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서초고등학교 교장, "신뢰는 열정과 변화의 원동력"

  • 신승훈 리더피아 편집장

    입력 : 2015.07.02 10:45

    100번째 발행하는 <리더피아>에 어울리는 상징적 인물찾기. 리더피아는 '교육'을 선택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야 말로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리더의 자질은 어린 시절 인성교육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두가 공교육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초고등학교는 변화의 순풍을 타고 쾌속 질주 중이다. 주변에 명문 고등학교가 많아서인지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겐 기피대상이었던 이 공립고등학교가 3년 만에 우수인재들이 대거 지원하는 학교로 바뀌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마치 영화와도 같은 이야기. 지난 5월 21일 이대영 서초고등학교 교장을 만났다.



    "결국 신뢰다. 조직의 리더가 신뢰를 잃어버리면 더 이상 리더라 할 수 없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리더가 신뢰를 얻으면 구성원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선순환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변화에 둔감한 것으로 알려진 학교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이대영 서초고등학교 교장은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고, 교장이 선생님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서 능동적인 변화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사실 서초고등학교는 고교선택제가 실시된 이후 3년전까지만 해도 비선호 고교였다. 주변에 서울, 반포, 상문, 세화고 등 전통의 명문과 입시 성적이 좋은 학교들이 분포돼 있기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경우 공립고등학교인 서초고에 배정받는 것을 기피했었다.


    이 교장 역시 부임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거 장학사 시절 서초고 배정을 바꿔달라고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 부교육감을 마치고 서초고 교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어떻게 하면 서초고를 서울고 이상의 선호학교로 만들 수 있을까'였다니 그 압박감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사로 출발해 교육부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기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교장 부임 후 얼마나 잘 해내느냐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별고 없으시죠?"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모든 것의 중심에 아이들을 놓고 판단한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가능성을 믿으며 스스로 변할 때까지 기다렸다. 첫 번째 성과가 나오자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대영 교장이 처음으로 부임하면서 마음속으로 세운 두 가지 원칙은 학생중심의 학사운영과 교권보호 두 가지였다.


    우선 선생님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대신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시설은 행정실장, 학사운영은 각 부장선생님들과 교감선생님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교감 전결도 확대했다. 교감과 실장을 매일 만나 의견을 교환하기 때문에 교장이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이들이 문제없이 일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부임 후 선생님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학사활동은 부장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진행해 주세요"였다고 한다. 이는 학교의 변화는 선생님들의 열의 없이 불가능하며 교장이 시시콜콜 지시하면 역효과만 날 뿐이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신념이었다.


    "과거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목에 힘주지 말라고 이야기 했었어요.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했지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일방적으로 지시 받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이 교장은 이를 위해 자기만의 실천요강을 만들었다. 남들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단다.


    그는 수업시간 중 교실순회를 하지 않는다. 교사를 타율에 의해 움직이게 하는 부정적 요소가 있는데다 교사에게 수업은 기본이니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믿음이다.


    또 하나는 세칭 '지적질'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교장은 선생님들의 실수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책하지 않는다. 선생님들 스스로 이미 실수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교장이 지적하는 것보다 알아서 개선하도록 지켜보는 편이 좋다는 판단이다. 그저 복도나 화장실 앞에서 만나면 "별고 없으시죠?" 한마디로 끝이다.


    일부 학교에서 잡음이 일기도 하는 교장업무추진비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경조사비는 자비로 지출하고 관련 항목을 삭제했다. 대신 교사들의 협의회 참석 등 각종 활동을 위한 격려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변화의 시작 '설문조사와 건의함'


    변화나 혁신을 향한 리더의 의지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을 현실화 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내부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실행력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외부에서도 이러한 기조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한다. 목표의 당위성과 필요성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론을 써야 한다. 


