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 22 - '요리본능'을 잠시 묻어두고 산다면

  • 정유미 칼럼니스트

    입력 : 2015.04.21 16:51

    18세기 제임스 보스웰이라는 스코틀랜드 작가는 인간을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동물도 어느 수준에서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요리하는 동물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만이 고기를 요리함으로써 문명과 자연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경계선을 긋는다고 했다. 여기에 리차드 랭엄[그의 책 제목이 '요리본능'(원제:Catching Fire)이다]은 인류가 오늘날과 같이 진화하게 된 핵심은 조리된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요리가설'까지 주장한다. 요리로 인해 소화가 쉬워져 더 집약적인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게 되어 인간의 뇌는 더 커지고 소화기관은 더 작아졌다. 또한 소화에 필요한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듦에 따라(침팬지의 경우 음식을 씹는 데 가만 앉아 하루 6시간을 보내야 한다) 활동 시간이 늘어난 인간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에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을 모두 종합해보면 결국 '요리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요리가 현대의 우리 생활과는 조금 멀어져 있다. 짧은 요리시간이 이를 증명한다. 얼마 전 한 리서치 업체에서 22개국 15세 이상 남녀 2만 7천명을 대상으로 국가별 요리시간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보고했다. 여기서 한국인은 요리를 하는데 일주일에 겨우 3.7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나, 22개국 중 요리시간이 가장 짧았다. 참고로 조사업체는 요리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외식산업 발달 정도, 가공식품 보급도 등을 꼽았다고 한다. 물론, 표본수는 적절했는지, 응답자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응답자의 거주 지역 조건은 국가별로 유사했는지, 문화권에 따라 요리를 한다는 의미에 기준 차이는 없는지 등, 조사방법에 몇 가지 의문이 추가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요리시간이 짧다는 사실만은 확인이 되는 부분이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요리하는데 드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식사는 사서 먹는 게 현명하다. 거기다 밖에서 먹는 것들은 어설픈 내 요리 보다 더 맛있고, 경우에 따라 직접 만든 것에 비해 저렴하기도 하다. 효율성을 위시한 이런 식의 분업주의 원리는 오랜 시간 우리 삶에 설득적이었으며 사회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같은 시간에 요리보다는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가치 있다 생각하며, 요리는 어쩌다 특별한 날 이벤트처럼 하는 정도다. 이마저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라면을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는 것까지 요리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여기저기서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소재로 삼은 프로그램이 자주 눈에 띈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도 많고, 몇몇 요리 전문가들은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누리며, 비전문가들도 자신의 요리법을 소개한다. 요리하는 시간이 짧다는, 요리와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한국인에게 이런 아이템들이 인기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원초적인 것을 자극하여 즐거움(만족감)을 주는 것이 매체 오락물의 특성이다. 결국 타인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유쾌해 한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무엇인가가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바빠서 잠시 묻어두고 있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던 요리에 대한 본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평소 요리는 '나 몰라라' 하는데도 가끔 요리하는 프로를 보며 '재밌다'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요리본능'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참지 말고 요리를 시작하자. 냉장고에 있는 먹다 남은 재료를 꺼낸다. 부족하면 가까운 마트에서 먹고 싶은 재료를 사들고 온다. 그것들을 먹기 좋게 손질해 굽고, 끓이고, 찌고, 볶고, 튀긴다. 거기에 좋아하는 양념도 넣는다. 필요하면 인터넷의 도움도 받는다. 재료들의 모양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한다. 그릇을 꺼내 멋지게 담고 잠시 결과물을 감상한다. 요리를 위한 전 과정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실행하고, 몰입하는 것이 두뇌를 창조적으로 사용하는, 매우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타인과 나누는 덤까지 보태진다면 그 이상 완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