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심원테크 대표 "창조적인 희생 없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입력 : 2015.02.26 09:49

    재제조 제품. 흔히 접하지 못한 제품군이라 그런지 조금은 생소하다. 재생이나 재활용품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과도 엄연한 차이가 있다. 재제조는 낡은 제품을 다시 새제품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보다 복잡한 공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재제조 산업 분야에서 국내 토너카트리지 생산의 표준 업체로 꼽히는 사회적기업 ㈜심원테크. 신제품과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면서, 사회적 의미까지 찾는 '기업 공정'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심원테크 김준호 대표를 통해 그들의 쉽지 않은 도전기를 들어봤다.



    토너카트리지 재제조 제품 생산기업인 심원테크 대표실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많은 인증서들이다. 조달청 우수제품 지정기업, K마크 인증기업, 친환경제품 인증기업, ISO-9001(품질) 인증기업, ISO-14001(환경) 인증기업,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국제특허를 포함한 5건 이상의 특허 등 재제조 업체로는 대부분의 품질 인증을 받았다. 게다가 사회적 가치까지 추구하면서 장애인표준사업장,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 등에도 선정됐다. 2002년 설립 이후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까지 창출하면서 지난해에만 매출을 18억 원 가까이 올렸다. 기술이나 환경, 사회적 측면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김준호 대표는 아직 찾아야 할 가치가 많이 남은 듯했다.


    "친환경 재제조 산업 위한 인증 지원 필요!"


    우선 재제조 제품이 가진 장점부터 몇 가지 들어보겠다. 사용 후 제품을 분해하고 세척, 검사, 보수나 교체 등의 과정을 거쳐 '새제품'으로까지 성능 유지, 폐기물로 버려질 수 있는 낡은 제품을 재가공해 환경오염을 낮춤, 신제품과 질적으로 비슷하지만 가격은 30~60% 수준으로 저렴, 일반 제조업보다 3배 가까운 고용창출 효과. 여기까지 들어보면 재제조 산업이 새로운 산업의 축으로 각광 받을 만하다. 하지만 대중화되지 못하면서 아직 일반 소비자들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심원테크도 토너카트리지 분야 재제조 업체로는 국내에서 손꼽히지만 대부분 조달청을 통한 공공기관 유통을 주로 한다. 시장에서는 아직 가격 경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해 소비되는 토너카트리지는 10만 개에 이릅니다. 이들 중 국내 생산은 거의 없고 절반 이상이 값싼 중국산이죠. 가격 면에서 경쟁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이 낮다보니 프린터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환경오염도 심각하죠. 토너파우더를 다 쓰고 나면 재사용하지 못하고 매년 200톤 이상 환경 폐기물로 매립되는 실정입니다. 토너파우더의 분말 입자가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이라 환경에 좋지 않죠. 반면 재제조 제품은 원재료 소비를 절감하면서 연간 960톤의 환경 폐기물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재제조 제품의 질이 떨어져 고장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품질은 원제품에 가깝습니다. 중국산 재생?충전 토너에 비하면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편이죠. 가격도 원제품에 비하면 40% 선으로 저렴합니다. 재제조는 자동화가 어렵기 때문에 일반 제조업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도 합니다. 특히 심원테크는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고용도 활성화하고 있죠."


    재제조 산업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어 정부에서도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재제조 제품의 품목 고시를 통한 표준화가 이뤄지진 않았다. 김 대표는 재제조 업체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품목 고시가 필요하다고 한다. 심원테크가 조달청부터 산업기술시험원, 특허청 등에서 각종 인증서나 특허를 받는 것도 토너카트리지가 품질인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중복해서 인증을 받게 됐다. 


    "국내 재제조 산업은 아직 품질인증 고시가 되지 않아 업체마다 질적인 차이가 많습니다. 토너카트리지의 경우 일부 업체의 불량률이 20~40%에 이르기도 합니다. 심원테크는 불량 발생율이 1% 이내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업체마다 질적 차이가 크죠. 평균 1.5년에 1개씩 특허를 출원할 정도니까요. 토너카트리지는 다양한 제품이 있어서 품목 고시를 통해 표준화하면 평균 불량률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산업부나 환경부, 대기업, 중소기업 등 토너카트리지 관련 기관과 업체가 모이는 회의가 있는데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편이죠."


    흔히 재생이나 재활용 등과 재제조 제품이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고용품을 깨끗하게 만든 재생 제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제조 산업은 신제품과 경쟁하는 분야로 볼 수 있다. 재제조 산업을 재생산업보다 상위개념으로 보는 이유다. 재제조 산업이 환경부의 재생 산업과 달라 표준화된 품목으로 인증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순기능 역할 하는 사회적 경제를 위해"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김 대표는 사회경제 분야의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그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체제로 운영되면서 기업과 주주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형태로 기업문화가 흘러왔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도 기업이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 시절에 배운 것은 기업의 목표가 이익 추구에 있었죠. 기업의 사회적 가치나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족했죠.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요구가 나오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일반 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차이는 사회적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나뉩니다. 사실 부족한 인력과 기술로 대기업과 경쟁하는 건 비교가 안 되죠. 재제조 산업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대기업에서 나서지 않는 건 수익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동화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게 낫죠. 사회적 기업은 수익도 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입니다. 친환경이나 취약계층 일자리까지 안고 가기에는 일반 영리 기업이 나서기 쉽지 않을 겁니다."


