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08 15:22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그 어떤 것도 없는 곳, 어디에도 있지 않은 곳. 장자가 말하는 이상향, 즉 어느 곳에도 없는 땅, 유토피아를 현실 세계에서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는 한의사가 있다. 강남성심한의원 원장이자 한국웰빙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인 한의사 최형일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 들었다.
무술에서 고수의 1차적 잣대는 띠의 색깔로 확인할 수 있다. 고수의 첫걸음은 기본적으로 더 오를 수 없는 제도적 가치, 즉 ‘검은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의 판가름은 그 검은띠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검은띠 도달 이후에 끊임없는 수련과 노력을 더하면 고된 수련과정 때문에 띠의 색이 탈색되어 오히려 흰띠에 가까워진다. 때문에 고수의 능력은 띠의 색깔, 즉 제도적 판단 기준의 의미가 없다. 오히려 흰띠로서 첫 수련을 시작하던 원칙과 원론으로의 올바른 귀결이 수련의 최종점이라고 판단한다.
거장 피카소 역시 말년에 자신의 예술 인생을 회고하며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받쳤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결국 학술, 의술, 무술 등 끊임없는 탐구와 자기 정진을 요구하는 술(術)의 세계는 그 최고점에 이르면 본원적 가치와 의미, 더 나아가 역사와 사회적 책임론으로까지 귀결된다.
올바른 생활습관 이끄는 '라이프 카운셀러'
최형일 강남성심한의원장은 이러한 본원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현대의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했을 만큼 현대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은 평균 수명을 연장했고 수많은 불치병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즉 제도적 가치를 확대, 연장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이러한 진화와 반비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비단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세계 경제력 10위권의 놀라운 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에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수치의 상승이 가치의 만족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이다.
최형일 원장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의학에 종사하며 질병 치료에 집중하는 의학 현장에서 직접 몸담고 일해 왔다.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급성 질병들에 대한 치료법들이 개발되고 양방의학에 의해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환경에 의한 생활습관병과 만성 질환의 비중은 늘어났고, 오래 살기는 좋아졌지만 삶의 만족도는 저하되는 현상이 만연해 있죠. 그래서 저는 현대인의 생활습관에 의해 생기는 만성질환 예방에 대한 조언과 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강남성심한의원은 일반 한의원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바로 '생활습관병 치유'라는 테마다. '생활습관병'의 개념은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양방의학에서 먼저 대두되었다.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비롯된 골격의 뒤틀림이 근육을 긴장시키고, 나아가 척추 신경과 뇌신경의 긴장과 이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외과 질환적인 통증에서부터 내과 질환인 대사성 질환까지 복합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잘못된 생활습관은 잘못된 자세뿐만 아니라, 식습관, 수면 습관까지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를 통한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아니고서는 질병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고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사실 환자 개개인의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 질병을 의사 입장에서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환자분들은 병원에 오면 통증이나 질병이 유발되는 환경을 얘기하지 않고 통증 자체만 얘기하죠. 의사는 통증의 시점만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질병 유발 요소를 없애지 않으면 통증과 질병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최 원장은 생활습관 질환을 해소하는 자신의 방법을 '의사와 환자가 함께 근원적 문제점을 치료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질병은 좋지 않은 습관들이 축적되어서 한번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하루 7시간 이상 하이힐을 신고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은 필연적으로 하체, 허리와 연관된 근육이나 골격이 과부하가 생긴다. 대상자는 일시적인 통증을 피하기 위해 속칭 '편안한 자세'로 기대고자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런 자세가 신체 중심의 불균형을 일으켜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통증을 회피하기 위해 근육과 골격의 뒤틀림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생활습관으로 인해 축적된 질병은 어느 날 갑자기 급성 통증으로 찾아오게 된다. 처음에는 외과적인 통증으로 발병하지만 근본 치료 없이 통증 자체만 치료하면 결국 내과적인 통증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때문에 디스크 질환의 경우,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원인 요소가 제거되지 않으면 치료 후에도 통증이 재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통증이 정신적 스트레스로까지 이어져 불면증이나 우울증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생활습관 개선과 치료는 적게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즉 꾸준히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다.
"사실 제가 하는 역할은 생활습관을 가이드 해주는 것입니다. 한의사로서 근본적으로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병을 치료해서 돈을 버는 의사가 아니라 평생 환자의 건강을 관리해주고, 질병을 예방해주며, 전반적인 사회활동에서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더 나은 의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한의사로서 저의 바램이자 목표입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조언자 역할을 하는 의사, 현대인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는 의사는 최형일 원장이 한의학을 선택할 때 가졌던 초심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첫 걸음, 한국웰빙산업협동조합
최형일 원장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동참하는 이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한국웰빙산업협동조합. 한의원을 운영하고 학교에서 강의도 병행하며 단순히 병원에 가면 약을 먹고 병을 치료한다는 단순한 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생활습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생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자 했다.
"처음에는 교육으로 시작했죠. 대학생, 대학원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강의를 했습니다. 제 생각을 솔직히 얘기하다 보니 그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유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학생, 일반인뿐만 아니라 건강관련 제품의 생산자 역할을 하는 분들도 동참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시작한지 15년째입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한 가치 있는 철학을 공유하고, 이러한 의미를 공유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를 고민하다가 2014년 4월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생겨났습니다."
