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保社, 저금리로 '역마진'에 신음... 매년 앉아서 4조원씩 날려

    입력 : 2016.05.16 09:27

    [헐값에 팔린 알리안츠생명 사태로 본 보험업계 우울한 미래]


    - 악화되는 수익률
    1990년대에 판 고금리 상품 부담
    보험사 평균 운용자산 수익률 4.4%… 보험 적립액 이자보다 낮아
    - 설계사 중심의 영업 관행
    보험 계약 95% 이상 차지… 시장도 포화… 生保 가입률 하락
    - 2020년 새 회계기준 도입
    보험사 부채 계산 더 깐깐해져 추가로 쌓아야 할 적립액 45조원


    "알리안츠생명이 불과 35억원에 팔린 것은 한국 보험회사들의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겁니다."


    지난달 보험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던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보험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유럽 최대 보험사인 독일 알리안츠그룹은 한국의 알리안츠생명을 중국 보험사인 안방(安邦)보험에 35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1999년 인수 이후 쏟아부은 돈이 1조원에 달하고, 여의도 사옥의 가치만 해도 18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매각 계약이었다.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을 계기로 한국 보험산업의 앞날에 드리운 '먹구름'의 실체와 위력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보험산업의 처지가 저금리 장기화로 나날이 악화하는 수익률, 비대한 설계사 조직에 계속 투입되는 높은 비용, 보험사의 부담을 크게 높일 새 회계기준 도입 등 여러 악재(惡材)가 한꺼번에 몰린 '퍼펙트 스톰'(대규모 재앙의 동시 도래)을 앞두고 있다고 말한다.


    ◇연 4조원 역마진에 시달리는 생보업계


    저금리 장기화로 계속 불어나는 역(逆)마진 손실은 한국 보험산업의 발목에 매달린 무거운 '모래주머니'다. 역마진 손실이란 금융상품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가 그 돈을 굴려서 올리는 수익보다 높아서 발생하는 손실을 뜻한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보험 가입자에게 매년 5%를 주기로 하고 1억원을 받았는데, 이 돈을 굴려서 내는 수익이 연 3%밖에 되지 않으면 보험사는 한 해에 200만원(500만원―300만원) 손해를 보는데, 이 경우 역마진 손실이 2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보험사의 역마진 손실이 은행·증권사 등 다른 보험사에 비해 큰 이유는 보험 상품의 특성상 만기가 20~30년에 달하는 장기 상품이 많아 1990년대에 팔았던 고정금리 상품의 잔액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금리가 높게는 10%대인 확정금리형 상품을 대거 팔았다. 당시 은행 금리와 비교하면 보험 상품 금리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만기가 길어야 5년인 은행 예·적금과 달리 보험 만기는 수십년에 달해 보험사가 여전히 그 부담을 떠안고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저금리가 고착화하면서 보험사의 평균 운용 자산 수익률은 1990년대 중반 연 11.6%에서 지난해 4.4%로 내려갔다. 보험사가 보험 적립액에 주는 평균 이자(4.6%)보다 0.2%포인트가 낮다.


    생명보험사의 고금리 확정 상품만 떼놓고 보면 상황은 더 안 좋다. 확정금리형 상품의 평균 이율은 연 6.4%에 달해 운용 자산으로 올리는 수익보다 2%포인트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2015년 기준으로 생명보험사가 떠안고 있는 확정금리형 상품은 약 201조원어치로 전체 보험료 적립금의 40%에 달한다. 한국의 생명보험업계가 매년 약 4조원(201조원×2%)씩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업비 과도한 설계사 중심 시스템


    전체 보험 계약 중 여전히 95% 이상을 차지하는 설계사 중심의 영업 관행도 보험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상품 가입 채널이 다변화하고 있는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또 보험 시장이 포화해 성장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생명보험 가입률(가구 기준)은 1990년대 중반 58%, 2000년대 중반 89% 등으로 계속 늘다가 2012년 87%, 2015년 86%로 계속 비율이 내려가고 있다. 보험개발원이 분석한 한국 보험사들의 신계약률은 1994년 81%, 2004년 27%, 2014년 18%로 빠른 속도로 하락해 왔다. 신계약률이란 해당연도 초에 들어온 총보험료 대비 그해 새로 가입한 보험료 비율을 일컬으며, 비율이 낮을수록 시장의 성장 동력이 떨어졌음을 뜻한다.


    ◇새 회계기준 도입도 큰 부담


    보험업계는 역마진보다 더 헤쳐나가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2020년 한국에 도입되는 새로운 국제 회계기준이다. 'IFRS4 Phase2(통일된 국제 회계기준 4번째 기준의 2단계)'라고 불리는 새 보험 회계기준의 핵심은 보험사의 '부채' 계산이 더 깐깐해진다는 것이다.


    현행 기준을 적용하면 보험사는 보험 가입 시점의 자산 운용 수익률 등을 기준으로 보험사의 '부채'에 해당하는 책임준비금(보험사가 보험 계약자에게 주기 위해 쌓아 놓는 적립금)을 쌓으면 된다. 그런데 새 회계기준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손실(혹은 이익)을 미리 반영해 책임준비금을 쌓도록 정해두고 있다. 저금리로 인한 역마진을 벗어나기 어려운 한국 보험사들의 경우 앞으로 발생할 손실을 일시에 반영하려면 막대한 돈이 추가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만기가 10년 남은 1000만원짜리 보험에 매년 10%를 확정금리로 줘야 하는데 운용 수익을 5%밖에 못 올리는 보험사가 있다면 지금의 회계기준으로는 1000만원 정도만 쌓고 매년 발생하는 역마진 손실 50만원씩을 10년에 걸쳐 매년 손실 처리를 하면 된다.


    그러나 새 회계기준이 2020년 도입되면 앞으로 줘야 할 돈인 500만원(50만원 × 10년)을 한꺼번에 '부채'로 잡아 책임준비금으로 쌓아 놓아야 한다. 보험금을 돌려받아야 할 소비자 입장에선 더 안전하지만 금리가 높은 확정금리형 상품에 억눌린 보험사 입장에선 일시에 막대한 돈을 쌓아야 해서 부담이 막대한 상황이다. 자본이 넉넉지 않은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이를 감당하지 못해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보험업계는 회계기준의 변경으로 2020년까지 추가로 쌓아야 할 적립액이 4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의 연간 순익(약 6조원)의 7배가 넘는 돈을 책임준비금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책임준비금을 제대로 쌓지 않으면 '부실 보험사' 낙인이 찍혀 사업하기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