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정 될까봐... M&A 기회 날려버린 중견기업

    입력 : 2016.05.13 09:24

    [대기업 기피 증후군 확산]


    부실기업 개선 전문 SM그룹, 동부건설 인수 기회 포기
    규제가 민간 구조조정 막는 셈
    대기업 지정된 카카오, 인터넷 전문 은행 차질 가능성
    셀트리온, 신약개발 투자 제약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급성장한 SM그룹은 최근 계열사의 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현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재 인수 추진 중인 조선업체 SPP조선의 사천조선소를 인수하면 SM그룹의 전체 자산이 5조원을 넘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에 들어가면 삼성이나 현대차그룹과 똑같이 70~80여 개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SM그룹 우오현 회장은 "SPP조선이 채권단 관리하에 있지만 직원 4000명과 함께 회사를 살릴 자신이 있다"면서도 "SPP조선을 살리려면 경우에 따라선 다른 계열사들이 나서 도와야 하는데 대기업집단이 되면 그게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SPP조선 인수를 포기하든지, 인수한다면 다른 자산을 팔아 대기업집단에서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SM그룹은 최근 10여 년 사이 남선알미늄·대한해운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켜 급성장했지만 대기업집단 규제에 발목이 걸린 것이다.



    국내 중견기업들 사이에 '대기업 기피(忌避) 증후군'이 퍼지고 있다.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신규 출자제한이나 계열사 간 거래 규제 등 수많이 규제가 따르기 때문에 중견그룹이 일부러 몸집을 줄이려 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는 셀트리온·카카오·한국투자금융·금호석유화학·SH공사 등 각 분야의 전문기업까지 대거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대기업집단 기준이 적절한지 거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반원익 부회장은 "자산 기준뿐 아니라 문어발 확장이 아닌 전문 분야에서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무조건 대기업집단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집단 지정 앞둔 중견기업 10여 곳


    중견기업 업계에선 대기업집단 후보군이 10여 곳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1위 인터넷 기업 네이버는 현재 자산 규모 4조4000억원으로 내년에 대기업집단 지정이 확실시되는 회사다. 네이버 측은 "최근 성장세를 고려하면 올해 7000억~8000억원 정도의 자산 증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농심(자산 4조5000억원)과 동원그룹(자산 4조3000억~4조4000억원)도 마찬가지다.


    이들 후보 기업은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별도의 대책은 세우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새로 생기는 규제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도 인터넷 독과점 논란을 빚고 있는 네이버가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정부 당국의 규제와 감시가 한결 심해질 게 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덫에 걸린 카카오·셀트리온


    최근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카카오·셀트리온 등은 규제의 피해에 직면했다. 카카오가 추진 중인 인터넷 전문 은행 '카카오뱅크'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자본은 금융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금산 분리 원칙 때문이다. 정부가 인터넷 은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자본의 지분 한도를 현행 10%에서 50%까지 높이는 은행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 개정안에서도 대기업은 완화 대상에서 제외이다. 다시 말해 자산 4조원대의 카카오는 인터넷 은행을 운영할 수 있지만 자산 5조원대의 카카오는 인터넷 은행을 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다.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도 비상이다. 셀트리온의 관계자는 "바이오와 제약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써야 해, 지주회사 등이 계열사가 차입할 때 지급보증을 서주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이 된 이상, 추가적인 지급보증은 금지됐고, 앞으로 2년 내 계열사 간 지급보증을 모두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집단 규제로 인해 부실기업을 정상화할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SM그룹의 경우 작년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동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했다. 자산 규모가 1조원이 넘는 동부건설을 인수했다가는 곧바로 대기업집단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동부건설은 아직도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한 상태다. 자발적인 민간 구조조정이 대기업집단 지정 탓에 지지부진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임상혁 전무는 "인수·합병은 시장 상황에 맞는 적기가 있는데 이를 놓치면 기업 가치가 떨어진다"며 "그 고통은 매물로 나온 기업의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남겨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