [4] 회계법인, 유명무실 감사


    - 제때 '비상벨'만 눌렀어도…
    대우조선해양 감사했던 안진, 2010년부터 '부정적' 의견 안 내
    삼정, STX조선해양 맡으면서 2조3000억 분식회계 적발 못해


    -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
    부실 책임져야 할 회계법인이 조선업 구조조정 실사 맡기도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 A씨는 지난해 말 안진·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STX조선해양 실사 보고서를 받고 눈을 의심했다. 채권단이 4500억원 정도만 더 지원하면 STX조선해양이 2018년까지 살아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무리한 저가 수주 탓에 한 척당 적어도 100억원 정도 손실이 나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런데도 저가 수주라는 내용은 빼고, 수주가 늘어나면 회사가 살아난다는 식의 보고서를 믿고 돈을 더 지원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은 실사 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며 지난 1월 채권단을 탈퇴했다.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만 '살아날 수 있다'는 실사 보고서를 근거로 이미 4조원을 쏟아부은 STX조선해양에 45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불과 4개월 후인 올 4월, 삼일회계법인은 다시 STX조선해양 실사에 들어갔는데 완전히 다른 의견을 냈다. 넉 달 전만 해도 4500억원만 지원하면 살아난다고 하더니, '내년까지 1조2000억원이 부족하다' '5월 말이면 부도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한 달 후 STX조선해양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산업은행은 '헛돈' 4500억원을 날렸고 STX조선해양은 반복되는 저가 수주로 손실이 불어나 회생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회계법인은 기업의 외부 감사인을 맡아 회계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감시한다. 기업의 내밀한 부분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에 판단 잣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선진국 자본시장에서는 이들을 '워치도그(감시견)'라고 부른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실사 대상이 되는 기업 입맛에만 맞는 회계 보고서를 내는 일이 부지기수다.


    ◇회계법인 "고객님 입맛대로"


    막대한 손실을 숨겼다가 최근 5조3000억원대 자구안을 확정한 대우조선해양과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 뒤엔 '비상벨'을 제때 누르지 않은 부실 회계법인이 있었다. 지난 2010년부터 대우조선해양의 외부 감사를 맡아온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결과에 '부정적'이나 '의견 거절' 등의 의견을 낸 적이 없다. 지난 2014년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업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라고 발표하자 금융시장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때도 안진은 회계 보고서에 문제가 없다며 '적정' 의견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올 3월에 가서야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2조원은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한다며 정정을 요구했다. 사실상의 분식회계로 구조 조정 적기를 놓쳐버린 피해는 채권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떠안았다.



    STX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STX조선해양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총 2조3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했는데 감사인이었던 삼정회계법인은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지난해 분식회계로 징계받은 대우건설은 수년에 걸쳐 손실을 은폐했지만 외부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일했던 한 회계사는 "실사를 마친 후 저녁 자리에서 회계법인과 기업 담당자가 만나면 뻔히 보이는 손실을 '이번엔 반영하지 말자'는 식의 대화가 흔히 오간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이 회계감사나 실사 업무 외에, 세무나 기업 컨설팅 등 비(非)감사 업무를 겸임하기 때문에 엄격한 실사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감사는 수수료가 1억~2억원 정도지만, 컨설팅 수수료는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회계감사를 까다롭게 해서 고객사 눈 밖에 나면 수십억원이 날아가는 판이라 '눈 꾹 감고 넘어가자'는 관행이 판친다. 금융 당국은 이달 초에야 회계법인이 같은 회사에 대해 회계 감리와 컨설팅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부실 책임 회계법인에 또 실사 맡겨


    황당하게도 현재 진행 중인 기업 구조 조정과 관련한 기업 실사 작업도 부실 책임이 있는 회계법인 손에 다시 맡겨지고 있다. STX조선해양 부실 감사에 책임 있는 삼정회계법인, 그리고 대우건설의 부실 감사에 책임 있는 삼일회계법인이 최근 조선사인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실사를 맡아 조선업 구조 조정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회계법인의 부실 회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인 점도 문제다. 분식회계, 부실 감사에 대한 과징금은 20억원이 한도다. 3800억원 분식회계가 적발된 대우건설도 과징금 20억원만 부과됐다. 미국에선 분식회계가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분식회계에 대해 최대 약 150억원 과징금을 부과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이를 묵인한 회계법인 CEO에게 각각 25년·20년(한국은 7년· 5년)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