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5년전에 했더라면... 다 죽진 않을 텐데"

    입력 : 2016.04.26 09:19

    [조선업 불황 직격탄… 일감 끊긴 전남 대불産團 르포]


    수주절벽… 6월 지나면 일감 동나


    24시간 내내 돌아가던 공장, 가동률 60%대까지 떨어져… 야간작업 소음민원도 사라져
    5년전 중국이 치고 올라왔을 때 일감 많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외면… 2~3달도 못버틸 업체 수두룩


    지난 22일 오전 조선(造船) 업종 협력업체가 밀집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는 금요일이지만 일요일처럼 고요했다. 중견급 조선사인 현대삼호중공업 제2 공장에서만 직원들 20~30명이 용접 작업을 벌이고 있을 뿐, 이 공장을 둘러싼 협력업체 공장 6개 중 5개가 멈춰 있었다. 선박 모듈(선박 부분별 덩어리)을 제작하는데 쓰는 대형 크레인은 움직이지 않았고, 공장 안에선 직원 1~2명 정도가 쌓여 있는 기자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대불산단이 멈췄다. 단지에 입주한 업체 300여 곳 중 75%를 차지하는 230여 곳의 조선업종 협력업체들이 원청업체인 조선업체들의 주문 감소로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산단 내 공장 가동률은 60%대까지 떨어졌다. 10곳 중 4곳은 공장을 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야근·주말근무 사라져


    4~5년 전만 해도 대불산단은 '밤을 모르는 산업단지'였다. 수년치 일감이 쌓여 있어 공장들이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불지사는 영산강 너머 3㎞ 떨어진 목포 아파트단지 주민들로부터 "밤마다 '깡깡'하고 쇠를 때리는 작업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민원 신고를 받았다. 당시 공단 안에는 은행 지점 3곳이 영업했다. 협력업체들이 생산시설을 확충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대출 상담 창구만 은행마다 10여 개씩 있었다.


    22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대불산업단지에 있는 한 선박 부품업체. 조선업 불황으로 선박 부품과 자재들로 가득 차야 할 공장 앞마당(위)과 내부(아래)가 텅 비어 있다. /김영근 기자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원 신고는 지난해 10월 이후 완전히 끊겼다. 협력 업체들의 야근과 주말근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은행 지점 세 곳 중 한 곳은 출장소로 축소됐고, 직원은 3명만 남았다. 돈 빌려 갈 기업이 없어 대출 업무가 사실상 중단됐다.


    ◇"5년 전 구조조정 했더라면 지금처럼 다 죽지는 않을 텐데…"


    선박 내관·배관 모듈을 제작하는 A사는 지난 2월 말부터 일감이 없다. 공장 부지는 2만㎡쯤 되는데 출근한 직원은 10여 명 정도였다. 나머지 직원 90여 명 정도는 무급(無給) 휴가를 갔다. A사 사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은 이미 5년 정도 늦었다"며 "당시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는데 다들 당장 일감이 넉넉하다는 이유로 멀리 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5년 전 기술력을 갖춘 업체 위주로 구조조정을 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한꺼번에 다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는 정부가 자금을 쥐여준다고 해도 살아남기 어렵다"며 "이미 나무가 말라비틀어졌는데 비료를 주면 무엇하느냐"고 했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대불산단 업체들은 대부분 원청업체가 준 설계도 그대로 부품 등을 만들어주는 '임가공'만 한다. 기술력이 부족해 자체 제품은 만들 수 없다.



    선박용 내장 부품을 생산하는 B사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년 전 직원 100여 명이 연매출 200억원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직원수 70명에 매출 100억원도 어려울 전망이다. 이 업체 사장은 "신규 수주를 받기 어렵다"며 "올해 3분기에는 대불산단 대부분이 적자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버틸 건지 묻자, 그는 나직하게 "긴축 재정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6월 이후 공동화(空洞化) 우려


    대불산단은 2000년대 후반 조선업 호황으로 성장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거제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서 일감이 넘쳐나면서 현지 협력업체들만으로는 일손이 모자랐고 대불산단에 조선업 협력업체가 우후죽순 생겼다.


    대불산단 고용인원은 2007년 6000여 명에서 이듬해 두 배가 넘는 1만3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목포에서 대불산단으로 가는 도로는 출퇴근 때마다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대불지사 관계자는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씩 걸려서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화를 우려하고 있다. 산단 내 수출액은 2014년 12억달러에서 지난해 7억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3억5000만달러 미만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폐업하고 시설이나 장비, 부지를 매각하려고 추진 중인 곳이 20여 곳에 달한다. 고용인원은 2014년 1만2000여 명에서 지난해 1만1000여 명으로 1000명 가까이 줄었다. 이미 하청업체에 파견 근무하는 원청업체 감독관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가장 큰 문제는 올 6월 이후 일감이 없다는 것이다. 한 중견업체 사장은 "일을 맡기던 주요 조선소들도 일감이 없긴 매한가지"라며 "수주 잔량이 얼마 남지 않자 지금까지 협력업체를 통해 조달했던 모듈과 부품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산단 내 업체들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 목표지만 전망은 어둡다. 업체들 대부분이 '부실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은행 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


    산업단지공단 이민식 대불지사장은 "인건비는 올랐는데 일감은 줄고 있어 당장 2~3달도 버티지 못할 업체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