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전문' 부실 건설사들 M&A 시장서 외면당해

    입력 : 2016.05.31 09:34

    [전망 불투명하고 투자심리 위축… 대부분 인수자 안 나서]


    시공능력 100위 이내 건설사 중 14개社 법정관리·워크아웃 상태
    설계능력 등 차별화된 장점 없어… 경영정상화 위해 새 주인 찾지만 올 들어 M&A 성공한 건 1곳뿐
    토목에 강한 회사는 그나마 나아


    "M&A(인수합병) 시도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능력 있는 인수자는 나서지 않습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A판사는 30일 본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 27일 법정관리 중인 극동건설을 300여억원에 세운건설로 매각하는 방안을 채권단 반대에도 강제 인가했다. 채권단은 "매각 금액 300여억원은 빌려준 돈 1000억원에 비해 너무 적다"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A판사는 "극동건설은 지난해에만 세 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면서 "이번 기회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M&A 시장의 황금주로 꼽혔던 건설회사가 찬밥 신세가 됐다. 지난해 이후 울트라건설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시장에 나온 업체 대부분이 매각에 실패한 것. 입찰자가 아예 없거나 1~2곳에 불과할 만큼 인기가 없었다. 전망도 밝지 않다. 건설업 전망이 불투명하고 투자 심리도 위축돼 있어 새 주인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어붙은 건설사 M&A 시장


    국내 시공능력평가 100위 이내 건설사 가운데 현재 법정관리 또는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건설사는 14개사이다. 동부건설·경남기업 등 9개사는 법정관리, 고려개발·삼호 등 5개사는 워크아웃 상태다. 이 기업들 대부분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법원이나 채권단 주도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M&A가 성사된 곳은 지난 3월 호반건설이 150억원대에 사들인 울트라건설이 유일하다.



    건설업이 호황이던 2006~07년만 해도 M&A 시장에서 건설사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대우건설을 비롯해 쌍용건설·건영·극동건설 등이 매물로 나왔고,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웅진그룹 등 대기업이 대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인수 가격도 치솟았다. 대우건설은 6조4000여억원에 금호아시아나에 팔렸고, 웅진은 극동건설을 6600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올해 건설사 M&A 시장에서는 인수 후보 자체를 찾기 어렵다. 대기업 이름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는다. 이달 초 SM(삼라마이다스)그룹이 인수 계약을 체결한 성우종합건설의 경우, 인수 후보가 없어 이례적으로 수의계약으로 팔렸다. 지난 18일 진행된 삼부토건 매각 본입찰에도 입찰한 투자자가 한 곳에 그쳤다. 경남기업 예비입찰에는 SM그룹 등 6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지만 업계에서는 "매각 성사 여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본다. 지난달 진행된 동부건설 예비입찰에도 9곳이 인수의향서를 냈지만 모두 본입찰을 포기하는 바람에 사모펀드인 키스톤PE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토목에 강한 회사는 수요 있어"


    김영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 매물에 기업이 아닌 사모펀드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시장에서 건설사 인기가 없고, 건설업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향후 2~3년간 국내 건설 수주 하락세가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경기 선행 지표인 국내 건설 수주는 지난해 158조원을 기록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경기 사이클상 곧 후퇴기를 맞을 것이란 분석이다.


    건설사들의 자체 경쟁력도 악화된 상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131개 상장 건설사들의 지난해 매출성장률은 -8.7%, 영업이익률은 -1.9%였다. 삼성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외국 건설사의 경우 '개념설계 전문' '상세설계 전문' 등 회사마다 차별화된 장점이 있어 M&A를 통해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는 효과를 낸다"며 "국내 건설사는 한결같이 속칭 '노가다' 전문이어서 굳이 다른 부실기업을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건설업계에서는 "M&A 시장에서 토목에 강한 회사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호반건설이 사들인 울트라건설은 지난해 도로·터널 등 공공 토목공사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이달 19일 동아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SM그룹은 "토목 사업 진출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 전문 회사들은 토목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토목은 그동안 최저가입찰제여서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부터 정부가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하면서 어느 정도 수익 확보가 가능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