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보험 벼락치기 개선안... 보험사도 신문 보고 알았다

    입력 : 2016.04.20 09:41

    ["과실 비율 따져 보험료 조정" 당국 발표에 보험업계 곤혹]


    이번 정부 들어 3번째 개선안
    車보험 근간 바꾸는 변화인데 보험업계와 사전 논의 없어


    합의과정 돌발 변수 고려 않고 '다둥이 특약' 보험 원리 어긋나


    "금융감독원이 낸 보도 자료에 밑줄 치면서 자동차 보험료를 어떻게 바꾸라는 건지, 당국 뜻을 해독(解讀)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금융감독원이 '자동차보험 관행 개선안'을 발표한 다음 날인 19일, 관련 내용을 묻자 보험사 직원들 사이에 한숨이 쏟아졌다. 이번 개선안의 핵심은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반영한 '과실 비율'에 따라 이듬해 자동차 보험료를 올리거나 내린다는 것이다.


    현행 방식은 잘잘못 정도를 따지지 않고 사고 횟수 및 정도(차 사고는 수리비, 인적 사고는 부상 급수 등)만 점수로 만들어 보험료에 반영한다. 이를 뒤집는 새 제도가 도입되면 보험료 체계가 큰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당연히 보험 업계와 협력이 필요한 사안인데도, 손해보험협회와 보험사 관계자 중 관련 내용을 미리 전해 들었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제2차 국민 체감 20대(大) 금융 관행 개혁 과제 1'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전날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자동차보험 개선 방안에 대해 업계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의 틀을 바꾸는 큰 변화인데 금융감독원 발표가 있고서야 내용을 접했다"며 "보험료 가격 규제를 없애겠다더니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업계엔 그냥 통보하듯이 발표하면 그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일방 통행에 보험업계 "당혹"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대해 업계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금융 당국이 자동차보험료 할증 제도를 바꾸겠다고 한 것이 이번 정부 들어서만 세 번째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제각각 다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시절이던 2014년 8월엔 지금의 점수제를 아예 폐지하고 건수제(사고 경중·과실을 따지지 않고 그냥 몇 건인지만 따지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이번처럼 기자 대상 브리핑까지 했다. "작은 흠집 하나 낸 사고와 문짝·범퍼 다 바꾼 사고를 똑같이 취급하느냐" "트럭·택시 기사 같은 서민들만 피해를 볼 것" 등 여론이 험악해졌다. 그러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점수제를 유지하겠다"고 이전 방침을 뒤집었다. 당국은 당시 "보험업계의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를 들었다.


    금융 당국이 이번엔 과실 비율을 반영해 보험료를 할증하겠다고 하자 업계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보험료 할증 제도에 관해 세 번째 공식 발표가 나온 셈이어서, 이번도 확정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시각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개선안 시행 시기가 '가급적 2016년 내'로 두루뭉술하다는 점도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소다.


    과실 비율을 따져 이듬해 보험료에 반영하기가 현실적·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과실 비율' 산정법은 법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들이 차 수리비나 치료비 등을 나누기 위해 그때그때 조정해 합의하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전용석 연구위원은 "'누가 더 잘못했나'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운데 보험 가입자들이 과실 비율에 따른 보험료 할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분쟁과 민원이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개혁'이란 간판이 민망한 금융 개혁 방안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동차보험 관련 다른 방안에 대해서도 졸속 논란이 일고 있다. 형사 합의금 지급 특약에 가입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을 때 보험회사가 피해자에게 우선 형사 합의금을 주는 방안에 대해서는 "합의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여러 돌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를 들어 양측이 일단 합의를 했다가 피해자가 마음을 바꿔 합의금을 더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 보험사의 대응책이 어정쩡하다는 것이다.


    자녀가 많은 보험 가입자에게는 보험료를 깎아주는 이른바 '다둥이 특약'도 보험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특약이 보편화하면 결과적으로 자녀가 많은 이의 보험료 중 일부를 자녀가 적거나 없는 이들이 대신 내주는 셈이 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처럼 논란이 많은 문제를 금융감독원이 '깜짝' 발표한 데 대해선 어쨌거나 정부가 밀어붙이는 '금융 관행 개혁'의 성과를 보여야 하는 금융 당국의 초조함이 작용했다는 의견이 많다. 온라인상으로 보험료를 비교하는 사이트 '보험 다모아'를 지난해 11월 미완성 상태로 내놓았고, '만능 절세 통장'이라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출시하면서 은행에도 갑자기 일임형 ISA를 허용해주는 등 설익은 상태로 금융 개혁안을 시장에 내놓는 바람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출시 직후 부실 논란이 불거진 '보험 다모아'는 지난해 말 금융 당국이 '2016년 4월까지는 사이트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얼마 전 시기를 은근 슬쩍 6월로 미룬 상태다.


    숭실대 금융학부 윤석헌 교수는 "이른바 금융 개혁안을 뜯어보면 큰 그림이 아니라 자질구레한 수정안만 이것저것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자동차보험 개선안도 방향은 맞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도 없이 서둘러 낸 흔적이 역력한데, 당국에서 업계로 내려보내는 이런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방식 개혁이 얼마나 성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