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에 20兆 물린 국책은행 "올 게 왔다"

    입력 : 2016.04.27 09:32

    [조선·해운 구조조정]


    산업銀·수출입銀 건전성 악화


    두 은행 자본총액의 60% 수준 해운·조선 구조조정 착수 따라 주채권은행으로 손실 떠안아야
    해양플랜트 이상 감지하고도 채권관리 소홀히하다 발등 찍어…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할 판


    정부가 해운·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에 본격 착수함에 따라, 국책은행들의 출혈도 더 커질 전망이다. 현대상선·한진해운·대우조선해양 등 거대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사령탑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며 "국책은행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적 손실을 감당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모여서 구체적인 자본 확충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산은·수은의 해운·조선업 관련 대출액은 20조원이 넘어, 두 은행의 자본 확충 없이는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조원은 두 은행 자본총액의 60%에 이르는 수준이다. 두 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으론 세금으로 메우는 것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날 한은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동반 부실 위험에 빠진 산은·수은


    해운·조선업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 부진의 영향이 크지만 국책은행들의 '퍼주기식 대응'도 사태 악화에 일조했다.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해양에 빌려준 여신은 각각 4조원·9조원씩 총 13조원에 달한다. 두 국책은행이 해운사에 빌려준 여신도 만만치 않다. 산은은 현대상선에 1조2000억원, 한진해운에는 약 7000억원의 여신이 남아 있다.



    두 은행의 부실 여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은은 STX조선해양에 1조9000억원, 수은은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에 각각 2조3000억원과 1조4000억원을 물린 상태다. 결국 우리나라 양대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에 20조원이 넘는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두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산은과 수은의 부채비율(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각각 811%와 644%에 달했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 비율(BIS비율)도 시중은행보다 낮다. 일반적으로 BIS비율은 15%는 넘어야 안정적이라고 보는데 작년 말 산은은 14.28%, 수은은 10.04%를 기록했다. 문제는 구조조정이 본격화되어 은행이 빌려준 돈을 떼이게 되면 심각한 건전성 악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이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하자 산은·수은 내부에선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산은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발주에 이상 신호가 있다는 내부 보고서가 재작년부터 돌았는데 결국 구조조정의 수순을 밟게 됐다"고 말했다. 수은 내부에선 "기업 구조조정이 끝나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책은행들이 대출을 해준 기업에 낙하산으로 임직원을 내려보내면서 채권 관리를 소홀히 했다.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구멍 메울 듯


    임종룡 위원장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과 관련해 자금 규모나 조달 방법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다 보면 구체적인 액수가 나올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 미리 정해놓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금융시장에서 나도는 2조원 자본 확충 규모에 대해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자본 확충 방안으로 재정에서 충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정부 보유 주식 등 현물을 출자하는 것보다 현금을 출자하는 방안을 추천하는 이가 많다. 구조조정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으로 자본을 확충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금 출자는 현물과 달리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고, 구조조정 부담을 국민에게 지운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한은이 새 돈을 찍어내 자금을 대주는 방식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현재 수은의 2대 주주(13.1%)인 한은이 수은에 현금 출자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역시 한은의 정체성과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한은의 발권력에 의지하려는 습관이 형성되면 곤란하다"며 "한은이 정부의 호주머니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 재정을 동원하든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하든, 결국 국민 부담으로 때운다는 점에선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