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데이터,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2)

  • 서진영 경영·철학박사

    입력 : 2015.04.16 10:35

    3) 빅데이터의 활용 - 의료분야


    (가) 퀴즈 대왕 슈퍼컴퓨터를 어디에 쓰지?


    * 사람들은 왓슨(Watson)을 슈퍼컴퓨터로 부르지만 정작 왓슨을 만든 IBM의 전문가들은 언어 습득을 위한 고성능 컴퓨터로 부른다.


    왓슨은 전문적인 질의응답 시스템(Question Answering System)이다. 사람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 인간의 자연 언어를 이해한다. 사람이 질문하면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 다른 어떤 컴퓨터 시스템보다 심오한 방식으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 왓슨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퀴즈 쇼인 제퍼디(Jeopardy)에 출연하면서부터이다. 제퍼디는 매일 밤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이다.


    2011년 2월 왓슨은 제퍼디에서 74연승으로 가장 많이 우승을 차지한 챔피언 켄 제닝스, 그리고 3,255,102달러로 가장 많은 상금을 획득한 챔피언 브래드 러터와 사흘 동안 퀴즈 대결을 펼친 끝에 두 명의 챔피언을 누르고 우승한다.


    왓슨의 우승은 인공 지능을 포함해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어느 수준까지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까다로운 인간의 퀴즈를 듣고 고도의 연산 과정을 거쳐 퀴즈의 정답을 찾아내는 기술은 그동안 컴퓨터의 능력 밖에 있었다. 하지만 왓슨은 수많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수수께끼나 말장난, 힌트 같은 인간의 복잡한 언어를 이해하고 불과 2, 3초 안에 추리해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보여 줬다.


    *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왓슨의 능력은 많은 양의 자연 언어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있다.


    신문 기사나 백과사전, 각종 저널 혹은 영화의 데이터베이스나 배우 명단 같은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담은 2억 건의 문서를 고도의 알고리즘을 통해 빠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조합해 정답을 찾아낸다. 뉴스 기사처럼 구조화되지 않은 데이터와 데이터 테이블 안에 들어 있는 구조화된 형식의 데이터 모두를 활용해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나)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슈퍼컴퓨터


    * 이런 슈퍼 컴퓨터인 왓슨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왓슨은 이미 의료 분야에서 첫 고객을 확보했다. 미국의 '세톤 헬스케어 패밀리'라는 병원이 환자 데이터 분석을 위해 왓슨의 기술을 채택했다.


    전 세계 의학 전문지에 실린 각종 논문과 질병 및 치료 사례, 여기에 많은 양의 환자 데이터까지 꼼꼼하게 분석하고 종합해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능한 일일까?


    * 사만다 다롄이라는 이름의 환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오고 의사가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 환자에게서는 통증과 염증을 동반한 안구 출혈, 몽롱(朦朧)한 기운, 빛에 대한 과민 반응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의사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야 한다. 이때 의사 옆에 왓슨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 의사는 왓슨에게 환자가 보이는 증상들을 설명하고 어떤 질병일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 왓슨은 미리 입력된 전 세계의학 관련 지식 및 임상 실험 결과 등을 분석하고 종합해 환자의 잠재적인 질병 5가지를 내놓을 것이다.


    환자가 포도막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게 나왔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의학저널과 참고 문서의 해당 부분을 바로 의사에게 보여 주고, 의사는 왓슨이 제시한 증거들을 보며 직접 분석하고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포도막염을 일으키는 다른 질환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사는 왓슨에게 다시 질문한다. 포도막염과 관련된 질병과 질환이 무엇인지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왓슨은 다시 수억 건의 의학 정보를 빠르게 분석해 베체트병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신 염증 질환 같은 다른 여러 잠재적인 진단들을 제시한다.


    어쩌면 왓슨은 환자의 병원 방문 기록을 통해 이 환자가 관절염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검토하게 된다.


    건강 검진 기록에서 사만다 다롄에게 원형 발진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도 있고 현재의 질병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던 몸살과 두통을 호소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기에 추가로 환자가 라임병의 발병율이 높은 지역인 코네티컷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사만다 다롄에게 라임병이라는 진단 결과를 제시한다.


