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스타트업 향해 손짓하는 '파리의 유혹'

    입력 : 2016.05.30 09:25

    [佛 '디지털 퍼스트' 현장 르포]


    벤처 유치 프로그램 '프렌치 티켓'
    올해 50개 해외 스타트업 선발 "내년엔 기업가 200명 데려올 것"
    무료 교육기관 통해 창업 지원,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도 알선
    작년 일자리 3만3600개 창출


    프랑스의 명품그룹 LVMH(루이뷔통 모에헤네시)의 주류(酒類) 부문 자회사인 모에헤네시는 다음 달 프랑스 파리에 창업 벤처들을 지원하는 'MH랩'을 설립한다. 스타트업(start-up·창업벤처)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해 대표 상품인 '코냑'의 새로운 제조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24일(현지 시각) 파리에서 만난 모에헤네시의 프레데릭 아노(Arnold) 최고디지털책임자(CDO·Chief Digital Officer)는 "다음 달에는 파리에서 스타트업과 함께 스마트폰의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샴페인을 주문하면 1시간 안에 집으로 배달하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대기업·벤처캐피털(VC)과 함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라 프렌치 테크(프랑스형 기술 혁신)' 전략을 택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디지털퍼스터 전략 덕분에 작년 외국인 투자는 2014년에 비해 12% 늘어났고, 5년 만에 최고치인 3만36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2조6431억원으로 2014년의 2배로 증가했다.


    ◇파리에 넘쳐나는 창업 열기


    지난 23일 프랑스 파리의 북서부에 위치한 무료 교육기관 '에콜 42'. 이곳에선 1000여 명의 프랑스 젊은이가 PC 앞에서 코딩(Coding·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스마트폰용 앱이나 온라인 사이트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이곳은 프랑스 이동통신회사 프리의 자비에 니엘(Niel) 회장이 3년 전 개인 돈 900억원으로 세운 곳으로 프랑스의 창업 사관학교로 불린다. 자비에 니엘 회장은 "젊은 창업가들이 프랑스와 미국 어디서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에콜 42를 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적 창업보육기관 '누마(NUMA)'에서 일하고 있는 창업자들.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퍼스트' 전략으로 인해 스타트업 투자가 크게 늘었다. /파리=김진 기자


    같은 날 파리 시내에 위치한 '누마(NUMA)'. 15개 스타트업이 입주한 누마는 세계적인 창업 보육 기관으로 꼽힌다. 미국 트위터에 113억원에 팔린 빅데이터 분석기업 '메자그라프' 등을 포함해 수십 개의 프랑스 대표 벤처가 이곳에서 나왔다. BNP파리바·구글·시스코 등 글로벌 금융·IT기업과 협업해 스타트업의 빠른 안착을 돕는 게 경쟁력의 비결이다. 누마의 프레데릭 오뤼(Oru) 디렉터는 "멕시코와 스페인·러시아 등 전 세계에 누마의 지사를 두고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과 기계 등을 제공해 제조업 벤처를 지원하는 곳도 있다. 2014년 설립한 '위진이오'는 400여 명의 창업가에게 1500㎡의 공간과 함께 컴퓨터설계기술(CAD)·지적재산권·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할 기회를 제공한다. 위진이오의 게리 시게 매니저는 "컴퓨터와 전자 장비, 3D(입체) 프린터 등 제조·설계를 위한 모든 장비를 완비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창업한 어쿠스틱 아츠는 스피커가 향하는 방향에서만 음악이 들리는 제품을 만들었다. 주요 고객은 파리의 유명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등이다.



    ◇파리는 해외 벤처들의 유럽 진출 관문


    프랑스 파리는 미국과 아시아 등 해외 벤처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관문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프랑스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valley·계곡)를 본떠 파리에 만든 '실리콘 상티에(Silicon Sentier·오솔길)'에는 드롭박스·핀터레스트와 같은 미국의 유명 인터넷 스타트업이 입주했다. 유럽의 3대 벤처캐피털 가운데 하나인 파텍쉐이커는 이곳에서 외국 스타트업들이 쉽게 유럽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회계 자문을 하고 있다. 파텍쉐이커의 마리 라이바(Raichvarg) 매니저는 "유럽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지만 실리콘밸리보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창업하기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2014년부터 '프렌치 티켓'이라는 외국 스타트업 유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50개의 해외 스타트업을 선발해 연간 3300만원을 지원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지원자만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4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의 무역투자 진흥기관인 비즈니스프랑스의 아드리안 카보(Cabo)씨는 "내년에는 200여명의 전 세계 스타트업 기업가를 파리로 데려올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