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비 1兆 돌파... 눈빛 달라진 제약업계

    입력 : 2016.06.07 10:03

    [보수적 경영 탈피 잇따라]


    의약품 수입 유통 방식 벗어나 신약 개발로 글로벌 시장 공략
    해외 공장 짓고 합작법인 설립… "영업사원에 의존하는 시대 가"
    상반기 공채 연구인력 대폭 늘려… 회사채 발행에도 뭉칫돈 몰려


    국내 10대 제약 업체들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올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다. 국내 제약 업계는 외국 약(藥)을 수입해 판매하는 보수적 경영 방식을 탈피해 공장 증설과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년 한미약품의 8조원대 신약 기술 수출을 계기로 제약산업이 반도체·스마트폰을 잇는 핵심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상위 10개사 R&D 첫 1조원 돌파


    6일 본지가 국내 매출 상위 10대 제약사를 조사한 결과, 올해 R&D 투자 규모가 최소 1조95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9530억원보다 1500억원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작년 매출의 14.2%인 1871억원을 R&D에 투자한 한미약품은 올해 2000억원 이상의 R&D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다른 제약사들도 1000억원 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작년 726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 이상, 녹십자는 1019억원에서 1300억원, 대웅제약은 999억원에서 1200억원, 종근당은 913억원에서 1160억원으로 R&D 투자액을 늘릴 계획이다.



    국내 10대 제약사 중 R&D 투자를 지난해보다 줄이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었고, 대부분 큰 폭으로 투자액이 늘었다. JW중외제약·보령제약·한독 등 10위권 바로 아래의 제약사들 역시 올해 R&D 투자액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장평주 녹십자 전무는 "R&D 투자 증가는 국내 제약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라며 "올해 투자 규모는 예상치보다도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격 경영에 나서는 제약사들


    제약사들의 경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해외 제약사들의 의약품을 수입해 유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아예 수출을 목적으로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한양행은 미국 신약 개발 전문 회사인 소렌토와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고, 대웅제약은 인도네시아 생산단지 건설에 1000억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중국에 신약 연구소와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며 녹십자는 캐나다에 혈액의약품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제약사들의 인식 변화는 채용에서도 드러난다. 유한양행·한미약품·종근당 등 3개사는 올 상반기 공개채용에서 R&D 인력을 대폭 늘려 뽑는 대신 영업사원은 선발하지 않았다. 종근당 관계자는 "영업 사원들의 판매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결국 얼마나 우수한 연구 인력을 보유하느냐가 제약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녹십자, 창사 이후 첫 회사채 발행


    제약사들에 대한 시장 분위기도 우호적이다. 작년부터 제약사들의 주가가 크게 치솟으면서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제약사들의 신용등급을 앞다퉈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국내 제약산업의 신용등급 상한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도 지난달 한미약품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O에서 A+로 상향조정했다.


    이런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약사의 회사채 발행에도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녹십자는 최근 1969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무려 57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대웅제약도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3000억원이 쏟아졌다. 김현욱 메리츠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제약사들이 회사채 발행에 뛰어든 것은 R&D 투자뿐 아니라 신약 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과 해외 진출 등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투자자들도 제약업체들의 변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