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돈 스타키코리아 대표 "지금 힘들고 어려운 길에 서 있다면 그 현실에 감사하세요"

    입력 : 2015.01.28 10:37 | 수정 : 2015.02.13 15:44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가능성을 타진하고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에 서 있다면 그 현실에 감사하세요. 영웅들의 이면에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기에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족하면 그 풍족함에서 끝나던지 보통은 그 풍족함조차 지켜내지 못합니다. 남들보다 모자란 현실에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성공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성공의 행운도 따릅니다."



    전세계 지사 경영평가 1위,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수익률 1위, 고객만족도 1위까지... 보청기업계 선두기업 스타키코리아의 심상돈 대표는 스타키의 세계 시장 정상 재탈환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 지사의 18년차 CEO이다.


    지난 2013년말 스타키의 아시아태평양 매니저들이 스타키코리아의 경영전략과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모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서울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초대위원장, 성동구 상공회장,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대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MBA)교우회 차기 동문회장까지 선임되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심지어 그가 헤드로 있는 모든 업무가 각각의 중대 사안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청년처럼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대화 내내 단 한번도 미소를 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얼굴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스타키코리아는 전세계 30개 스타키 지사 중 1위, 국내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 35%로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사와 각 나라 지사에서도 스타키코리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사는 많고, 치열한 시장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CEO가 대외활동까지 하니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활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CEO의 사회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도 향상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와 후원을 통해 제 개인적으로 얻고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그는 마치 현재의 모든 사안을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간다기 보다는 잔잔한 호수를 유영하듯 즐기는 자세로 임하는 것 같았다. 스타키는 항상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서울스페셜올림픽-위원회는 사단법인 등록을 대기 중이며, 스타키코리아 빌딩에 입주한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와 한국청각장애인협회에는 임대료 지원과 문화예술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성동구 주민들에게는 지하 스타키홀을 개방해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예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10년 넘게 후원의 개념으로 작가분을 지원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장애인과 시민들에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사회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여유가 있어야 예술도 즐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예술을 접함으로써 삶의 여유도 생기고 심적 평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이러한 감성 지원도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정신지체장애인이나 자폐아들을 도우며 본인이 더욱 마음의 정화가 됨을 느낀다고 한다. 일과 사회활동, 삶의 철학이 서로 아우러져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그에게서 과중한 책임에 대한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We Never Say No!


    전문경영인 CEO의 평균임기 2년 남짓인 살벌한 경영환경 속에서 17년을 외국계 회사 전문경영인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큰 위기 없이 꾸준히 세계 지사 중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스타키코리아만의 전략이 궁금했다. 심 대표는 "성공을 위한 스페셜 비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경영이나 모든 세상 이치를 보면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은 아니지만 우리가 국내시장에서 1등을 유지하는 데는 운도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이 시장에 외국계 회사로서 투자를 한 것이 시장 안착의 첫 번째 이유겠죠. 그러한 발판을 마련하고 나서 우리만의 기업정신을 만들어간 것이 주요했다고 봅니다."


    스타키코리아의 표어는 "We Never Say No!"이다. 심 대표는 직원들에게 고객 요구에 있어 절대로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때론 제품의 AS기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수리 요청을 할 때가 있다. 그래도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보증기간 내 제품 분실 시 새 제품을 다시 제공하기도 하는데 보증기간이 지난 후에도 분실을 했다고 제품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고객의 요구를 들어준다. 제조가 복잡한 맞춤 제품의 경우에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혹자는 '고객 길들이기'에 빵점이라고 한다. 때론 내부 직원들이 룰을 따라야 하지 않냐고 우려 섞인 직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심 대표가 생각하는 고객 만족은 시스템과 룰이 먼저가 아니다.


    "솔직히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고객이나 대리점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결국 우리가 먹고 사는 가장 큰 이유가 소비자 덕분 아니겠습니까?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기존 서비스에 불만이 있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런 요구를 했을까를 생각하면 절대로 소비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일련의 서비스 정책이 우리를 업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들어 줬습니다."


    물론 이러한 요구나 예외적인 케이스 역시 일일이 체크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데이터화 한다. 이런 사례들이 모여 결국 신뢰로 쌓인다. 그래서 스타키코리아와 한번 계약을 한 대리점 고객은 좀처럼 업체를 바꾸는 경우가 없다.


    고객만족은 외부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미션이 아니다. 내부 고객인 직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심 대표는 직원도 고객이라는 마인드이다. 관리자는 팀원들을 고객처럼 모셔서 만족감을 높여야 하고, 직원들 개개인 역시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직원들의 가족이 만족할 만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직원 만족도를 높여서 충성도 역시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를 일으킨다.


