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 해외 송금 年11조원 시장... 휴대폰 서비스로 '골리앗'은행과 경쟁

    입력 : 2016.05.23 09:34

    [금융의 게릴라들] 간편 해외송금 서비스 '센트비' 최성욱·정상용 대표
    '맨발 영업'… 국내 필리핀 근로자 10% 가입


    우리나라 금융 산업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제조업과 달리 여전히 낙후돼 있다. 정보통신기술(IT)과 금융의 결합인 핀테크(Fintech) 산업의 등장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인 국내 금융 산업에 도전이자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의 틈새 시장을 찾아서 창업에 나선 핀테크 신세대들을 소개한다.


    "카무스타 카바얀(안녕하세요, 여러분), 휴대폰으로 필리핀에 돈 한번 보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땡볕이 따가웠던 22일 오후, '필리핀의 날' 축제를 맞아 인천시 중구 축구경기장에 모인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에게 생수와 전단을 나눠주는 '센트비' 직원들의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센트비는 은행을 통하지 않고 해외에 돈을 보낼 수 있는 간편 해외 송금 서비스로 지난 2월 출시됐다.


    온라인 해외 송금은 외환거래법 같은 까다로운 규제 탓에 은행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금융 서비스다. 규제·보안 등 넘어야 할 벽이 겹겹인 해외 송금 분야에 청년 사장 2명이 도전장을 냈다. 백댄서·컨설턴트를 거쳐 외환 브로커로 일했던 최성욱(31) 대표, 대학 때 스타트업 4개를 창업한 적이 있는 정상용(29) 대표다.


    외환 브로커와 개발자로 일하다 의기투합한 최성욱(왼쪽)·정상용 대표는 복잡하고, 느리고, 비싼 해외 송금 대신 간편한 송금 서비스 '센트비'를 지난 2월 내놓았다.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하나 1Q랩'에서 두 사람이 "해외 송금의 판을 깨보겠다"는 의미로 달러를 힘차게 날려보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두 사람은 연세대 경영학부 시절 만났다. 졸업 후 최 대표는 한국자금중개의 외환 브로커로, 정 대표는 공대 대학원으로 각각 다른 길을 택했다가 '금융과 기술의 만남'을 뜻하는 '핀테크' 창업을 위해 지난해 의기투합했다. 서울 종로 그랑서울 '하나 1Q랩'에서 만난 두 젊은 사장은 센트비의 지향점을 '편하고, 빠르고, 저렴한 해외 송금'이라고 했다. "공인인증서 발급은커녕 은행 문턱 넘기도 쉽지 않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복잡하고, 느리고, 비싼 은행 해외 송금의 단점을 모두 깨고 싶었습니다."


    이주노동자, 그중에도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최 대표는 "동남아의 금융 규제가 비교적 느슨해 현지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비스 초기에 미국 송금을 추진했지만 외환 거래를 하려면 미국 주(州)마다 각각 허가받아야 한다는 규제 때문에 서비스를 닫았다. 필리핀은 그 반대였다. 한국이나 미국만큼 은행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아 오히려 기회였다. 외환거래법상 비(非)은행 금융회사를 통해서는 연간 2만달러 미만만 송금이 가능하다. 이에 고향에 보내는 돈이 월평균 약 70만원쯤 되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을 고객으로 택했다.


    센트비 회원 가입 절차는 간단하다. '해외 송금을 국내 송금처럼'이란 모토처럼, 온라인 신청서는 작성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여권 같은 신분증과 디지털 사진을 보내는 방식 등으로 실명 인증을 한다. 회원 가입 후 PC나 휴대전화를 통해 센트비가 지정하는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송금 신청 후 빠르게는 약 1시간 후 현지에서 돈을 받아볼 수 있다. 은행 송금에 적어도 이틀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짧은 시간이다. 필리핀은 인터넷 뱅킹이 덜 발달해 돈은 보통 오프라인에서 찾는다. 센트비가 필리핀의 송금 회사와 제휴해 발행하는 일종의 온라인 '입금 전표'를 보여주고 현지 40개 은행 점포 혹은 4000여개 전당포 체인에 제출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송금 수수료를 일종의 '수수료 공동 구매' 방식을 통해 은행(건당 약 4만~5만원)의 5분의 1 이하로 낮춘 것도 강점이다.


    서비스 구축 이상으로 어려운 건 영업이다. 최 대표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 커뮤니티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광고도 비용이 많이 들어 발로 뛰며 고객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전 직원이 발로 뛰며 송금 고객을 찾아다닌 결과 서비스 출시 3개월 만에 센트비 해외 송금 가입자 수가 필리핀 이주자의 10%가 넘는 7500여명에 달했다. 한 번 송금했던 이들의 절반 이상이 다시 서비스를 이용한다.


    22일 인천 중구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필리핀의 날' 축제에 참가한 센트비 직원들이 퍼레이드를 위해 화려하게 차려입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온라인 송금 서비스를 알리고 있다. /센트비 제공


    국제이주기구(IOM) 집계 결과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송금하는 돈은 연간 11조원이 넘는다. 최 대표는 "공식 집계된 금액만 그렇고, 드러나지 않은 시장은 몇 배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이주 노동자만 공략할 계획이냐"고 묻자 두 젊은 CEO는 "당연히 아니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현재까지는 규제의 틀 안에서 가능한 시장을 공략 중이고, 궁극적으로는 비트코인(디지털 가상 화폐) 등을 활용해 휴대폰으로 전 세계 어느 곳으로나 돈을 보내는 '글로벌 종합 송금 서비스'를 꿈꾼다. 한국은 비트코인 관련 규정이 더 정비돼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해 비트코인을 '재화'로 규정했고, 일본은 두 달 전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했어요. 비트코인을 활용한 사업 모델을 세울 날이 오는 순간 바로 서비스를 '발사'할 수 있도록 우리 직원 9명, 밤잠 안 자고 준비합니다. 기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