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韓銀에 구조조정 실탄 4兆 요청할듯

    입력 : 2016.05.03 09:30

    [韓銀서 "적극 역할 하겠다"…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탄력]


    - 국책은행 자본확충 역할분담엔 이견
    한은 "수출입銀엔 추가출자 가능, 産銀에 출자하려면 법 고쳐야… 결국 정부가 하는 게 맞다"
    정부 "産銀이 발행하는 자본증권, 한은이 사들이는 것도 논의하자"


    한국은행이 2일 구조조정에 나설 국책은행들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협력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게 됐다. 그동안 한은은 "원칙적으로 정부 재정으로 할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해 속도감이 떨어지는 국채 발행이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였다. 정부는 애가 탔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가 한은의 공식 입장을 적극적으로 정리하면서 꼬여가던 실타래를 풀었다. 이 총재는 이날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해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서 관계 기관과 추진 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부와 한은의 공조에 물꼬를 텄다.


    ◇수출입은행 BIS 비율 10% 유지시켜달라


    정부가 바라는 한은의 역할은 해운업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국책은행에 대해 자본을 확충해 주는 것이다.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구조조정의 범위와 속도, 방식에 달려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4%는 넘어야 안정적이라고 보는데 작년 말 산업은행은 14.28%였고, 수출입은행은 10.11%에 불과했다.


    산은은 다소 여유가 있다고 보는 게 금융위 판단이다. 한은에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수은이다. 수은의 경우 실제로는 BIS 비율이 9%대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수은은 예금을 받는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BIS 비율 14%까지는 필요 없고, 10%는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줘야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위해 해운업과 조선업의 손실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가뜩이나 낮아진 수은의 BIS 비율이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최악의 경우 수은의 BIS 비율이 5~6%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본다.



    수은의 BIS 비율을 1%포인트 높이는 데 필요한 자본금이 1조2000억원 정도라고 계산하면, 정부가 한은에 기대하는 지원액은 3조~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구조조정 초기에 2조~3조원을 수은 자본 확충에 넣어주고, 이후 상황에 따라 2조원 정도를 추가로 넣어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한진해운, 현대상선이 해외 선주들과 진행 중인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인하 협상이 성공하는 등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반면 용선료 협상에 실패해 두 해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조선업 구조조정이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라면 자금이 더 필요하다. 최대 10조원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거액의 손실이 추가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라면 신속한 구조조정이 불발된 상황이니 한은이 국책은행에 자본을 확충해주는 방안을 정부가 고집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 경우에는 정부가 수은이나 산은의 자본 확충을 위한 예산을 정식으로 편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지원 등은 여전히 유동적


    한은이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남아 있다. 한은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산은에 도로공사 주식 등 현물출자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이 방안에는 긍정적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산은 지원에 대한 입장 차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한은은 수출입은행의 2대 주주이기 때문에 수출입은행에 대해선 추가 출자가 가능하지만, 산업은행에 직접 출자하는 것은 법을 고쳐야 하는 사항이므로 정부가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한은이 사들이는 방안도 적극 논의해 보자는 입장이다. 조건부 자본증권을 한은이 채권 시장에서 사들이는 것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된다. 한은은 "금통위가 매입을 승인하는 증권의 별도 요건에 정부가 말하는 조건부 자본증권이 해당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