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신용등급 기업들, 해외선 5~8계단 아래

    입력 : 2016.05.12 10:42

    [국내 평가기준, 국제 등급에 비해 느슨…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국내 평가 대상 1114개 기업 중 164개 기업이 최고등급 받아
    美선 MS·존슨앤드존슨 두 곳뿐


    실적·재무상황 변해도 국내 신용등급은 잘 반영 안돼
    기업들 재무구조 개선 유인 약해


    국내에선 최고의 신용등급(AAA)으로 인정받는 기업들의 글로벌 신용등급이 국내 수준에 못 미칠 뿐 아니라, 국내에서 똑같이 최고 등급을 받은 기업들 사이에서도 글로벌 등급 차이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서울신용평가가 펴낸 '글로벌-국내 신용등급 차이에 대하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상위 신용등급을 받은 삼성전자, 현대차, SKT, KT,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의 글로벌 신용등급이 모두 국내 등급보다 5~8계단 낮았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등급이 A+(상위 5위)로 가장 높았고, 신한은행·국민은행이 A(상위 6위), SKT가 A-(상위 7위), 현대차·KT가 BBB+(상위 8위)로 그 뒤를 이었다. 국내에선 최상위의 신용도를 가졌다고 똑같이 평가받지만, 해외에서 냉정한 시각으로 평가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신용등급은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빅3 신용평가회사가 주는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을 기준으로 했고, 국내 등급은 국내 채권 발행을 위해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대 평가사가 주는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을 기준으로 했다.


    서울신용평가는 이렇게 국내외의 신용등급 평가가 현저하게 차이 나는 것은 국내외의 평가 기준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국내의 평가 기준이 해외에 비해 느슨해서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국가 신용등급 올라도 민간 기업은 제자리


    과거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글로벌 신용등급이 국내보다 낮았던 것은 국가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은 2010년 말 A(상위 6위)에서 작년 말 AA-(상위 4위·S&P 기준)로 두 단계나 올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간 기업들의 글로벌 신용등급은 제자리다. 같은 기간 동안 삼성전자와 신한은행은 한 단계 올랐고, 국민은행·우리은행은 제자리이며, SKT와 KT의 신용등급은 한 계단 하락하기까지 했다. 특히 2010년에는 삼성전자, SKT, 국민은행의 신용등급이 국가 신용등급과 같았는데 이제는 국가 신용등급보다 낮아졌다.


    김현 서울신용평가 신용평가1실장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재무 요인에 대한 평가 비중이 크고, 개별 기업 자체의 요인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이나 재무 상황에 따라 신용등급을 자주 바꾼다"고 말했다. 반면 이 기업들의 국내 신용등급은 2010년 말이나 작년 말이나 똑같이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재무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도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평가와 달리, 국내 평가에선 기간산업은 정부가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과 계열사 간의 지원 가능성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한 평가가 '후환' 불러올 수도"


    글로벌 신용평가 기준과 국내 평가 기준이 다른 것은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준이 해외보다 느슨하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S&P가 지난달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낮추면서, AAA를 받는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존슨앤드존슨 2곳만 남게 됐다. 반면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의 신용등급은 평가 대상 1114개 중 14.7%인 164개 회사가 최고 등급인 AAA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 중 AAA의 비중은 2000년만 해도 3.6%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해외에선 A~BBB+ 등급에 걸쳐 있는 회사들이 국내에선 모두 AAA의 최고 점수를 받고 있었다. 김현수 서울신용평가 사장은 "미국은 100점 받을 학생만 '최고'라고 대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신용평가 기준이 느슨해서 80점 받을 학생들까지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국내에선 재무적인 성과가 낮아도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무구조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유인이 생기고, 최근 해운·조선 업종에서 보듯 이는 나중에 후환을 불러오게 된다"며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선진 시장이 돼가는 만큼 국내의 평가 기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