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철강 전쟁'에... 유탄 맞는 한국

    입력 : 2016.06.08 10:02

    [전략경제대화서 철강문제 舌戰]


    "中 때문에 작년 1만5000명 실직" 美 철강협회, 中 저가공세 비판
    美, 中 철강 제재 시작하면 한국 제품도 같이 묶을 가능성
    "우리 수출시장 지키기 위해 美에 요구할 것 적극 찾아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6일 개막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철강 이슈를 놓고 양국 재무장관의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중국의 과잉 생산이 세계 시장을 왜곡하고 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오후청(高虎城) 중국 상무부 부장(장관)은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은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수요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며 "중국 철강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크게 낮다"고 반박했다.


    미국이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철강 과잉 공급을 비판하는 내용을 정상선언문에 포함시킨 데 이어 또다시 강수(强手)를 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 철강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일자리 때문이다. 미국은 160년 역사를 가진 자국의 철강 산업이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 공세로 생산량과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 철강협회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의 철강 생산은 540% 증가했는데, 미국은 13% 감소했다"면서 "지난 1년여 동안 중국 때문에 1만50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 싸움의 불똥이 한국으로 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국내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 철강에 대해 제재를 시작하면 한국 제품만 빼고 진행하기보다는 같이 묶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 전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이 전쟁의 틈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미·중 갈등 속 샌드위치 신세


    미·중 통상 전쟁은 이미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최근 중국산 내부식성 철강 제품에 대해 관세를 물리면서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에 대해서도 48%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지난해 한국에 대해 반덤핑 혐의로 4건의 조사를 개시했던 미국은 올 들어 5월 현재 벌써 3건을 조사 중인데, 모두 후판·합금철 등 철강 관련 제품이다. 중국에 생산 시설을 옮겨 제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이 반덤핑 제소에 휘말린 사례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와 중국이 중간재를 가공해 완성품을 미국에 파는 수출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제현정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과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 상위 10개 품목 가운데 휴대전화·자동차부품·메모리반도체·반도체부품 등 4개 품목이 겹친다"며 "미국의 대중 제재는 우리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을 상대로 큰 폭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 재부무는 지난 4월 한국과 중국을 일본·독일·대만과 함께 환율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중 통상 전쟁 상당 기간 지속될 것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국 제품 제재로 우리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어부지리'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안일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이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면서 중국과 함께 한국 제품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토머스 깁슨 미 철강협회장은 지난 4월 미 상무부 등이 개최한 철강 공청회에서 "초과 생산된 중국산 철강이 한국에서 파이프 제품으로 가공돼 미국으로 덤핑 수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미국이 포스코·현대제철 등에 최대 48%의 관세를 부과한 것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철강업체들은 중국에서 싸게 수입한 열연을 가공한 냉연 제품을 미국에 많이 수출하고 있어 중국 대신 덤핑 오명을 쓸 우려가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 전쟁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양적 완화 이후 좀 나아지는 듯했던 미국 경제에 잇따라 이상 신호가 들어오면서 미국도 긴장 모드로 들어갔다. 3일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에 한참 못 미치게 나오자 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통상 분야에서 더 공세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우리의 수출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트집을 잡지 못하도록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우리도 미국에 요구할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이익의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