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8904개... 그가 만든 편의점

    입력 : 2016.04.11 09:46

    [사퇴한 '편의점의 아버지' 日 세븐아이홀딩스 스즈키 회장]


    24시간 영업, 도시락 판매… 편의점의 지금 모습 만들어
    日경제 정체기인 2005년 취임후 매출·영업이익 66%씩 늘려


    '소매업의 전설', '유통의 카리스마', '편의점의 아버지'….


    지난 7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선언한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84) 일본 세븐아이홀딩스 전 회장(CEO)의 별명들이다. 세븐아이홀딩스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수퍼마켓, 백화점 등을 운영하는 일본 최대 유통그룹 중 하나로 작년 매출은 약 6조엔에 달한다.


    1963년 유통업체 이토요카도에 사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미국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도입한 뒤 24시간 영업을 실시하고 각종 서비스를 추가, 거의 완전히 새로운 '업태(業態)'를 탄생시켰다. 한국 편의점 역시 대부분 일본과 제휴를 통해 탄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편의점은 그의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편의점의 아버지' '유통의 카리스마'로 불리는 스즈키 도시후미 일본 세븐아이홀딩스 전 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성장 정체기라고 가격만 내리면 고객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며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항상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븐아이홀딩스 제공


    그는 물러나기 약 보름 전인 3월 25일 도쿄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항상 변하며 이에 맞춰야 한다'는 '기본'을 지키며 경영했다"며 "현재 일본의 1만8000개 점포를 3만개로 늘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이를 이루지 못하게 됐지만, 한동안 일본 유통업계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스즈키 회장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편의점을 우연히 보고 일본에 돌아와 1973년 세븐일레븐재팬을 세웠다. 스즈키 회장은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반대, 처음엔 100호점만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월 말 기준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 17개국에 5만8904개가 있다.


    그는 파는 상품의 재고를 품목별로 철저히 파악하고 안 팔리는 물건은 매장에서 치워버리는 '단품관리(單品管理)'라는 재고 관리 기법을 고안,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스즈키 회장은 2004년에는 이 개념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다.


    공과금 납부, 현금 인출기, 택배, 도시락 판매, 시식(試食) 등도 그가 주도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점포가 수천 개로 늘었고, 1991년에는 경영 부진에 빠진 미국 세븐일레븐 본사를 인수했다. 1992년 그는 세븐일레븐 재팬 사장이 됐다.


    "물자가 부족했던 때는 상품의 질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요. 절대 부족의 시기를 벗어나면 상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고 삽니다. 가깝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편의점에서 좋은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고객의 수요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소매업을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격 경쟁만 하거나 점포 확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물건이 안 팔리는 경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가격에 질을 높일 생각을 해야 상품이 팔린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그는 2007년 일반 제조 회사의 제품보다 더 비싼 '세븐일레븐 프리미엄'이라는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만들었고, 현재 약 1600개의 품목으로 1년에 약 1조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2005년 회사 창업자의 자식을 제치고 회장이 되면서 샐러리맨 신화(神話)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재임한 2005~2015년 세븐아이홀딩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6%씩 늘었다. 일본 경제 정체기에 큰 성과를 냄으로써 '유통의 신(神)'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창업주가 후계자로 샐러리맨인 당신을 고른 것처럼 실력 위주로 후임자를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즈키 회장은 "오늘날 같은 경쟁 사회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회사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 보름 뒤 실적이 아니라 내부 갈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스즈키 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세븐일레븐 재팬의 사장을 바꾸려는 인사 안을 냈다가, 창업주와 사외이사, 미국계 주주 등으로부터 거부당한 것이다. 거부당한 이유로는 "스즈키 회장이 그룹 내에서 일하는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 한다"는 소문과 미국계 펀드가 회사 내 장악력이 강한 그를 견제한 것 등이 꼽히고 있다. 그가 보유한 회사 주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즈키 회장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원칙에 충실했다. 회사에 "후계자가 없기 때문에 스즈키 회장이 경영은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는 "내가 남으면 화근(禍根)이 되고 무엇보다 세대가 바뀌었다"라며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