    서초고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 교장의 실천의지는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로 시작됐다. 교장이 지시하는 것보다 설문조사를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이를 선생님들과 공유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선생님들은 급격한 변화나 권위에 의한 지시를 반기지 않아요.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기 때문에 저항감을 유발시키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부임 후 바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지요.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첫 번째가 시설개선, 두 번째가 진학지도였습니다."


    이 교장은 설문조사와 함께 교장실 문 앞에 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건의함을 만들었다. 건의함 옆 공간에는 게시판을 만들어 건의내용에 대한 교장의 의견이나 조치결과를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 문고리처럼 바로 조치할 수 있는 것은 했고, 시간이 필요한 문제는 언제까지 하겠다고 약속하고 이행했다. 새로 온 교장에게 말하니 바로 해주더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건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학생들과의 신뢰가 구축된 것이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갖는 불만 중 하나가 피드백(feedback)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훌륭한 대처였던 셈이다.


    "학생들의 건의는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건의를 모두 금고에 넣어 잘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낸 건의를 해결해주어 고맙다며 건의함에 사탕을 한 가득 넣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3년간 개선하고 변화해 나가다 보니 요즘에는 비어있는 날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공립고등학교가 그렇듯 서초고 역시 부족한 예산 때문에 큰돈이 들어가는 개보수는 여전히 문제였다. 이 때 학교 옆에 대형 공사현장에서 학습권 등을 이유로 지원을 받아냈다. 약 1년간의 학교 운영비와 맞먹는 거액의 학교 발전기금을 받아 학교 시설개선에 가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학교의 시설과 환경이 깨끗해지니 아이들의 정서에도 도움이 됐다. 또, 에너지 절약과 관련한 정부시책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최대한 냉난방을 가동할 수 있게 했다.


    이 교장은 "이때 받은 기금은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서만 쓸 수 있도록 한정해놓았다"며 "내가 떠나더라도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조명등도 LED등으로 바꾸었다. 우선 3학년 자습실과 교실은 발전기금을 활용해 교체했고 2학년 교실은 LED확산 정책과 맞물려 무료 설치했다. 오는 6월이면 서초구청에서 예산을 확보해 1학년 교실까지 교체할 예정이다.


    이밖에 학교 곳곳에 장미를 심고 시화전도 자주 열어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환경을 정비하자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는 효과를 얻었다. 학부모들이 원하던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공교육 신뢰 회복, "학교가 변해야"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들의 가장 많이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진로진학이었다. 학부모가 원하지만 학교에서 못해주니 돈을 싸들고 사교육기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진로진학 정보를 전달해야 사교육의 불안마케팅에 넘어가지 않는다. 학교가 변하면 부모들도 공교육을 신뢰하게 되더라."


    이 교장은 시설 확충과 함께 맞춤형 진로진학지도, 나라사랑교육, 행복교실 등 3가지 역점사업을 진행했다. 시설은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 부분은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특히 맞춤형 진로진학지도의 경우 현실적으로 선생님들이 모든 영역을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부족한 영역은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해 해결했다. 입시분석가, 입학사정관, 유명 사교육 강사 등을 불러서 학부모, 선생님 등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했다.
    물론 첫해에는 이를 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금이 없었다. 교육감과 구청장을 설득해 필요한 예산을 확보했다.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내고 들어야 하는 전문가들의 강의를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니 대만족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타교 학부모에게도 개방해 더 많은 학부모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이 교장은 맞춤형 진로진학지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별화에 집중했다. 그는 "철저하게 1:1로 지도해야 한다"며 "그래야 자존심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아이들까지도 말문이 열리고 소통이 가능해진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당일에도 9명의 외부 전문가들이 와서 아이들과 1:1로 진로 지도를 하고 있었다. 보통 밤 10시쯤 끝나는 데 전문가 한 명이 하루 종일 6명의 아이들을 상담한다고 한다. 올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함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의 현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에 입학한 선배들 중 강의나 동기부여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발굴해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도 활성화 했다. 이 교장은 "선배들이 찾아와 밤늦게까지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조언을 해준다"며 "현재 대학생활의 경험이 가미되니 선생님이나 외부 전문가들이 제안할 수 없는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수 있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성과의 열매는 '신뢰와 열정'


