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人車의 경제학'... 유통·부동산엔 기회, 보험·석유 업체엔 위기

    입력 : 2016.05.16 09:41

    차에 오르면 알아서 목적지로 출발합니다. 스마트폰에 입력된 일정에 맞춰 움직이니 목적지를 말할 필요도 없지요. 차에서 내리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렴한 주차장을 찾아 다음 일정을 기다립니다. 혹시라도 자동차 공유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다면, 그새 다른 사람들을 태워다 주고 돈을 벌어줄지도 모릅니다. 무선인터넷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자동차들끼리는 사고가 날 일도 극히 드물 겁니다.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無人車)가 보편화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무인차는 인간의 문명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구글·애플 등 IT(정보기술) 기업들과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무인차 개발에 뛰어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무인차가 가져올 '더 편해진 삶'에 쏠립니다. 무인차의 등장은 단순히 우리가 출·퇴근하고 이동하는 생활만을 바꿔 놓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운전대를 놓으면서, 교통과 유통 산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에너지, 심지어 부동산 산업에까지 변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경제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인차로 인해 도로 위의 자동차 줄어


    전문가들은 무인차의 보급으로 자동차 보유 대수와 운행 대수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무인차가 지금의 경제 구조에 미칠 가장 직접적인 영향입니다.


    스위스의 자동차 기술 업체 린스피드(Rinspeed)사가 제시한 미래 무인 자동차의 개념도. /린스피드 제공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자동차 운행률(전체 보유 시간 중 실제로 운행되는 시간)은 5~10%에 불과합니다. 구글은 무인차 보급으로 이 수치가 75%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남편이 출근할 때 타고 나간 차가 회사에 온종일 서 있는 대신,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쇼핑과 자녀의 등·하교, 노부모의 외출을 도와주는 데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한 집에 차가 2~3대씩 있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인차는 도로 상황에 맞춰 최적화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연료 소비량이 적습니다. 기존 시험 운행에서 무인차가 사람 운전자보다 20% 이상 연료를 덜 쓰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석유 에너지 업체들이 벌써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 전체로 볼 때 자동차에 쓰는 돈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운행되는 차량의 10%만 무인차로 바뀌어도 연간 370억달러(약 43조원)가 절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정부 역시 무인차 보급으로 차량 통행이 줄어들면서 자동차 도로 보수와 확장에 투입되는 연간 300억달러의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조업·금융·보험 등 기존 산업에 타격


    기존 산업 구조엔 큰 타격이 있습니다. 우선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인차의 신규 수요로 초기에는 무인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매출이 늘겠지만, 장기적으론 차를 소유하기보다 공유하려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서 차량 판매 대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9000만대 규모인 세계 자동차 시장이 10년 후엔 반 토막이 나리란 얘기도 나옵니다.


    차량 판매가 줄면 자동차 금융(리스·할부) 회사도 악영향을 받습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자동차 관련 대출 규모가 연간 35조원 이상입니다. 자동차 금융은 각종 캐피털과 신용카드사 등 제2금융권의 주요 수입원이죠. 자동차가 덜 팔리면 그만큼 이들의 수익도 감소하는 겁니다.


    보험사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무인차는 과속이나 신호 위반, 음주운전 등을 하지 않고 철저히 안전 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고율이 뚝 떨어집니다. 이로 인해 보험금 지출이 줄지만, 보험료도 급락해 시장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미국 보험사들의 경우 연간 2000억달러(234조원)에 달하는 자가용차의 보험 수입이 급감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운전대를 놓으면서 화물 운송업과 대중교통 산업에선 인건비가 절감되고,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 비용이 줄어듭니다. 또 배송 시간이 정확하게 예측 가능해져 서비스 효율이 높아집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1680억달러(1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정류장과 역 사이를 운행하는 노선버스, 지하철, 철도, 단거리 항공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인 택시와 같은 무인차 서비스가 이런 대중교통보다 더 싸고 편리하다는 것이죠. 미국 뉴욕시에 무인 택시가 도입되면 현재 1마일당 4~6달러(4680~7000원)인 택시 요금이 10분의 1 수준인 1마일당 40센트(468원)까지 내려갈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주차장 사라지고 부동산 시장도 변화


    무인차의 등장은 부동산 시장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습니다. 일단 주차장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시내의 주차장 부지들이 재개발됩니다. 미국의 경우 도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이 주차장입니다.


    영국에선 무인차가 보급되면 런던 면적의 16%가 재개발된다는 연구도 나왔습니다. 장거리 출퇴근이 쉬워지면서 시내의 주거용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고, 시 외곽의 저평가 지역이 재조명될 가능성도 큽니다. 극단적으론 이동하는 차에서 사는 주거 문화가 실현 가능해져, 주택을 사는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사람이 필요 없는 완전 무인차 기술이 2030년쯤 본격화된다는 것을 가정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이런 세상이 오기 어렵다는 신중론자도 많습니다. 우선 무인차에 의해 타격을 입을 자동차와 에너지 업체 등 기존 산업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험회사들 역시 자신들의 수익이 줄 게 뻔한 무인차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사람이 타지 않은 무인차가 사고를 낼 경우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어렵고 자동차 제조사와 자율주행 기술 업체 간 책임 논쟁도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많습니다.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취미나 기호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는 재미를 즐기기 위해 수동 변속기를 단 스포츠카를 구매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이 일례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HS도 "완전 무인차 시대가 언젠가 오겠지만 그전까지는 고속도로나 정체 지역에서 무인 주행이 가능한 수준의 '부분 무인차'가 보급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