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얽힌 CEO들, 메스 들기 주저... '구조조정 히딩크' 안 보인다

    입력 : 2016.06.10 09:56

    [구조조정의 적들] [3] 현상유지 급급한 CEO들


    STX조선 부실 빠뜨린 CEO를 협조 필요하다며 교체 안해… 호황기 경험뿐인 CEO 앉히기도
    GM·JAL·말레이시아항공 등 외부 전문가 CEO가 과감히 수술… 단기간에 흑자 전환시켜


    조선업이 호황에 취해 있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강덕수 회장 주도하에 확장 경영에만 매달려 왔던 STX조선해양은 급격한 자금난에 빠졌다. 결국 2013년 7월 채권단 공동 관리(자율 협약)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부실 경영의 주역인 강 회장을 CEO(최고경영자)로 유임시켰던 것. 주채권 은행이던 산업은행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기존 오너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권단의 기대는 빗나갔다. 강 회장은 조선소 매각 등 과감한 구조조정 대신 선박 건조 자금을 추가로 요청했고, 채권단은 1조8500억원을 더 쏟아부었다. 그래도 회사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금난은 갈수록 심해졌고 채권단은 그해 9월이 돼서야 강 회장을 퇴임시켰다.



    채권단은 '조선업을 잘 아는 전문가'라는 이유로 대우조선해양 출신 정성립 사장을 투입했다. 그는 2001년부터 6년간 한국 조선업의 초절정기에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지내 불황기의 구조조정 경험이 없었다. STX조선해양에서 작년 4월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정 사장이 1년 4개월 동안 한 일은 기술연구소를 폐쇄하고 해외 조선소를 매각한 정도였다. 회사의 경쟁력을 살리는 과감한 구조조정에는 실패했다. 결국 STX조선해양은 지난달 7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국내에선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기존 경영진을 유지하거나 같은 업종의 전문가에게 사령탑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우조선해양도 2001년 산업은행으로 편입된 후 거쳐 간 CEO 3명 모두 내부 인사였다.


    하지만 해외 구조조정 성공 사례를 보면 대부분 실무 총책인 CEO는 '해당 분야'가 아닌 '구조조정' 전문가이다. 본지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공동으로 제너럴 모터스(GM), 크라이슬러, 일본항공(JAL), 말레이시아항공 등 해외 구조조정 성공 사례를 분석한 결과 업계의 이해관계와 관행에서 자유로운 '외부의 구원투수' 투입이 가장 중요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를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부 구조조정 전문가 필요


    GM과 크라이슬러, JAL, 말레이시아항공 등의 구조조정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다. 호황을 맛봤던 업계 전문가 대신 불황기 구조조정 경력이 풍부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외부 인사에게 실권을 맡겼다는 것이다.


    일본 최대 항공사 JAL이 대표적. JAL은 2010년 1월 2조3000억엔(약 34조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경영자는 IT(정보통신) 기업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회장. 그는 전 직원의 30%(1만6000명)를 감원하고 67개였던 국내 노선 중 적자를 보던 20개를 없앴다. 이 작업을 단 1년 만에 해치웠다. 이나모리 회장은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항공은 외국인 CEO를 투입했다. 독일 출신인 크리스토프 뮐러 사장을 영입했다. 그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항공사 '에어링구스'를 흑자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말레이시아항공에서도 전체 직원의 3분의 1인 6000명을 감축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1년 만에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드림팀을 꾸려라"


    2008년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GM의 구조조정 성공은 '드림팀'이 주역이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으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스티븐 래트너(64)와 구조조정 컨설턴트인 앨버트 코치 알릭스파트너스 부회장이 주도한 14명의 '태스크포스팀'이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미국 철강노조 고문으로 20년간 50개 기업의 파산 업무를 처리했던 론 블룸, 컨설팅 회사 매킨지 출신의 다이애나 패럴, 국제 통상 전문가인 브라이언 디즈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채권단과 노조, 자동차 딜러 등 이해 당사자들과의 합의를 전광석화처럼 이끌어냈다.


    JAL과 말레이시아항공에도 '드림팀'이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JAL 구조조정을 위해 컨설팅 회사 KCSS의 모리타 나오유키 부사장을 영입하는 등 외부 인사를 적극 활용했다. 뮐러 사장도 핵심 수뇌부 4명 중 3명을 아일랜드 저가 항공사 출신,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출신 등 외부 인사로 채웠다. 이병남 BCG 서울사무소 대표는 "구조조정 책임자는 노조, 정부, 국민 여론을 조율하고 노련한 경험도 필요하다"면서 "국내에 적임자가 없다면 해외에서라도 데리고 오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