    "사실 연속성이 없으면 정책이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헌데 선생님들이 구경꾼처럼 굴더라. 말은 안 했지만 '효과가 나타나야 연속성을 가질 수 있겠구나'하는 압박이 느껴졌다." 물론 맞춤형 진로진학지도를 진행하면서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해에는 학년부장과 담임선생님들의 열의가 한참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 교장은 이와 관련한 일화를 담담히 회고했다.


    이 교장이 주말에 잠시 학교에 나왔을 때 우연히 3학년 학년부장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명문대 입학과 관련해 너무 많은 기대를 갖지 마시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이에 대해 "진학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아이들이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맙시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내색치 않았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은 이 교장의 속마음은 타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듣기에 따라서는 선생님들 스스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고백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선생님들의 참여를 강제하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결국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부임 첫 해 서울대학교에 수시모집으로 재학생 7명이 합격했다. 정시모집까지 포함하니 최종 11명이었다. 기존에 비해 몇배는 증가한 수치였다. 당시 지역 내 선호학교였던 서울고는 수시 8명 최종 12명이었다. 서초고는 지역 내 1지망 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밀려서 오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큰 성과였다. 서초고를 졸업한 서울대학교 입학생 수는 이듬해에도 늘었다.


    이 교장은 "서울고 3학년이 우리 학교보다 4학급이 많으니 비율로 놓고 보면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첫해 맞춤형 진로진학지도를 마치고 학부모들의 지갑에서 이 돈이 나갔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해보니 총합이 3억원에 이르렀다"며 "학교가 노력하면 사교육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첫해 성과가 나오자 선생님들이 먼저 바뀌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전문가초빙 강의를 실시했을 때 문과와 이과를 나눠 3일간 일정을 계획했는데 모든 담임선생님이 3일내내 참여했다. 8시에 끝내기로 한 강의는 밤 1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질문공세와 토론으로 강사를 보내주지 않더란다. 그만큼 선생님들이 열의가 생긴 것이다. 진로부장 선생님의 경우 서초구청에서 진행한 직업진로체험전 정보를 입수하고 서초고가 독점할 정도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교장은 "첫해 구경꾼 같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진로진학지도를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며 "성과를 원한다면 때에 따라서는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차별화된 진로진학지도를 통해 2년 연속으로 입시 성적이 좋아지자 부모님들의 시선도 변화했다. 올해 신입생들 중 중학교 내신성적 1등급 숫자가 전년대비 5배를 넘는 수준이고 2~3등급 학생도 크게 증가했다. 학교 분위기가 좋아지고 선생님들의 노력이 더해지니 인재들이 서초고를 선택한 것이다.


    이대영 교장은 이런 변화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없이 즐겁다. "선생님들 스스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무언인가를 전해주어야겠다는 의지가 높다. 열의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적당주의도 없어지고 있다. 또, 학원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올만큼 자율학습 인원도 늘고 있다. 선배들의 성공 모델을 본 아이들에게 목표의식이 생긴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수한 신입생들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현재 2~3학년 학생들이 더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교장은 그저 해달라는 것을 해주고 책임지면 된다."


    이같은 학교의 노력에 학부모들이 신뢰를 보내면서 과거에는 풀지 못했던 숙제들도 자연스럽게 풀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문과의 남녀합반 문제였다. 이 교장이 부임했을 때 이과와 달리 문과는 남자반과 여자반을 나누어 수업하고 있었다. 남자반 중 학습태도가 좋지 않은 반이 있어 골치였다.


    "부임 후 언젠가 문과 남학생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들은 버리는 거냐고 묻더라.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까지 지장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선생님들에게 이과처럼 남녀합반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전 교장이 있을 때 추진하려다 여학생을 둔 어머님들의 반대가 심해 할 수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세히 알아보니 학부모들의 극한  반대에 시달려 추진을 포기한 이슈였다.


