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 16 - 먹는 행위는 자기애의 표현이다

  • 정유미 칼럼니스트

    입력 : 2015.02.09 09:59

    얼마 전 강릉에 갈 일이 있었다. 근처 어시장이 있다고 해 잠시 들렀다. 어항 속 탱탱한 오징어를 보자 군침이 돌아 오징어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십여 년 전, 양양 낙산사 근처 해변에서 맛있는 오징어회를 먹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동해안에서 먹는 산 오징어 맛은 다른 곳엔 없는 별미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강원도에 갈 기회가 생기면 종종 오징어회를 찾는다. 시장에서 포장해 파는 오징어회를 사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는데 직접 오징어를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주인의 능숙한 손놀림과 오징어에 특화된 기계가 회를 만들어 내는 동안 나는 꽤 싹싹하고 인심 좋아 보이는 여주인에게 몇 마디를 붙였다. 친밀함을 전달하여 내 오징어를 좀 더 잘 손질해 주기를 바라는 얄팍한 의도를 가진 채였다.


    "몇 년 전 속초에 갔더니 오징어가 잘 안 잡힌다는 것 같던데, 요즘은 잘 잡혀요?"라고 운을 띄웠다. 그리고 몇 마디를 나눈 후 주인은 칼 든 손을 잠시 멈추고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갔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고기잡이배에 고기가 잔뜩 실려 항구로 들어오는 모습만을 본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낭만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장사를 해서 그런지, 어부들이 그것들을 잡기 위해 배 안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했을지, 고깃배를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어부들 몸에서 나는 비린내와 그들의 까칠한 피부에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삶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지만, 남다른 울림이 있었다. 생선을 쥔 그녀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는 그 어떤 위대한 문호의 표현보다도 강한 포스(?)를 풍겼다.


    그날 오징어회는 단순한 맛평가 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감사가 넘쳐 감동이 되고 익숙한 그 음식이 특별해지고 기분도 산뜻해졌다. 한 점씩 취할 때마다, 바다의 생명력과 얼굴도 모르는 어부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자연과 어부에게 감사했다. 이를 위해 내가 지불한 금액이 적당했는지 의문스러워지기도 했다. 편안히 앉아 싼 값에 먹었다는 것에 또 감사했다. 그동안 음식을 먹으며 이런 수준의 감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즉, 음식과 내 자신이 얼마나 단절되었던가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제레미 리프킨도 《육식의 종말》에서 언급했듯 고대부터 인간은 본래 먹는 대상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보니 음식으로 취할 때는 그 대상에 불편한(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기꺼이 음식이 되어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동반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함부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관계도 긴밀했던 것이다.


    나는 오징어를 먹는 동안 천천히 씹으며 맛을 오롯이 느껴보기도 하고 식감도 곱씹었다. 그러다 반성했다. 평소 음미하지 않고 급하게 먹어온 음식들에 미안해서다. 최근 고대안산병원 김도훈 교수팀의 조사 내용을 보면, 응답자 8771명 중 약 90%정도가 식사시간이 15분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러니 음식을 음미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 마리아 산체스라는 심리치료사는 자신의 책에서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식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먹는 즐거움도 모른다. 그들은 매우 빨리 먹고, 잘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음식을 넘기며, 음식의 맛을 잘 음미하지 못한다. 거기에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섭식행동 자체가 아닌 자기애 결핍 등 정신적 문제가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의 식사가 위 전문가가 말한 섭식장애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음식을 두고 사고해볼 겨를 없이 먹다보니,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음미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원하지 않더라도 먹는 행위를 통해 음식은 그 자체가 나 자신이 된다. 그러니 먹는 행위는 스스로를 만들고 가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먹는 행위 전체는 자기애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영양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과 하나 될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가치를 느껴보는 것도 자신을 위해 중요하다. 내 앞에 놓인 음식에 감사하고 음미하는 것은 평범한 식사를 의미 있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