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 관세 유탄에 중국산 공세까지 '二重苦'

    입력 : 2016.05.30 09:33

    [미국과 중국, 본격적인 마찰… G7·유럽도 中겨냥 한목소리]


    美, 중국에 관세 부과하면서 한국 철강업체 제품들에도 8.75~48% 반덤핑 관세 매겨
    중국, 對美 수출이 막히면 한국 등에 '밀어내기' 수출할 듯


    중국산 저가(低價) 철강 제품을 둘러싼 글로벌 통상 전쟁이 불붙었다. 먼저 미국이 중국 철강업체에 최고 400~500%대 '관세(關稅) 폭탄'을 잇따라 부과하면서 전면전을 선언했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방침임을 시사하며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 EU(유럽연합)가 최근 중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서고 G7(주요 7개국) 정상들까지 철강 공급 과잉 문제를 지적하면서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한국도 유탄을 맞고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과 함께 최고 50%에 가까운 반덤핑 관세를 얻어맞았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철강 업체들이 한국 시장 공세를 강화할 경우 미·중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美·유럽, 중국 겨냥 한목소리


    미국은 최근 중국 철강 제품에 대해 사실상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7일 중국산 냉연강판에 사상 최대인 522% 관세를 물린 데 이어 25일 중국산 내부식성 철강에 대해서도 451%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6일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중국 40개 철강업체에 대해 '가격 담합'과 '해킹을 통한 기술 절취' 의혹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1위 철강업체 US스틸이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제소가 받아들여지면 수입 금지·압류 조치가 가능해 중국산 철강이 사실상 미국 땅에 발붙이기가 어려워진다.


    중국 상하이의 한 창고에 철강 제품이 가득 쌓여 있다. 중국산 저가(低價) 철강의 공습을 막기 위해 미국은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EU(유럽연합)는 반덤핑 조사에 나서는 등 중국산 철강을 겨냥한 글로벌 통상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블룸버그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27일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의 조사는 세계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는 보호무역주의"라며 "WTO 관련 규정을 이용해 중국 업체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G7(주요 7개국)이 중국 압박에 가세했다.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G7 정상들이 지난 27일 선언문에 "철강 산업의 정부 보조금 같은 시장 왜곡 조치를 없애야 한다"며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선진국들은 중국의 덤핑 공세로 자국 철강업체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이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밀어내기식 수출에 나서면서 2012년 t당 평균 600유로였던 유럽 내 철강 가격은 400유로로 30% 이상 떨어졌다.


    글로벌 철강업체들은 극심한 경영난에 부닥쳤다. 인도 철강업체 타타스틸은 영국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해 영국 내 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상황이다. US스틸도 지난해 매출이 35% 급감하고, 16억달러의 순손실을 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중국 정부가 세금 환급 혜택 등을 통해 시장에 개입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


    문제는 선진국과 중국의 철강 전쟁 와중에 한국은 끼인 신세라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관세 폭탄을 내린 지난 26일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동부제철 등 한국 업체에도 최대 48%의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한국 업체들은 최소 1000억원 이상을 관세로 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중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나 스마트폰 등에 대한 보복 관세를 우려해 강력한 무역 제재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수출이 막힌 중국 업체들이 한국으로 물량 밀어내기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은 중국의 철강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로, 중국의 수출 물량 12%가 한국으로 들어온다. 지난해 한국의 철강 소비량 중 중국산 철강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달했다. 이 때문에 국내산과 중국산 철강을 유통하는 업체 간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한 국내산 철강 유통업체가 "건설사들이 품질 미달의 중국산 철근을 사용해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일간지 광고를 내자, 수입업체들은 "품질을 검증해보자"며 맞대응 광고를 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이번 통상 전쟁에서 기회를 엿보려면 중국이 제재받는 틈을 타 미국 시장에 대한 영업력을 키워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