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론스타'의 韓國상대 5兆원 소송... 첫 심리

    입력 : 2015.05.18 09:34

    [막오른 진검승부… 美 '투자분쟁해결센터'서 비공개 진행]


    한국 첫 '투자자·국가 소송'… 6개부처 대응팀 꾸려 준비
    '페이퍼컴퍼니도 보호하나' '매각승인 지연됐나' 등 쟁점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5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Investor-State Dispute)'의 첫 심리가 1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다. 이번 소송은 소송 가액이 46억7900만달러(약 5조10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소송이란 점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벌이는 사실상 첫 ISD이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소송을 담당하는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이날 오전 워싱턴DC 세계은행 본부 내 ICSID 회의실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심리를 열었다. 양측은 이날 오전 8시쯤 회의실에 들어갔고 오전 9시부터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했다. 이번 소송은 소송 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심리에서는 소송의 주요 쟁점인 외환은행 매각 승인 절차와 과세 등 전반적인 문제를 놓고 론스타 측 주장과 우리 정부의 반론을 듣는 구두 심문이 진행됐다. 심리에 앞서 한국 정부 합동대응팀의 김철수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심리 첫날인 만큼 기선을 제압하는 측면에서라도 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재판 신청 2년 반 만에 진검승부


    론스타는 지난 2012년 11월 21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부당한 과세로 손해를 봤다"며 거액의 배상을 청구하는 ISD를 신청했다.



    신청인은 LSF-KEB홀딩스, 스타홀딩스 등 8곳이고, 소송 대상은 한국 정부다. 정부는 이번 소송전의 중요성을 고려해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등 6개 유관 정부 부처가 참여한 정부 합동대응팀을 꾸렸다. 정부 측 주요 증인 중에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김석동·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권태신 전 국무조정실장 등 전직 고위 경제 관료가 포함돼 있다. 론스타에서는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 등이 나선다.


    한국 정부는 아널드 앤드 포터(Arnold & Porter)와 법무법인 태평양을 법무 대리인으로 선임했고 론스타는 국내 로펌 중 법무법인 세종과 미국 시들리-오스틴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핵심 쟁점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여부와 8000억원대 과세


    이번 소송의 첫째 쟁점은 '소송 자체가 성립되는지'다. 이번 소송의 원고는 론스타가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자회사들이다. 론스타는 이 회사들도 한국과 벨기에 간의 투자협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페이퍼컴퍼니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투자협정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재판부가 한국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다른 쟁점들과 상관없이 한국 정부가 승소하게 된다.


    실체적 쟁점이자 최대 이슈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했다는 론스타 주장이다. 론스타는 2007년 9월 HSBC에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원에 매각하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12월 지분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정부는 승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음 해 9월 HSBC는 인수를 포기해 매각이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지주로 외환은행을 넘겼다. 론스타는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승인 결정을 미뤄 HSBC가 인수를 포기했고 결과적으로 약 2조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외환은행 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승인을 미룬 것은 정당한 행정절차였다"는 입장이다. 증인으로 출석하는 전광우 당시 금융위원장은 15일 미국에 입국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론스타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없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며, 그런 점을 잘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쟁점은 세금 문제다.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과 하나금융 매각 수익 등에 대해 8500억원대 세금을 부과한 것에 대해, 론스타는 벨기에에 본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문제 삼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론스타 벨기에 법인이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며 실질 영업은 대한민국에서 했기 때문에 마땅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소송 전망] 올 7월까지 2차심리… 최종 결정은 1년 넘길 듯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이번 소송은 올해 2차례의 심리를 여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심리 일정은 담당 재판부가 소송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심리 일수와 방법 등을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총 2차례(총 20일간)에 걸쳐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들을 논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심리가 추가로 열릴지 등 세부 절차 진행 사항은 오로지 재판부가 결정하게 되어 있어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5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는 1차 심리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는지가 핵심이다. 오는 6월 29일부터 열흘간 열릴 예정인 2차 심리에서는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과 하나금융 매각 수익 등에 대해 부과한 8500억원대 세금이 정당한지를 집중적으로 따져볼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소송과는 달리 이번 사건은 2심(항소), 3심(상고)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재판부가 한 차례 결정하는 것이 최종 효력을 갖기 때문에 이번 심리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7월 초 심리가 끝나더라도 실제 결과까지는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중재안을 내놓기 전,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배상 금액을 낮춘 협상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론스타가 협상안을 내놓더라도 우리 정부가 이를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의 정서상 외국계 투기 자본인 사모펀드에 거액을 배상하기로 정부가 합의를 해 준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국가 간 소송)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 1966년 '국가와 다른 국가의 국민 간 투자 분쟁 해결에 관한 협약(워싱턴협약)'에 의해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