    하지만 이 교장은 설득과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그냥 진행했다. 학교의 학사활동은 학교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평소 신념 때문이기도 했다. 과연 치맛바람 높기로 유명한 강남지역 엄마들이 그냥 넘어갔을까?


    이 교장은 "일단 학교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 어머님들도 별 말씀이 없었다"며 "실제로 남녀합반이 되니 생활태도나 면학분위기 등에서 순기능이 훨씬 많다는 평가다"라고 전했다.


    "인성교육 더욱 중요해진다"


    이대영 교장은 진학을 위한 교육과 더불어 인성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실제로 그가 교육부 대변인 시절 장관을 수행해서 산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기술은 우리가 가르쳐도 되니 인성교육 좀 시켜달라'는 주문을 받았기 때문에 인성교육에 대한 절박함을 실감해 교장이 되고서부터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인성교육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소중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초고는 인성교육 차원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일 행사에 참여한다. 재학생이 행사에 참여하는 전국 유일의 학교다. 매년 3월 24~26일 열리는 행사에 체험학습을 떠난다. 5월 29일에는 나라사랑클럽을 중심으로 동학의 역사를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삼례로 떠날 예정이다. 30명만 지원을 받았는데 학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인원을 조정해 80명만 가기로 했다. 중국 상해에 있는 학교와 교류하고 있는데 올해는 임시정부청사 등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 교장이 강조하는 나라사랑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은 단순히 역사적 지식을 쌓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실생활에서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게 이 교장의 주장이다. 중앙현관에 독도의 실시간 영상을 틀어 놓은 것도 독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다. 갈매기 우는 소리에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교육적 차원에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좌파의 전유물'이라는 등의 구설을 뚫고 교내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숙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위안부 여인의 사진을 찾아 이를 모델로 학생들과 지역의 미술선생님들이 함께 위안부 소녀상을 만들어 교내 양지바른 곳에 세웠다.


    소녀상을 만들고 나니 의도치 않게 새로운 전통이 생겨났다. 소녀상 제작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소녀상을 관리하는 등 역할을 하고자 '나라사랑클럽'을 만들었는데, 이 동아리가 학교를 대표하는 모임이 된 것. 지난해 회장선거를 보니 입후보자들이 모두 이 동아리 출신이었다. 동아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경쟁률도 치열한지 자체적으로 면접을 통해 신입생들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인성교육을 위해 동아리활동과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아이들의 참여도가 높이기 위해 활동과정에는 교사가 절대 관여하지 않고 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성과평가에는 교사가 관여해 상을 준다.


    저글링 동아리의 경우 서초구청과 노인정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그 실력이 좋아져서 지역축제에 나가기도 했다. 학내에서 민속경기대회를 할 때도 줄다리기협회에 문의했더니 정식 도구는 물론 심판까지 봐주었다. 이처럼 각종 활동을 장려하다보니 생활기록부에 쓸 것도 많아지고 아이들이 밝아지더라는 설명이다.


    "여학생이 운동장에서 치마를 입고 축구를 하길래 물어보니 여자축구부라고 대답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1등하는 아이였다. 학교 분위기가 바뀌니 동아리활동이나 봉사활동에 대한 아이들의 참여도와 선생님의 열의, 학부모의 관심도가 올라가더라.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교육정책 이념 색칠 금물, 현장성 높여야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치권의 이념논쟁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교장은 "교육정책이라면 무엇이든 내 자식에게 유익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 해야 한다"며 "좌우의 이념놀이를 교육에 색칠하면 국가의 미래가 망가진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이들이 주권을 잃은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처절한 아픔을 겪는지 실감할 수 있는 소녀상 설치를 두고도 구설에 오를 정도"라며 "국가의 성장을 책임질 미래세대를 교육은 기본이 중요하며 어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이념논쟁을 끌어들이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념논쟁으로 인해 새로운 교육정책을 자꾸 만드는데 이럴 경우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시간을 두고 시행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되는데 자꾸 판을 갈아엎으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현장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고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교사들에게 들으니 고칠 것이 많은데 아무도 나서질 않아서 그냥 흘러가는 부분이 많더라는 주장이다.