    심원테크는 2007년 사회적 기업 법안의 추진 전부터 취지에 맞게 기업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됐다. 2011년에는 '더착한 서울기업지정서'를 받았고, 올 2월에는 서울시내 400여 개 사회적 기업 중 서울시 '우수 사회적 기업' 13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 취지에 맞게 원활하게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은 드문 편이다. 사회적 기업이 대부분 열악하다보니 지원에 매달리는 경우도 많다. 세금을 들여 투자했는데 막상 사회적으로 나아진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도 따른다. 성과도 없이 '먹튀' 논란과 임금 착취 등의 문제까지 거론되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러 초기의 문제도 차츰 여물어가는 과정이라며 감쌌다.


    "처음 사회적 경제 분야에 정부 투자가 이뤄진 것은 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의 자립도가 낮아 실패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죠. 그래도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에 순 영향을 주는데 이바지한다고 봅니다. 지원이 없어진다면 아예 이런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서는 주체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좋은 뜻으로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어도 윤리적 실천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겠죠. 지역 사회적경제 협의체 안에서 공동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훈련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서로 일을 나누고 배워갈 수 있으니까요. 일반 직장은 그만두면 스펙으로 남는데 사회적 경제 분야는 실패하면 사회적인 외톨이가 되기 쉽죠.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와 교육이 필요한 이유죠."


    '사회적협동조합 금천사회경제연대'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김 대표는 이 조합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활동과 판로 개척, 교육 연구 홍보사업 및 공공기관 협력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3년 전 금천구 사회적경제네트워크로 시작해 지역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적 경제 분야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수치화 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함께 일하는 터전을 만드는 복지가 우선이다"


    김준호 대표가 디지털 기기 분야에 관심을 두고 인연을 맺은 건 군대 장교 시절부터다. 20년간 군대 생활을 마치고 예편하면서 바로 2002년 토너카트리지 분야로 창업했다.


    초기에 힘겹게 사업을 꾸려가면서도 그는 장애인을 고용했다. 생산직 직원으로 장애인을 면접 보게 됐는데, 일부 직원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채용하기에 이른다. 그래도 생산성에 큰 문제가 없게 되자 점차 장애인 채용을 늘렸다. 현재는 직원 19명 중 12명이 장애인이다.


    "장애인 채용이 늘었지만 처음엔 장애인 고용 사업장이라는 내용을 알리지 않았어요. 장애인을 위한 보조를 받으며 운영하는 업체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토너카트리지 기술로 일반 기업과 경쟁하는데 이미지가 좋진 않을 것 같았죠. 그러던 중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으면서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도 자연스레 등록했죠. 5년간 재직한 사원이 사고로 인해 정신 지체를 겪게 된 일이 있었어요. 생산성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회사에서 2년간 기다려줬어요. 현재는 그 직원이 제품 생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고, 차분하게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보람이 느껴지죠. 장애인을 고용한다고 해서 복지가 아니라 일할 터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복지라고 봅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컨설팅을 나온 적이 있다. 매일 작업 목표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계획표를 붙여 알려주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작업 동선에 불필요한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장애인이 있기에 목표 생산량을 정해 놓고 하면 불량률만 높일 수 있다"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 복지를 늘리고 매일 적정량을 생산하는 게 낫다"고 못 박았다. 그래서인지 '칼퇴근'은 기본이다.



    "리더의 자격, 창조적 희생 따라야"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창업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리더의 자격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창조적 희생'이다.


    "사회적 경제 분야를 보면 현재 대부분 열악하기 때문에 리더의 창조적 희생을 전제로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희생도 없이 기회가 생기면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실패한다고 봅니다. 창조적인 희생 없이 결과는 나오지 않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매순간 결정을 내리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몫입니다.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최종 목적이 영리에만 있어선 곤란합니다. 스스로 정화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지역 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고민이 먼저죠. 젊은 청년들이 사회적 경제 분야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벤처기업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죠. 사회적 기업은 자체가 목적이지 수단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매순간이 위기라고 한다. 현재 가산디지털단지 내의 작업장을 구하는 과정도 그랬고, 제품을 개발하는 모든 순간도 위기였다. 그는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부터 사업을 확장해 OS기기 통합 사업을 구축하려 한다.


    "올해부터 사업 확장을 계획 중입니다. PC 조립 업체 우수사회적기업과 손잡고 OS기기 통합 사업을 하려고 하죠. PC부터 모니터, 프린터, 카트리지 사업을 통합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가려고요. 자원 재생 분야에서 꾸준한 기술혁신을 통해 친환경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사무기기 종합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면 취약계층에 무상 분배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울타리 역할도 하고 싶어요."


    위기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성장과 함께 나눔까지 생각하는 그의 창조적 희생 리더십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