한국웰빙산업협동조합은 일반인은 물론 최 원장과 같은 의학전문가, 식품전문가, 농산물 생산자, 학생, 교육전문가, 심리치료 전문가 등 건강한 생활습관 정착을 위한 다양한 조합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한의학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은 한국 문화의 척추와도 같은 것으로 우리 고유의 생활습관과 삶을 제대로 통찰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한의학이 문화인지 더 많은 분들에게 이해시키고, 그분들이 우리 삶에 녹아 있는 한의학적 문화를 공감한다면 제가 추구하는 것이 좀더 친근한 한의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교육사업을 기반으로 좋은 습관을 정착시켜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만들고 있다. 건강 관련 힐링캠프는 물론이고 믿을 수 있고 양심적인 건강기능식품, 궁극적으로는 '신약개발'까지 그 지경을 넓히고자 한다.
올해 4월 최형일 원장은 경희대학교 내 교수진과 의학전문가들로 구성된 법인 ㈜GWC 설립에 참여해 한약제 추출 성분 중에서는 세계 최초로 식약청에서 인정하는 '키를 키우는 성장 물질’ 원료를 연구, 개발하기도 했다. 이 성장 원료 추출 제품은 어린이용 건강식품형태로 현재 호평을 받으며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GWC는 굿(Good), 웰(Well), 케어(Care)의 준말입니다. 굿(Good)은 '최선', 웰(Well)은 소비자 만족에 대한 답변, 케어(Care)는 몸과 마음, 인생까지 관리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사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늘의 별을 땅에서 찾다
최형일 원장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어린 시절 접한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를 보며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 대학교 역시 공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꿈은 현실과 판이하게 달랐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과학자라는 꿈의 실현을 위해 몰입하며 노력했는데 대학에서 접한 공학과 기초과학은 제 생각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학문적으로도 추구하던 방향과 달랐고, 무엇보다도 내가 꿈꿔왔던 학문이 내 성향과 너무 달랐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목표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인생의 큰 변화를 만들어준 계기가 됐습니다."
최 원장이 한의학을 선택하게 된 데는 집안환경 영향도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의사였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한의학의 뼈대를 이어가지 못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집안 어른들은 한의사가 되길 바라셨다. 하지만 과학자를 꿈꾸던 그에게 한의학은 비과학적이고 뜬구름 잡는 학문같이 느껴졌다.
"사실 꿈을 잃고 방황을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어른들에게 효도 한번 하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한의학을 6개월 정도 접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의학을 접하기 이전까지 저는 수학과 물리학적인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이라고 자부했었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은 머릿 속 학문이 아닌 내 피와 뼈 속에 각인된 근원적 학문이었습니다. 지식을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 발전하는 학문이 있는가 하면 살아있는 체험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는 학문도 있습니다. 한의학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그런 살아 숨쉬는 학문이었습니다."
그의 한의학 학부시절은 의료 봉사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산간 오지나 농어촌의 어려운 농민들을 위한 무료 의료지원을 통해 그는 현장경험을 할 수 있었다. 수년간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던 노인이 치료를 받고 스스로 걷는 장면을 눈으로 확인도 했다. 30여년간 제대로 보지 못하던 할머니가 시력을 되찾는 과정도 봤다. 그의 꿈이 하늘이 아닌 현실의 땅 위에서, 눈 앞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느꼈다. 업으로서의 의술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서는 의료를 하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천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한의학을 선택하고 봉사를 통해 값진 경험과 공부를 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한의원을 개원했죠. 제 자신이 학문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일에 대한 의욕이 충만하다 보니 환자들에게 적용 하는 의술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연구원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한의학 실용화를 위해 법인 설립에도 동참했습니다. 연구 결과물이 실질적인 제품으로 시판되어 좋은 반응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놀라운 시도의 연속이었고, 순간순간 이러한 경험에 대해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최 원장의 좌우명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유래된 말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물은 강함과 유연함을 다 갖고 있다. 어떤 그릇을 만나더라도 자기 형태로 만들 수 있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이 있다. 멈추면 썩고 살아 움직여야 산다.
다시 찾은 꿈,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최 원장의 궁극적인 비전은 한의학이 기반이 되는 건강한 삶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 형태와 틀은 정형화되지 않았다. 공동체의 형태는 마을이 될 수도, 힐링센터가 될 수도 있다.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일환으로 여러 강연을 통해 공통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대중화의 제품 일환으로는 ‘천수자황근’이라는 야생당근을 개량한 품종의 재배와 생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당뇨, 항암효과가 있으며 항노화, 항산화 효과가 있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작물이다. 기본적으로 한의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양방 의학적 관점에서 효능 분석과 과학적인 실험과정을 거쳐서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곧 쉰 살입니다. 남은 50년 인생은 가진 재능을 사회적 가치를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삶의 정수를 만끽하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구조체,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재화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그 기반은 한의학이지만 단순히 의료적 접근보다는 심신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환경적 요소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개념이 바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입니다. 장자가 말한 이상향의 모델로 어느 곳에도 없는 천국과도 같은 곳, 토머스 모어가 제시한 유토피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나은 삶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무하유지향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삶의 근원적 도달점으로서의 무하유지향. 꿈을 향한 최형일 원장의 가치 있는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의 원대한 꿈이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