    * 이제 의사는 사만다 다롄을 어떻게 치료할지 결정해야 한다. 왓슨은 라임병 치료를 위해 어떤 항생제가 자주 처방되는지 알려 준다. 독시사이클린, 아목시실린 같은 항생제들을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왓슨은 다시 환자 기록을 통해 사만다 다롄이 임신을 했고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아낸다. 이 같은 특정한 상황까지 고려해 왓슨은 2005년 연구된 내용을 바탕으로 세파렉신이 임산부가 복용할 수 있는 항생제이고 독시사이클린과 아목시실린을 사만다 다롄에게 처방해서는 안된다고 알려 준다.


    * 지구상에 존재하는 질병은 수만 종이 넘는다. 어떤 질병들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수년씩 걸리기도 한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전 세계에서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최신 의학 정보를 따라잡아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의학 논문의 수는 7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 매우 복잡한 증상을 진단하는 의사들은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고 잘못을 찾아내지 위해서는 수많은 양의 정보가 필요하다. 왓슨은 많은 양의 전자 의료 기록, 각종 의학 저널, 전 세계 의학 전문지에 실린 논문, 임상 시험 및 치료 사례를 비롯해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만들어지는 음성 기록까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 방대한 의료 관련 데이터를 더욱 정교하고 빠르게 분석해 처리할 수 있는 왓슨의 기술은 엄청난 의학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


    - 빅 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분석 능력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왓슨은 보여 주고 있다.


    4) 빅데이터를 이용한 한국의 비즈니스 사례- 유유제약의 멍 치료제


    * 지금의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졌고 정보도 많아졌다. 약사나 의사의 조언과 처방만을 믿기보다는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자신의 증상과 관련된 질환을 찾아보고 의약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유유제약은 약사와 의사, 영업 사원들의 조언과 경험을 통해 의약품을 개발하고 판매해 왔다. 하지만 국내 300여 개의 제약 회사들이 출시한 제품들이 시장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눈에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을 사로잡기는 더욱 어렵다. 유유제약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 유유제약은 2006년 베노플러스란 멍 치료제를 개발해 판매해 왔다. 멍이 많이 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유유제약의 유원상 상무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유원상 상무의 부인이 베노플러스를 자신도 쓰면 안 되느냐고 물어온것이다. 유 상무는 그 순간 중요한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 왜 멍 연고를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마케팅을 해 왔느냐는 의문이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멍 치료제를 판매할 수 있다면 더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막연한 추측만으로 막대한 마케팅 비
    용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유 상무는 멍 치료제에 대한 여성들의 수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멍 치료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물었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모을 수 있는 정보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유 상무는 데이터 마이닝 전문 회사인 다음소프트와 함께 멍 치료제에 대한 시장 수요 파악에 나섰다. 다음소프트는 멍과 치료 방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트위터와 블로그, 인터넷 댓글 등 26억 건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 결과는 뜻밖이었다. 멍 치료제에 대한 여성들의 수요가 어린이 시장보다 4배나 크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멍 치료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참담한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시중에 멍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멍이나 부기를 뺄 때 치료제 대신 달걀과 쇠고기를 먼저 떠올리고 실제로 그렇게 치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 유 상무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유유제약이 개발해 판매 중인 제품이 인지도 면에서 달걀과 쇠고기 같은 민간요법에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 데이터가 내놓은 결과는 새로운 기회를 의미했다. 멍 치료제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 유유제약은 베노플러스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제품 디자인을 여성들의 감성에 맞추고 마케팅 메시지도 새롭게 고안했다.


    * 국내 제약 회사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약가 인하 조치로 기존 처방 약 위주의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해 있다.


    많은 제약 회사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의료 기기 수입이나 건강기능 식품 쪽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유유제약도 기존 처방전 위주 전략에서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쪽으로 사업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약국에서 판매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전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소비자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 숨은 충족되지 않은 니즈(Needs)마저 알아내야 성공 또한 보장 받을 수 있다.


    - 빅 데이터는 소비자를 향한 유유제약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가장 중요한 고객인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생각을 읽는 법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숨어 있던 시장이 새롭게 열렸고 뜻밖의 기회도 찾아왔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건 유원상 상무 자신이었다.


    "겸손해졌어요. 제약사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걸 다 안다고 그동안 착각하지 않았나, 그게 틀렸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의 생각이 담긴 데이터를 통해 여러 번 확인했어요. 소비자들의 생각을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얻어낼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제 직감으로만 마케팅을 하지 말고 데이터를 통해 얻은 결과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저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나 할까요?" - 유원상(유유제약 상무)



    (다음 회에 계속)





    서평전문 PDF파일빅데이터,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