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 24 - 국물이 있는 행복한 밥상

  • 정유미 칼럼니스트

    입력 : 2015.05.19 17:48

    1924년 출판된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저자 이용기는 "국은 밥 다음이요, 반찬의 으뜸이라 국이 없으면 얼굴에 눈이 없는 것 같다. 고로 온갖 잔치에서 국이 없으면 못쓰나니, 또 이것 아니면 밥을 말아 먹을 수가 없으니 어찌 소중하지 아니 하리오. 불가불 잘 만들어야 하느니라."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밥상에서 국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식에서는 국과 밥은 하나의 묶음으로, 기본 상차림에는 반드시 국이 있어야 한다. 한식은 국물 문화라고 일컬어질 만큼 우리 밥상에서 국을 중심으로 한 국물 음식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국 요리는 간을 하는 방식에 따라 쇠고기국과 같이 간장으로 간을 하는 장국, 차갑게 하여 식초와 간장으로 간을 하는 냉국, 된장으로 간을 하는 토장국, 뽀얗게 끓여 소금으로 간을 하는 곰국으로 크게 구분한다. 물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인 국에서 나오는 감칠맛은 다양한 음식의 맛을 조화롭게 만든다. 우리와 같이 한 상에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차려 놓고 먹는 공간전개형 식사에서 국 한 숟가락은 여러 음식의 상이한 맛들을 서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국과 같은 국물 음식을 궁핍한 생활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부족한 건더기의 양을 물로 채워 좀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조리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품질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즐겼던 영국인들은 예로부터 소박한 프랑스인들의 냄비요리를 무시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기 부위에 근채류 등의 재료와 물을 섞고 국물을 내어 먹는 것을 서민적이라며 낮추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음식들이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식재료를 다루는 조리 기술의 발전과 확대를 가져왔다는 것이 음식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리나라의 국물 음식, 국 문화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국물 음식들은 우리 식문화의 다각적 발전을 이끌었다. 지역과 계절에 따른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하여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음식으로 개발되어 왔다. 이제 이런 국물 음식은 한국인에게는 하나의 취향이며, '얼굴의 눈'과 같이 식생활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물 음식은 그것을 즐기는 방식에 있어 몇 가지 걱정되는 습관들을 동반하니, 그것이 문제이다.


    첫째는 국물을 통한 나트륨 섭취가 많다는 점이다. 국을 먹을 때 건더기를 위주로 하여 국물은 조금만 먹는 것에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보다는 넉넉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기를 좋아한다. 또는 숟가락으로 몇 번 국물을 떠먹기보다 그릇 채 들고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본적으로 나트륨 섭취가 많아져 고혈압 위험을 높이는 등 건강에는 좋지 않다. 매번 국을 빠지지 않고 먹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국물을 먹는 양이 평소 얼마나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물을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은 양의 나트륨이 체내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유난히 뜨거운 국물을 즐기는 것이다. 한국인은 음식을 기본적으로 따뜻하게 내어놓는 것을 예의로 생각하며, 무엇보다 국은 보글보글 끓는 상태의 것을 좋아한다. 특히 '탕'이라 부르는 국물 음식에서 이런 기호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운 국물은 단백질로 이루어진 구강과 식도 세포에 손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결국 상처가 나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세포 손상이 지속되어 염증이 생기거나 세포 변형이 생겨 심하면 구강암이나 식도암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너무 뜨거운 음식은 짠맛이 잘 느껴지지 않으므로, 더욱 짜게 먹을 가능성도 있어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국을 먹을 때 음식물을 충분히 씹지 않고 넘기는 습관이다. 1차 소화기관인 구강에서 음식물을 잘 씹어 넘기는 것은 전체 소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도, 밥을 국물에 말거나 그릇 채 국을 호로록 마시는 과정에서 씹는 것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구강에서는 음식물의 덩어리를 씹고 삼키는 저작 작용에 의한 기계적인 소화와 타액에 의한 화학적인 소화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강에서의 소화가 잘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인 위에서의 소화가 무리 없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구강 소화가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위의 소화에 부담을 주게 된다는 뜻이다.


    많은 한국인이 밥과 함께 국을 먹는 것을 제대로 된 한 끼로 생각한다. 또한 국은 평범하고 소박한 재료로도 훌륭한 맛을 선사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음식문화이다. 하지만 몇 가지 반복되는 나쁜 습관으로 인해 국물 음식 자체가 종종 문제인 것처럼 지적되는 것은 안타깝다. 그러니 국물이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밥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을 지키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국을 먹을 때는 다량의 국물보다는 건더기 중심으로 먹도록 하고, 너무 뜨거운 상태의 국물을 한꺼번에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며, 체내에서의 건강한 소화 작용을 위해 음식물은 충분히 씹어서 삼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