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름 잡은 K뷰티, 그 비결은 '거미줄 전략'

    입력 : 2015.05.11 09:27

    [7일만에 뚝딱, 그물망 네트워킹]


    - 거미줄 같은 충북 화장품 클러스터
    작약·대추 등 원료 생산지부터 공장·연구소·식약처 131곳 몰려
    '스피드 K뷰티' 일주일만에 시제품


    - 빨리빨리 정신과 창의력의 결합
    화장품 회사들 상표권 출원, LG·삼성전자보다도 많아


    8일 오후 10시쯤, 기자가 찾아간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LG생활건강 화장품 공장. 국내 2대 화장품 회사의 주력 공장인 이곳은 밤에도 불이 환했다. 작년 7월부터 주문량이 매월 경신될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덕분이다. 지난달 이 공장의 전체 생산량은 1700만개.


    이곳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져 있는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서쪽으로 14㎞ 거리에 있는 오송생명과학단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첨단 바이오 산업 단지인 두 곳에는 모두 30개가 넘는 화장품 업체의 생산·연구시설이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고 있다. 화장품 기업들의 생산시설과 연구소들이 이 지역으로 몰리면서 충북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장품 클러스터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16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LG생활건강 공장에 있는 화장품연구실에서 직원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 공장을 중심으로 한 충북 지역에는 한방(韓方) 원료 재배 단지, 화장품 회사, 연구소 등 131개사가 밀집해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공장에서 쓰이는 한방(韓方) 원료 공장이나 연구소도 승용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충북에 밀집해 있다. 제천에는 세명대 한방바이오산업임상지원센터가 자리 잡고 있고 한국화장품·한불화장품 공장이 있는 음성은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대추, 괴산은 피부의 수분 유지와 주름·미백에 좋은 인삼(人蔘)의 주 재배지다.


    진무현 LG생활건강 발효한방연구팀장은 "공장에서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원료 가공 기업이 40여곳"이라며 "오송의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가까워 연구·개발 담당자들이 24시간 내내 협의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문화'로 화장품 클러스터 탄생


    당초 이 일대는 화장품 생산·연구단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화장품 산업이 뜨고, 크고 작은 화장품 업체들이 인근에 입주하면서 한국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화장품 클러스터로 뜨고 있는 것이다. 입주한 화장품 관련 기업과 연구소만 모두 131개이다. 박운석 충북도청 화장품뷰티팀장은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스피드"라며 "화장품 원료의 재배와 가공 회사, 화장품 제조 기업이 자동차로 각각 30분 이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새 아이디어가 있으면 1~2주일 만에 시제품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종원 LG생활건강 부문장은 "충북에는 약용·천연 원료 재배단지와 연구소, 약초를 가공하는 원료 회사, 원료를 받아 화장품으로 만드는 화장품 제조회사가 모두 다 있다"며 "이런 입지구조가 '한방(韓方) 화장품'이라는 카테고리를 처음 선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 퍼프(puff) 등 화장품 관련 주변 제품에 독보적인 경쟁력이 있는 것도 큰 힘이다.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해 판매량이 5000만개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끈 에어쿠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종희 아모레퍼시픽 선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쓰이던 합성 라텍스보다 1.6배나 흡수력이 좋은 습식 우레탄을 사용해 퍼프의 오염방지와 피부 밀착력 등을 크게 높였다"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화학업체들과 협업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혁신이 탄생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창의적 응용력과 分業구조의 힘


    한국 화장품의 또 다른 강점은 새 아이디어를 부단히 상품화하는 응용력이다. 지난해 국내 상표권 출원 건수에서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더페이스샵 등 화장품 회사들이 1~3위를 싹쓸이한 게 이를 보여준다. 한국이 자랑하는 ICT의 선두주자인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4위, 8위였다. 연간 화장품 생산 품목수도 2010년 8만5533개에서 지난해 10만1362개로 18% 정도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에 수입된 화장품 품목수 증가율 4%(7만1734개→7만4725개)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화장품 업체들 기술 수준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글로벌코스메틱사업단 임명선 연구원은 "한국 화장품의 기술 수준을 분석한 결과 2007년에는 선진국의 67%였으나 지난해에는 80%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IFCC(세계화장품학회) 총회에서는 한국 연구자들이 이전보다 4~5배 많은 6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화장품 산업 안에서도 제품의 개발·제조를 전담하는 ODM(제조자 개발 생산) 업체와 화장품을 기획하고 유통만 하는 브랜드숍 업체가 역할 분담을 하며 긴밀하게 협력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도 강력한 경쟁력이다. 화장품은 시장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유통업체가 소비자 반응을 파악해 기술을 가진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게 투자비는 줄이면서 신제품은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미 국내 양대(兩大) 화장품 ODM기업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세계 500여개 화장품 업체에 매년 6000여개 제품을 각각 공급하는 글로벌 ODM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화장품 유통업체인 토니모리의 배해동 회장은 "ODM 업체는 개발과 제조를 전담하고 유통업체는 브랜드 육성과 판매에 집중하는 절묘한 분업구조를 통해 어떤 외국 기업보다 빠르게 새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