    이 교장은 각종 경시대회 수상경력이나 외국어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특목고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고를 황폐화시키는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언뜻 듣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자 이내 수긍이 간다.


    "우리 아이는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라고 하는 부모도 있다. 특목고는 어떤 형식으로든 만들어낸다. 하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외국어나 수학을 특별히 잘하는 아이의 경우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막힌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지도할 이유가 없어진다."


    물론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만 엄마와 아이들이 원하는 게 대학이라면 학교에서 이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선행학습을 금지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일반계 국공립고등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시켜주는 선생님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학원은 내버려둔 채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단언했다.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방과 후 학습을 허용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 교장이 당연직으로 참석하는 것도 문제다. 현재 운영위원회의 의견에 대해 학교장이 재심이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교장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결정한 것을 자기가 번복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관련 문안을 '교장 또는 교감'으로 바꾸어서 교감선생님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현장과의 괴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이 교장은 교육정책을 전문가가 아니라 고시 출신의 인사들이 주도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행정직 등 고시 출신이 절실한 부분이 있지만 교육, 예술, 체육 등 모든 분야에 고시가 만능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교장은 "과거에 교육부에는 교장 등 전문직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일반직 공무원들은 업무지시에 바로 응한다는 말이 있었다"며 "윗사람이 일을 시키기에는 후자가 편하지만 이 경우 현장과는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모두 내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교장으로 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에서 교정에서 마주치는 아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려 노력한다. 모두 이쁘기만한 내 아이들이다."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좋은 광경은 없다고 했던가? 이 교장은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에 한 끼에 두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매주 화~목요일 3일간 두 가지 메뉴 중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학생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저녁식사도 400명이 넘게 한다. 학원에 가기 전에,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은 귀가하기 전에 학교에서 식사를 한다는 귀띔이다.


    엄하기만 했던 교칙도 내 아이를 사랑하듯 유연하게 적용해달라고 교사들에게 주문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보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이 교장의 철학이다.


    "아이들에게 만회의 기회를 줘야 한다. 벌점도 1년 단위로 새로 고칠 수 있도록 했다. 치마를 올려 입거나 화장하는 것도 과하지 않으면 허용해주라고 주문했다. 세상이 바뀌면 교육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생활지도 역시 유연해야 한다. 반바지 교복을 도입해서 여름에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교육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하지만 훈육(訓育)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이 교장의 신념이다. 이 교장은 "훈육은 상대가 견디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좌절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며 "그 좌절의 종류가 반성문이든 손들고 서있기든, 이를 통해 배려와 참을성을 지닌 강한 사람이 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아이들이 상대방의 실수나 나와 다름에 필요이상으로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훈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배려하고 기다려준다. 실제로 요즘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가정불화로 인해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가정사로 인해 고민이 많은 아이들의 경우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검사를 통해 자살위험군 등을 구분해 비밀리에 상담하고 부모님들도 관심을 쏟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위험하기 때문에 전문 상담선생님을 계약직으로 고용해서 면밀히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수시로 서울대에 합격한 우리 학생들의 성적표를 보니 수학 1등급이 한명도 없어 깜짝 놀랐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일반고의 노력을 평가할 때 수시모집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느냐에 관심을 두라고 권했다. 시험성적이 중요한 정시모집은 학원과 부모, 학생이 만드는 반면 수시모집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관리, 특별활동 등 입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관리해야 한다. 그만큼 선생님의, 공교육기관의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의 리더십이 가져온 서초고등학교의 신바람. 대한민국 공교육 부활의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출처 및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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