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0조원... K뷰티 열풍, 화장발이 아니었다

    입력 : 2016.06.09 09:52

    [오늘의 세상]


    국산 화장품 생산액 첫 10조… K뷰티 2.0 시대 열렸다


    - 화장 넘어 피부 치유까지
    의학과 융합, 기능성 향상시켜… 수출액 3조… 1년새 44% 늘어
    - 아이디어로 무장한 화장품
    봄비 꿀단지팩·마유 크림 등 중소업체 제품도 中관광객에 인기
    - 중국의 추격… 앞으로 3년이 고비
    中, 품질 비슷한 저가상품 곧 출시… 기능성 제품 규제부터 풀어야


    8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면세점. 중소·중견 화장품 업체 '닥터자르트'와 '메디힐' 매장 앞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스크팩이 담긴 상자를 10~20여개씩 구입한 관광객도 보였다. 두 브랜드는 올 들어 신라면세점 화장품 매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대기업이나 해외 명품 업체가 아닌 중소 브랜드 두 곳이 '톱 10'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주사기나 알약 모양을 넣은 특이한 포장이 한국의 미용·성형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미국·중국 등 12개국에 진출한 닥터자르트는 작년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컴퍼니즈가 한국 화장품 업계에서 첫 투자처로 선정한 업체다. 한 장에 3000원짜리 마스크팩 5억 장을 판매한 메디힐도 각광받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히트 상품 한 가지에 집중하는 '화장품 신생업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 화장품 코너도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온 저우즈펑(周志鵬·29)씨는 기초 5종 세트와 주름 개선 마스크팩 등 6000위안(약 105만원)어치 화장품이 담긴 종이 가방 5개를 들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정품을 샀다는 인증샷"이라며 주문서와 영수증, 구매 장면을 찍어 휴대전화로 친구에게 보냈다.


    ◇화장품 수출 증가율 53%


    'K뷰티' 열풍을 타고 지난해 국산 화장품 생산액이 사상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중화권 수출액이 2조원을 돌파하면서 화장품 무역 흑자는 1조원을 넘어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 생산 실적이 10조7328억원을 기록해 전년도(8조9704억원)에 비해 19.6% 증가했다"고 8일 밝혔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5억8780만달러(약 2조9979억원)로 전년보다 43.7% 증가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 약 1230만개 수출과 맞먹는다. 특히 대중국 수출액은 10억6236만달러(약 1조2254억원)로 2014년의 두 배로 뛰었다. 화장품의 작년 수출 증가율은 53.5%로, 업종별 상위 품목 가운데 TV 카메라(84.8%)에 이어 2위였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K뷰티(Korean Beauty) 2.0'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글로벌 진출에 성공한 'K뷰티 1.0' 단계를 지나 기능성 제품을 속속 내놓으며 변신 중이다. 글로벌 명품 업체가 기술 전수를 요청할 만큼 독보적인 품질을 인정받은 '쿠션' 제품, 중국 대륙을 휩쓴 마스크팩 등에 이어 최근에는 의학·제약·화장품을 융합한 코스메슈티컬 분야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독창성으로 시장 확대


    최근엔 중소 화장품 기업들도 독창적인 상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파파레서피의 천연 유기농 원료 '봄비 꿀단지 마스크팩'은 중국에 '꿀광' 등 짝퉁 제품이 나올 정도다. 클레어스코리아의 '마유(馬油) 크림', 성형외과·피부과 의료진과 화장품 전문가들이 만든 제이준코스메틱의 '블랙 물광 마스크팩'은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독특한 화장품 용기도 K뷰티 성공에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판다와 복숭아·바나나·토마토 모양 용기로 만든 토니모리 핸드크림은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린 토니모리 론칭 행사에서는 노란색 바나나 모양 핸드크림 등이 조기 품절됐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호랑이·판다·용 등 중국인에게 친근한 캐릭터 마스크를 내놓았다. 마스크팩을 상자째 구입하는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올해 월 평균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성장했다. 중국인 사이에선 팩을 얼굴에 붙이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증샷' 놀이가 유행할 정도다.


    ◇해외서 짝퉁 제품 쏟아져


    K뷰티 열풍으로 '짝퉁 한국 화장품'까지 급증해, 업체들은 치열한 머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제품에 특수 제작된 홀로그램을 부착하고 용기 디자인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연꽃 모양 제품 뚜껑 부분은 정교한 조각으로 만들어 쉽게 흉내내지 못 하게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법인에 위조품 전담 대응팀을 만들고 짝퉁 생산과 유통을 단속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올 초에는 알리바바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한 업무 협약(MOU)을 맺었다"며 "현지 유통 관계자들을 상대로 위조품 식별법 강연과 시연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클레어스코리아는 정품 인증 태그를 제품 아래쪽에 붙여 휴대전화 앱으로 확인하는 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메이크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앞으로 3년 뒤면 중국 화장품 업체들이 한국 제품과 비슷한 품질의 저가 제품을 양산할 것"이라며 "기능성 제품 생산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풀고, 제약 산업의 수십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화장품 산업에 대한 정부 투자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