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덩치 따라 차등 규제... 출자 제한 대상 半으로 줄일 듯

    입력 : 2016.05.17 09:34

    [공정위, 시나리오별 장단점 검토]


    자산규모 최대 70배 차이 나는데 똑같이 규제하는건 문제라 판단
    자산 기준 10兆로 상향하거나 재계 서열 30위까지 포함 검토
    "특정 산업에 특화된 기업은 대기업 지정서 제외해야" 주장도


    공정거래위원회가 7년 만에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현행 자산 5조원 기준에 대해 "시대에 맞게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언급한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규제를 적용받는다.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기준을 준용하는 금융·중소기업·세제상 규제도 60여 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2008년 1104조원에서 지난해 1558조원으로 41% 증가한 반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2009년 이래 자산 5조원 이상으로 묶여 있었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재계 1위 삼성과 65위 카카오의 자산 규모는 70배 정도 차이 난다"며 "해당 기업들에 똑같은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고 했다.



    공정위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면서 ①자산 기준 7조~10조원으로 상향 ②자산 총액 상위 30대 그룹 ③체급별 기준 세분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자산 기준 10조원으로 상향… 대기업집단 37개로 줄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에서는 대기업집단 지정 자산 기준을 현행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높여달라고 건의한다. 자산 기준 상향은 공정거래법 시행령만 개정하면 되기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꼽힌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규제는 복잡할수록 '나쁜 규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자산총액 기준을 상향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적은 가장 명쾌한 방안"이라고 했다.


    자산 규모를 10조원으로 높일 경우 대기업집단 수는 65개에서 37개로 줄어든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던 하림·셀트리온·카카오 등 민간기업 5개는 모두 제외된다. 기준이 7조원이 되면 대기업집단은 53곳이 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0조원으로 올리면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나오고, 7조원으로 올리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준을 재조정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벌 체급별로 구분… 규제 범위 완화


    현재 대기업집단 기준을 세분화해 '체급별'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기업집단에 대한 정보 제공 ▲경쟁기업 간 관계나 하도급 관계의 불공정거래 규제 ▲경제력 남용 방지 등 공정거래법에서 추구하는 각 목표에 맞게 대기업집단을 나누자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경제권력 남용으로 정치·사회 영역까지 쥐락펴락하는 건 상위 10대 그룹"이라며 "대기업집단의 정보 공개 의무는 현행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불공정 거래 규제는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순환출자 등은 상위 10개 그룹으로 한정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금융·중소기업·세제별로 취지에 맞는 대기업집단 기준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준이 늘어나면서 논의가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재계 30위 등 순위로 끊기


    1993~2001년 시행했던 재계 서열 30위 기준도 유력한 방안 중 하나다. 국민경제 성장 속도와 관계없이 대기업 집단 수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처럼 자산총액 상위 30개 기업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하면 올해 기준 자산 12조원 이상 기업 30개가 포함된다. 하지만 기업 스스로가 순위에 포함될지 여부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또 "상위 30위 기업 중에서 삼성·현대자동차 등 1~4위와 나머지 기업들의 자산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데, 여기에 맞게 규제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도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 대기업은 대기업 지정 유예


    특정 산업에 전문화된 기업은 대기업 지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 특혜를 받은 소수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87년 대기업집단 제도가 도입됐으나, 2000년대 이후 성장한 벤처 중견기업들은 특혜가 아닌 창의성 중심의 자체 경쟁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3개 영역 이상 다(多)업종에 진출한 기업으로 한정한 뒤, 자산 기준이나 재계 순위 등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 경우 특정 산업에 전문화된 기업들이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되면서 향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영화된 공기업 등 업종 전문성은 있으나, 기업지배구조가 복잡한 기업들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