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제2의 전성시대'

    입력 : 2016.06.10 09:27

    PC온라인 게임 종주국 이후 한때 주춤… 개발 능력 갖춘 한국 게임사들
    속속 모바일 게임경쟁 뛰어들며 반전 시작… 인공지능·가상현실의 게임 접목 등 활발한 도전


    지난달 25일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가 일본에서 애플 앱스토어(앱 장터) 게임 매출 4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 게임사가 '라인'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하지 않고 일본에서 직접 게임을 서비스해 앱스토어 매출 5위 안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세븐나이츠는 올 2월 일본에 첫선을 보인 뒤 100일 만인 지난달 19일에 4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 게임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일본은 '외국산 전자제품의 무덤'으로 불리는 나라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일본 소비자들은 유독 자국 게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일본 내 전체 모바일게임 매출의 90%가 일본 게임에서 나왔을 정도다. 현재 앱스토어 매출 10위 안에 오른 외국산 게임은 세븐나이츠가 유일하다.


    웹젠의 모바일 게임 '뮤 오리진'은 기존 인기 PC게임의 캐릭터를 모바일로 재탄생시켜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한국이 '게임 강국'으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한때 PC 온라인게임의 종주국(宗主國)을 자처했지만 스마트폰 시대 들어서면서 미국·유럽·일본의 게임업체에 뒤처지며 후발 주자로 밀렸다. 하지만 우수한 개발 능력을 갖춘 한국 게임사들이 속속 모바일 게임 경쟁에 뛰어들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글로벌 히트작이 나오는 한편 인공지능, 가상현실과 같은 신기술을 게임에 활용해 차세대 게임 시장을 선점하려는 도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외 지역별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모바일게임으로 선전


    일본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대폭 수정한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한국 게임사들은 세계 지역별로 다른 이용자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해 모바일 게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넷마블은 국내에서 2년 넘게 서비스한 세븐나이츠를 일본 진출을 위해 대폭 수정했다. 게임 속 캐릭터의 능력을 중시하는 한국·중국과 달리 일본 이용자들은 캐릭터의 생김새에 신경 쓴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컨대 일본판에서는 손오공 캐릭터를 미소년으로 바꿀 수 있는 의상을 무료로 준다. 원숭이 얼굴에 여의봉을 든 손오공이 일본 이용자들의 눈에 중국풍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는 게임 안에 다양한 내용을 모두 넣어놓고 각 지역 사용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일대일 대결을 좋아하는 한국·중국 이용자, 자기 캐릭터를 꾸미는 데 집중하는 일본 이용자, 퍼즐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북미·유럽 이용자가 모두 만족할 '종합 선물세트'다. 2014년 출시한 서머너즈 워는 최근 글로벌 6000만 다운로드, 누적 매출액 6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인기다.


    기존 인기 캐릭터를 내세워 해외시장을 공략하기도 한다. 웹젠은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PC게임 '뮤 온라인' 캐릭터를 모바일게임 '뮤 오리진'으로 만들어 2014년 12월 중국에 출시했다. 현지 회사에 개발·서비스를 맡기고 웹젠은 로열티를 받는다. 2014년 734억원이었던 웹젠 매출은 뮤 오리진의 히트로 작년 2422억원으로 늘었다. 중국은 구글의 앱 장터가 서비스되지 않아 국내 게임사가 직접 진출하기 까다롭다. 이에 따라 현지 제휴사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중·소 규모 게임사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반 휴대전화(피처폰) 시절부터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온 '모비릭스'는 스마트폰을 발판 삼아 시장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여러 게임을 구글·애플의 앱 장터에 올리고, 새 게임을 내려받은 사용자가 일정 점수를 올리면 다른 게임용 무기를 주는 식의 '교차 마케팅'을 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 200여국에서 2500만명이 모비릭스의 게임을 이용한다. 직원 수 15명의 개발사 '다에리소프트'는 지난해 9월에 전 세계의 다른 이용자와 일대일로 대결하는 야구 게임 '프리스타일 야구2'를 내놨고, 현재 230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 중 88%가 해외 이용자다.


    ◇PC 게임과는 '게임의 룰'이 다른 모바일 시장


    각 지역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내용을 선택하도록 한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글로벌 시장 공략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면 이용자를 모을 수 있었던 PC 게임 시절과 달리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앱 장터를 운영하는 구글·애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모바일 게임에서 가장 효과적인 홍보 전략은 앱 장터 순위 10위 안에 드는 것"이라는 말이 업계에 통용될 정도다. 그래야 게임이 소비자에게 노출되고 다운로드된다는 의미다.


    게임을 상위권에 올리려면 거액의 마케팅비를 쓸 수 있는 대형 게임사가 유리하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바일게임 매출 세계 1위 핀란드 '수퍼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작년에 모바일 게임 3개로 23억달러(약 2조662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1위 모바일 게임사 넷마블의 2배가 넘는다. 수퍼셀은 작년 초 수퍼볼(미 프로미식축구 결승전) 광고에만 100억원을 쓰는 등 천문학적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 결과 올 3월 새로 선보인 '클래시 로얄'은 한 달 만에 8000만달러(약 926억원)를 벌어들였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중국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중국은 외국 모바일 게임을 사다가 거대한 내수 시장에 서비스하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개발 기술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평가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전에는 중국이 우리 게임을 다 사간다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한국이 중국 게임을 들여와 서비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인공지능 게임 시장 선점 나서


    엠게임에서 가상현실용으로 개발 중인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전문가들은 한국 게임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로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IP)의 효율적인 활용을 꼽는다. 모바일 게임은 사용자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미 사용자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송요셉 책임연구원은 "최근 히트한 영화 중에는 만화 등의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들이 많다"며 "게임에서도 유명 IP를 확보하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 전문 개발사 네시삼십삼분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배트맨·수퍼맨 캐릭터를 보유한 워너브러더스와 최근 손잡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게임업계에선 가상현실(VR)이나 인공지능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시도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PC·게임기 위주의 게임 시장을 바꿔버린 것처럼 또 한 차례 지각변동이 올 것으로 보고 준비에 나선 것이다. 엠게임은 어린 소녀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내용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를 가상현실 버전으로 개발 중이다. 엠게임 김은지 팀장은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실제처럼 즐기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 기술로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게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PC 온라인 게임의 강자 엔씨소프트도 최근 가상현실 기술 전문가를 모집하고 게임 개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