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造船 근로자들 "인력 25% 줄여도 회사만 산다면..."

    입력 : 2016.05.27 09:36

    [SPP조선도 법정관리 위기… 중형 조선사 어떻게 되나]


    SPP근로자위원회 위원장 "창사 이래 파업 해본 적 없어… 필요하면 인력 감축안도 수용"
    작년 매출 1조7000억 성동조선… 추가 자금 지원 필요 없지만 수주물량 바닥나는 2년 뒤가 문제
    대선조선은 어느정도 자생력 확보 "소형社라 造船구조조정과는 거리"


    26일 경남 사천시 SPP조선소는 종일 뒤숭숭했다. 삼라마이더스(SM)그룹에 회사를 매각하는 협상이 이 날 사실상 결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법정관리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면서 회사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중형 유조선 전문인 SPP조선은 한때 연 매출 2조원에 1300여명의 본사 직원을 포함해 협력사 등 전체 고용 인력이 7500여명에 달했다. 세계 10위권까지 넘보던 신생 조선소는 조선업 불황이 닥치면서 무리한 사업 확장과 경영 판단 실수 등이 겹쳐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고 지난 2010년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지금은 본사 직원 580여명, 협력사 등을 다 합쳐도 3200명 정도다.


    STX조선해양에 이어 지난해 흑자를 낸 SPP조선까지 법정관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난 2010년 이후 비슷한 시기에 자율협약에 들어갔던 성동과 대선조선 등 이른바 4대 중형 조선사의 운명이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SPP조선 매각이 사실상 결렬됐다. 이에 따라 SPP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최악의 경우 청산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SPP조선의 정리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나머지 중형 조선사들의 구조조정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사진은 SPP조선의 경남 사천조선소 전경. /SPP조선 홈페이지


    STX조선해양과 SPP조선 두 곳은 침몰할 것으로 보이고, 수출입은행까지 부실로 내몬 성동조선도 위험한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SPP조선의 경우 설비 감축 등으로 지난해 약간의 흑자를 냈지만, 앞으로 다가올 조선업 불황의 파고를 생각하면 독자 생존은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중형 조선사들의 구조조정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앞선 예고편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장면이 이어질지 금융권과 조선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주 절벽에 매달린 SPP조선, 법정관리 가능성


    SPP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26일 "SPP조선은 지난해 580억원의 흑자를 냈기 때문에 SM(삼라마이다스)그룹과의 매각이 결렬되더라도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SPP조선은 인력 감축 외에도 조선소 3곳 중 2곳을 폐쇄하며 조직 축소에 나섰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과 채권단의 입장에는 온도 차가 있다. 더 이상 인수자가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SPP는 SM그룹과의 매각 협상이 결렬되면 청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인석 SPP근로자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우리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파업을 해본 적이 없는 회사로, 회사 살리기 서명운동도 철저히 근무 시간 외에만 하고 있다"면서 "인수 협상에서 필요하다면 지금 인력의 25% 정도를 더 줄여 450명으로 가자는 안(案)도 수용할 수 있으니 제발 회사만은 생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 수주 물량 덕분에 지난해 흑자를 내긴 했지만 현재 수주 잔량이 12척에 불과해 이대로 가면 내년 3월쯤엔 일감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당장 수주를 한다고 해도 설계 작업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감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이 이번 인수협상에서도 큰 쟁점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업 불황을 뚫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재 업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 대형 조선사들도 1년치 일감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중소형 조선사들이 수주 절벽에서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수은의 '아킬레스건' 성동조선은 처리 방안 시간 걸릴 듯


    성동·대선 조선은 모두 수출입은행이 주채권 은행을 맡고 있다. 이 중 관심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성동조선에 쏠려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1조7000억원으로, 대선조선의 약 6배에 달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성동조선에 대해 "현재 수주 잔량이 45척 정도로 충분하고 공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추가 자금 지원 없이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노사특별위원회도 만들어 오는 6월 그리스에서 열리는 선박박람회에 함께 가서 노조와 함께 수주 마케팅을 펼치기로 하는 등 회사 생존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올해 신규 수주가 한 건도 없어 이대로 가면 2년쯤 뒤엔 물량이 바닥난다. 이 때문에 지난해 우리은행이 성동조선 채권단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현재는 수출입은행의 체력이 떨어져 성동조선을 구조조정할 힘이 없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프로그램이 시행돼 체력을 회복하면 성동조선 처리 방안이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성동조선이 주저앉으면 수은도 충격받을 정도다. 조업 중단 시 선주(船主)에게 돌려줘야 할 선수금환급보증(RG)이 4월 말 기준으로 1조원에 달한다. 수은은 어떻게든 법정관리 대신 조업을 계속해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함으로써 RG 부담을 털어내려고 하는 중이다.


    대선조선의 경우 소형 탱커와 소규모 컨테이너선, 여객선 쪽으로 특화하면서 어느 정도 자생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3년간 수주한 물량의 80% 정도가 국내에서 발주한 것이다. 내수 위주의 소형 선박에 집중하면서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셈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아직 집행하지 않은 자금도 220억원 정도 남아 있어 선박 건조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선조선은 올해 소형 선박 6척을 새로 수주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조선은 소형 회사여서 조선업 구조조정과 거리가 좀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