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법인세 부담 늘면 투자·채용 위축... 경기회복 찬물"

    입력 : 2016.05.26 09:43

    [2野의 稅인상 추진에 반발]


    - 올려선 안된다
    "법인세 낮춰 투자 유치하려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
    근로자 절반이 소득세 안내는데 법인세만 집착하는건 포퓰리즘"


    - 올려야 한다
    "빚 줄이고 복지재원 마련에 필요… 그동안 감세로 얻은 기업 이익 정부가 사회로 환원시켜야"


    야권은 19대 국회 내내 법인세 인상을 요구했다. 그래도 원내 소수였기 때문에 기업 증세(增稅)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야권이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법인세 인상 논의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 인상에 적극적이고, 국민의당도 안철수 대표가 대기업 증세에 찬성해왔기 때문에 조만간 법인세 인상을 당론으로 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야권의 움직임에 정부와 기업은 경기가 위축된다며 거세게 반대한다. 야권이 합심하면 법인세 인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정부와 재계는 대응 논리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인세 인상을 놓고 사회 전반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경기에 찬물 끼얹는다"


    세제(稅制)를 만드는 기획재정부는 '법인세 인상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기업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다른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어서 신규 투자나 신입 사원 채용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율을 올리더라도 세수(稅收)가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어 야당의 구상이 실현되기도 어렵고, 경제활동만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법인세가 기업에 물리는 세금이지만 결국은 근로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야당의 주장은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춰 투자를 유치하려는 세계적인 조류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기재부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200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7.6%였지만, 지난해에는 24.8%로 낮아졌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OECD 회원국들은 법인세에 대해 '인하 17개국, 유지 10개국, 인상 6개국'의 분포를 보인다. 이 가운데 법인세를 올린 6개국(멕시코·헝가리·칠레·아이슬란드·그리스·슬로바키아)은 재정 위기에 빠진 적이 있는 나라들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은 일자리 늘리기에 악영향을 줄 게 뻔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구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생산기지 해외로 빠져나간다"


    경제단체들과 기업들도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우리만 '나 홀로 법인세 인상'을 하면 국내 부품·화학·첨단 소재 기업들의 생산기지 이전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가뜩이나 현 정부에서 비과세와 세금 감면이 대폭 축소돼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 상황인데, 여기에다 법인세까지 올리면 기업들이 버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비교를 하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보다 세금을 많이 부담한다는 게 수치로 나타난다. 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세수 대비 법인세 비중은 14%로 회원국 평균(8.5%)을 크게 웃돈다. 게다가 국내 55만개 법인 가운데 절반만 법인세를 내고 있고 나머지는 세금조차 못 내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상위 10개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전체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편중돼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올해 2%대 성장이 불가피해 부양책을 내놔도 시원찮을 판국에 법인세 인상을 강행한다면 기업들이 받는 충격은 평소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면서 소득세는 제쳐두고 법인세만 집착하는 야당의 행보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소득자 1619만명 중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777만명(48%)에 달하지만 표를 의식해 소득세는 건드리지 않고 기업 때리기에 몰두한다는 얘기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은 3.7%로 OECD 평균(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야당 주장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있어


    일부 전문가는 커지는 재정 적자 폭에 대응하고,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면 기업 증세가 필요하다며 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기업들이 거액을 쌓아두고 투자를 게을리하고 있기 때문에 세금으로 걷어 정부가 쓰는 게 효율적이라는 논리를 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도 올리고 그동안의 감세로 인한 이익 축적분을 사회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율이 22%지만 각종 감면 혜택을 제외한 실효세율은 그보다 훨씬 낮은 17%대에 그친다는 것도 증세론에 힘을 보탠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해외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한 돈은 본국에서 공제 혜택을 받기 때문에 국내 법인세율을 올려도 외국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14%였던 대기업 최저한세율(감면·공제를 받더라도 유지해야 하는 세율)을 현 정부 들어 17%로 올렸고,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등 비과세 혜택을 줄여 대기업에 대한 실효세율이 오르고 있다며 추가 증세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명진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복지 재원이 필요하면 연금 개혁을 먼저 하는 게 순서"라며 "세금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