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물숨' 숨을 넘고 싶은 인간의 슬픈 욕망 이야기

    입력 : 2015.08.10 11:32

    - 웃자란 욕망, 물숨


    '물숨'은 해녀들이 일컫는 물속에서의 호흡이다. '숨'의 길이는 정해져 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지려 자신이 지닌 숨의 길이를 넘어 서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바다 깊은 곳에서 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의 숨을 넘어서는 순간, 마치 다 써버린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을 들여 마시듯 숨을 먹고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해녀들은 이를 두고 '물숨 먹는다'라고 일컫는다. 물숨은 곧 죽음이다. 그래서 물숨은 잘라내지 못한 욕망의 상징이다.


    해녀들은 안다. 바다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무덤으로 변하고,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바다는 인생의 넉넉한 품이 된다는 것을. 때때로 바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해녀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그 가혹한 바다가 다시 보기 싫을 만도 하건만 바다를 그리워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 뛰어드는 해녀들. 그녀들은 오늘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웃자란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간다. 욕심과 욕망은 곧 '물숨'을 불러오기에.


    - 우도, 그곳엔 아직 해녀가 있다


    폐쇄적인 섬 우도. 해녀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도에는 여전히 '해녀'가 물질을 이어간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고희영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우도의 해녀를 다큐멘터리에 담아보기로 했다. 이어진 자료조사를 통해 이전의 다큐멘터리에는 해녀가 목숨 걸고 잠수하는 바닷속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에 제주 우도로 곧장 달려갔다.


    종전의 해녀 관련 다큐멘터리는 '강인한 여성', '한 많은 삶'과 같은 전통적인 여인의 형상을 그려내며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 불쌍하고 가련한 혹은 불행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래서였을까? 해녀의 바다 이야기를 담아내겠다는 포부와는 다르게 우도로 달려간 제주도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돌아온 것은 냉대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전의 제작자들에게도 촬영은 그만큼 쉽지 않았다. 바다는 구경도 못한 채 이리저리 치였을 것이다. 그들이 담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으리라.


    해녀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보리빵 배달녀가 되어 전조등도 없는 자전거로 어둠에 싸인 섬 길을 헤쳐나가다가 길 아래로 구르길 여러 번. 없는 살림에 카메라가 부서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갖은 노력으로 조금씩 마음을 열며 겨우 바다에 발끝을 담갔다. 그렇게 6년. 딱히 시간을 정해뒀던 것은 아니었다. 고희영 감독은 어느새 우도의 '해녀'가 되어 계절 따라 다른 바다, 해녀들이 일컫는 '물숨', 해녀들의 바다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 제주도 출신 여성 감독, 해녀의 바다를 담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가는 '해녀의 일생' 마지막 순간을 담기까지 모인 면면은 화려했다. 재일교포이자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의 음악감독을 맡은 양방언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다. 사비를 털어 산 비행선으로 대한민국 곳곳의 문화재를 아름답게 담아내는 김치연 교수가 하늘 위에서 해녀를 담았다. 지상촬영에 황도철 감독, 수중촬영에 김원국 감독, 지상과 수중을 넘나든 이병주 감독까지 분야의 대가들이 좀더 높은 곳에서, 좀더 낮은 곳에서 다양한 각도로 담아낸 장면들을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 책을 여는 순간 바다가 음악처럼 쏟아진다.


    국민 드라마〈모래시계〉를 쓴 송지나 작가가 다큐멘터리 영화〈물숨〉A Little Bit More을 위해 흔쾌히 대본을 썼다. 주관적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차분한 글은 그녀가 드라마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대본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고희영 감독이 해녀의 삶과 하나가 되어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바다를 여과 없이 담았다면 송지나 작가는 무덤이 된 바다에 또 뛰어들어 욕망을 다스리는 고통과 해녀의 이야기를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군더더기 없이 그려냈다. 송지나 작가의 시나리오는 고희영 감독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기에 영화에만 둘 수 없어 책에도 고스란히 담았다.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해녀들의 인터뷰도 함께 넣었다. 제주도 방언을 그대로 살린 그녀들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큰 울렁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숨》은 해녀의 바다를 담기 위한 집념을 가진 숱한 전문가들의 열정이 뭉쳐져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도의 '해녀'를 꿈꾸는 작가가 들려주는 우도의 '해녀' 이야기《물숨》은 바다처럼 풍요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