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억달러→15억달러... 스타트업에 몰아치는 '기업 가치 낮추기'

    입력 : 2016.04.08 10:02

    웨어러블 헬스 기기 등 지나치게 높았던 기대치
    시간이 지나면서 객관적으로 조정되고 있어


    사람들이 있는 위치를 기반으로 맛집, 볼거리 등을 공유하는 포스퀘어는 한때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아성을 위협할 차세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기대를 모았다. 특정 장소에 방문했다는 것을 포스퀘어에 올리면, 왕관 아이콘을 줬다. 사용자들은 왕관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한때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6억달러(약 6960억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포스퀘어의 현재 가치는 2억5000만달러(약 2900억원)으로 전성기의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용자가 급감한 포스퀘어에 사용자는 물론 투자자도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세계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업계에 '다운 밸류에이션(down valua tion·기업 가치 낮추기)'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정보 업체인 CB인사이트의 '다운 라운드 트래커' 집계에 따르면 올해에만 18개 스타트업이 가치를 낮춰가며 투자를 유치하거나 인수됐다. 이 중에는 웨어러블(착용형) 헬스 기기 시장의 강자였던 조본도 포함돼 있다. 조본은 운동량·심장박동 등을 측정해주는 스마트워치를 만든다. 한때 기업 가치가 무려 33억달러(약 3조82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현재는 15억달러(약 1조7400억원)까지 떨어졌다.


    ※환율: 1달러=1160원. / 자료 : CB인사이트


    ◇저금리로 풀린 자금, 스타트업 가치 높여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등 두 가지 조건에 맞는 기업을 '유니콘'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과거에는 상상 속 이상적인 기업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진 기업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현재 스타트업 업계는 유니콘들의 몰락으로 고심하고 있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세계 스타트업 중 유니콘으로 분류된 업체는 총 157개다. 이들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하면 5560억달러(약 645조원)에 달한다. 이처럼 거액이 스타트업으로 몰린 것은 벤처투자업체(VC)·투자은행·사모펀드 등이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다가 스타트업으로 몰린 탓이 크다. 조금만 화제가 되도 금방 기업 가치가 두 배, 세 배가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유명 벤처투자가인 빌 걸리는 작년 "점차 죽어가는 유니콘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를 증명하듯 유니콘에 대한 관심은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스타트업이 된서리를 맞았다. 데이터 분석 업체인 디아로직에 따르면 2014년 408억달러(약 47조3000억원)에 이르렀던 IT 기업의 IPO는 작년 95억달러(약 11조원)에 그쳤다.


    최근엔 미국 자산운용사 피델리티가 자사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가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서 지난 1월까지 한 달 사이에 무려 19개 스타트업에 대한 가치를 폭락시켰다. 평균 가치 하락율도 15.54%에 달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나스닥은 9.89%, 다우존스지수는 5.5% 하락했다. 스타트업의 가치가 시장 상황보다 훨씬 나쁘다는 뜻이다.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비스 업체인 드롭박스는 10.34%, 구인구직 서비스 업체인 제네핏츠는 14.18% 가치가 낮게 재조정됐다. 37% 떨어진 곳도 있었다. 피델리티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가치가 오른 곳은 블루보틀 커피밖에 없었다. 이 회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미국, 일본 등에서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로 IT 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적으로 바뀐 시각, 이른 인수 등으로 평균 가치 낮아져


    스타트업 업계에선 기업 가치 재평가를 당연한 수순으로 본다. 스타트업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객관적으로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스타트업 기업 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으면서, 스타트업 스스로 낮은 자세로 자사의 가치를 낮추는 사례도 늘었다.


    스타트업은 실제 제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내기 전까지 투자사들의 자금을 수혈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투자사들에게 지분을 더 많이 제공하면서 투자를 유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엔 회사의 가치를 10억달러로 인정받은 뒤 1억달러를 투자받으면 지분 10%를 줬다. 같은 기업이지만 기업 평가 가치를 8억달러로 낮추면 같은 1억달러를 투자받고 투자사에 주는 지분은 16% 정도가 된다. 스타트업의 경영자 입장에선 지분을 더 줘서라도, 필요한 자금을 끌어와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스타트업의 가치 하락은 실제 재평가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구글·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제대로 인정받을 유망 스타트업을 초창기에 인수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봤다. 2년 전 구글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10여년 전만 해도 페이스북과 같은 대박 벤처가 등장했을 때 이런 기업을 알아보고 초창기에 인수하는 IT 대기업이 없었다. 이런 스타트업은 벤처 투자자에게 자신을 알리면서 엄청난 가치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아예 새싹 단계에서 될성부른 벤처는 모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다 흡수해버린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전처럼 세상을 바꿀 만한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것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스타트업에 꼈던 지나치게 높은 가치도 점차 정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