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 19 - 미식(美食)하는 가족의 식탁

  • 정유미 칼럼니스트

    입력 : 2015.03.10 15:15

    현대의 가족은 위태롭다. 여러 근거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하나는 가족과 교류하는 시간 자체가 짧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SBS 8 뉴스, 2015.2.19)에서 이런 통계를 봤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11분(주말을 포함하여 평균 냈기 때문에 평일에는 더 짧을 것이다), 대화시간 9분, 일주일에 3~4번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비율 59%(OECD 평균 78%).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슬프긴 해도 구성원 각자가 일터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다 추가적인 업무와 과제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그러니 사회구조적 한계로 시간의 양을 늘릴 수 없다면 질적 개선 방법이라도 생각해봐야겠다. 더욱이 가족과 보내는 얼마 안 되는 그 시간마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 빼앗겨 낭비하고 있다면 말이다.


    인문학 작가인 박민영은 《이즘, 인간이 남긴 모든 생각》이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인류의 불행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온다고 단언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때만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아무리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이 역사의 대부분을 부족의 일원으로 살아왔으며, 그런 인간에게 자신의 집단과의 괴리(추방)는 곧 죽음과도 같은 의미였다고 설명한다. 현대에 와서는 중간 공동체(부족, 지역사회 등)가 소멸되고, 국가와 가족만이 남았다. 하지만 국가는 너무 크고 추상적이어서 위안을 줄 수 없고 가족은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간은 위안 받을 곳이 없어 불행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족의 위태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면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가족관계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가족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많은 인류학자들이 가족의 기원을 식량을 구하고 관리하는 데 구성원들이 공헌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던 것에서 찾는다. 농경사회는 말 할 것도 없고, 그 이전부터 가족은 구성원들이 수렵·채집을 통해 먹을 것을 구하고, 일부는 요리하고, 일부는 외부로부터 나머지 식량을 지키는 등의 협력을 필요로 해왔다. 이런 내용은 리처드 랭엄의 《요리본능》에 인류학적, 진화학적 근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 있다. 이런 협력에는 자녀들도 제 몫을 당연히 보태야 했으며, 심지어 노인도 일을 조직하고 통솔하는 것 등을 담당하며 가족의 식사에 일조했다. 화폐로 식량을 교환하면서는 부(富)를 활용하는 방식의 진화로 식량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다각적으로 재편되었지만, 가족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공유하는 것이 가족이다. 그러니 음식을 나누는 방식(형식)은 가족관계(내용)를 바꾼다.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이 부부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미식가 부부는 적어도 하루에 한번 서로 화합할 즐거운 기회를 갖는다. (중략) 그들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대화 주제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뿐 아니라 이미 먹은 것, 앞으로 먹을 것, 다른 집에서 관찰한 것, 유행하는 요리, 새로 창안된 요리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사하는 동안 음식을 주제로 대화하면 서로의 관심사가 확인되면서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 미친다는 예리하고도 구체적인 분석이다. 미식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이를 값비싼 식도락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글자처럼 아름답게(美) 먹는(食) 것 또한 미식이다. 가족을 위해 차려진 음식에 대해 서로 생각과 가치를 대화로 공유한다면 이 역시 '아름답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현대인은 습관적으로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가족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한다. 때문에 매번 가족관계 위기를 언급하는 내용들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즐거운 곳에서는"으로 시작하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의 작사가 존 하워드 페인은 사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마지막은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의 길거리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가족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아름답게 전하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이 사람조차도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마음 가는 데로 쉽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마음이 간다면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 모이는 식사 자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자. 그러면 노력의 대가는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식탁문화로 자리 잡아 가족애도 더불어 살아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