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 25 - 집밥이 그립다

  • 정유미 칼럼니스트

    입력 : 2015.06.02 17:15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낸 나는 어쩌다 고향에 가는 날이면 항상 거기서 어떤 맛있는 것을 먹을지 마음속으로 정리해 놓고는 한다. 그것은 주로 ○○식당의 △△요리 같은 매우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어디나 흔하게 있는 아이템일 수는 있지만, 내가 찾던 그 맛을 타지에서는 아직 만나지 못해 우리 동네에서만 찾아지던, 부모님과 종종 들렀던 추억의 단골집 메뉴들, 양념갈비, 토종닭백숙, 제철 회, 대창찜, 장어요리 등과 같은 것들이 리스트를 체우 곤 했다. 그래서 부모님도 내가 올 때면 어디서 뭐가 먹고 싶은지 묻고 그곳으로 달려가곤 하셨다. 그러다 이십대를 지나 서른이 넘어가자 집에 내려갔을 때 먹고자 하는 음식들의 항목이 조금씩 변화했다. 바뀐 리스트에는 너무 익숙해 부르는 사람마다 이름도 제각각일 정어리쌈밥, 서대조림, 동그랑땡, 쇠고기전, 미역줄거리무침, 소불김치 같은 엄마의 반찬들, 어릴 때 뻔하게 먹던 엄마의 음식들이 올라왔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랑할 만한 솜씨를 가지지도 않은 것이 우리 엄마의 음식들이다. 실제로 어디서 우리 엄마의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고 '엄지척'해 본 적도 없고 사실이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도 왜 엄마의 음식이 그리워진 걸까. 왜 최고로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들보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시던 밥상이 점점 필요해진 걸까. 그 답을 얼마 전 도정일 교수의 '환대론'에 대한 짧은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의 집밥이 그리웠던 이유는 그곳이 내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 나만을 위한 '완전한 환대'가 이루어진 따뜻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정일 교수는 <레미제라블> 속 뮈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베푼 식탁을 통해 환대에 대한 다음과 같은 현대적 일반론을 제시한다. "환대는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일시적 선심행사가 아니고 우월한 위치의 주인이 약한 위치의 수혜자에게 행하는 비대칭적 자비도 아니다. 그것은 손님의 권리이고 그 권리에 대한 존중이다. 환대는 보상에 대한 기대에서, 혹은 상대방과의 상호주의적 교환의 게임룰 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행위도 아니다. 환대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가 정리한 권리로서의 환대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내가 대접받을 자격과 권리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진심어린 음식을 누군가 내어 준다면 그것이 가장 완전한 환대의 밥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점차 각박하다고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그런 밥상이 본능적으로 그리워진 것이었다.


    요즘은 작은 친목 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명백히 대접이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 자리에서도 음식은 주로 외부에서 차려진다. 돌잔치, 생일, 축하연 등과 같은 대부분의 잔치들을 손수 만든 음식과 함께 집에서 치루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잘 빠진' 음식들을 화려한 조명 아래 먹는 것이 일반적인 행사의 모습이고, 주최자나 손님도 이미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그나마 목적상 집에서 치를 수밖에 없는 행사인 집들이에서도 음식들은 종종 업체에서 주문한 것들로 채워진다. 어설프게 준비하는 것보다는 검증된 곳에 음식을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여건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에서 주최자와 손님이 주고받았던 순수한 정성들이 형식과 함께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결국 엄마의 집밥이 그리워진 것은 이런 환대와 정성의 인간적 따뜻함을 일상생활에서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우선 나부터도 그런 순수한 정성을 쏟는 것에 자연스럽게 인색해져왔을 터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잘 먹어주는 모습이 그저 예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순한 환대의 마음. 솜씨를 뽐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 환대를 통해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올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 상대에 대한 애정을 기초로 한 순순한 정성. 거기에 먹는 사람도 음식을 베풀어준 사람에게 보답하듯 성의를 다해 맛있게 먹음으로 나타나는 감사. 피상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의 득실을 계산하는 눈치를 자주 느끼게 되는 요즘, 더욱 완전한 환대와 정성이 가득한 집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