    현재 스타키코리아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35%로 독보적 1위, 제조 현장의 시간당 생산량은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위기에 강한 상고출신 개천용


    "사실 개천용에 대한 말씀을 듣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일반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CEO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죠. 저는 상고 출신이고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고, 싸움도 곧잘 했죠. 공부에 대한 관심도, 공부로 성공할 자신도 없었기에 어릴 때부터 꿈은 사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고도 그래서 들어간 것이었죠."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심 대표가 남들처럼 대학에 입학해서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원하셨다. 오히려 심 대표는 대학에 입학할 등록금으로 차라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맞섰다. 치기 어린 마음에 반항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심 대표의 운명을 바꿔 놓은 당일, 그날도 아침식사 자리에서 진로를 놓고 아버지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속상한 마음에 하루 종일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다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그에게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혈압으로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더욱이 재수를 하던 심 대표가 학원도 가지 않았기에 연락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는 곁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 때의 일이다. "저는 성격상 위기일 때 굉장히 강해집니다. 아버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면서 꼭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장 함께 어울리던 주변 친구들의 연락처를 모두 없애고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대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죠. 대입 시험이 고작 2개월 남짓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약속대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 일부러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막노동부터 보험 영업, 이삿짐 센터, 책 영업, 페인트 공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담금질하던 시절이었다.


    "정신 없이 현실에 몰두하다가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카투사였죠. 사실 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 바로 군대입니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제가 카투사에 가서 3년간 영어만 했죠. 당시 미군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난청과 보청기에 대해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사 친구도 생기고 미군 병사와 친해지며 미국의 문화를 알게 되었죠. 아마 제가 군생활을 카투사에서 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현재 미국 회사의 CEO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심 대표는 미군 동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흑인 병사들은 그를 형제처럼 대해줬다. 백인 병사와 문제가 발생하면 대신 나서서 싸워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봉사활동의 소중한 가치도 군에서 경험했다. "주말만 되면 흑인 병사 친구와 함께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내인 입장이었지만 점차 봉사의 가치에 대해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치료도 해주며 오히려 제가 마음의 치료를 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와 명예, 지위고하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 흑인 병사처럼 마음만 있다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닫게 되었죠."


    미군 병원에서 일하며 의료기기를 접하고, 그들과 함께 군생활을 하며 문화를 배운 것은 그가 꿈꿔오던 사업의 방향성을 잡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군을 제대한 그는 의료기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경험을 쌓기 위해 의료기기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1년 내에 의료기기 사업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자 마음먹고 오너처럼 일했다. 그 결과 영업부터 통관, 수익구조, 마케팅까지 모든 분야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회사에 근무하는 1년 6개월 동안 그 회사의 모든 재고를 팔았다.


    회사를 나와서 본격적인 그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의료기기 오퍼상이었다.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친구 회사에 책상을 하나 빌려 쓰는 것이 사무실의 전부였다.


    "당시 청량리에 위치한 사무실이었는데 친구 사업이 잘 안되다 보니 사실상 주변 친구들이 와서 담배 피우고 장기 두며 쉬는 장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저 역시 책상 하나 빌려 쓰는 입장에서 직접 뭐라고 말하기도 난처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이민을 가게 되면서 자신이 하던 보청기 쪽 사업과 사무실을 제가 인수하게 되었죠. 고민하던 차에 잘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놀러 오던 친구들을 불러서 술 한잔씩 사주며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고 성공할 때까지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지내지 말자며 사무실에 오지 말라고 했죠. 친구들은 모두 저에게 서운해 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의식이 뚜렷했기에 마냥 그렇게 갈 수는 없었습니다."


    기존 백색 전화만 인수하고 사무실은 옥상의 옥탑방으로 옮겼다. 말이 옥탑방이지 물탱크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의자 세 개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직원 한 명이 있었는데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한 사람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모든 사업자금은 대출로 마련했다. 그야말로 라면 한끼 먹으며 일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고객에게는 전문적인 모습과 신뢰를 줘야만 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고객과 상담을 했다.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오전에는 영업 판매를 하고 밤에는 직접 보청기 제조를 하며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출장이라도 있는 날에는 숙박료라도 아끼기 위해서 밤 기차를 타고 자면서 지방에 내려가고 아침에는 목욕탕에 들러 면도를 하고 고객을 만났죠. 그 결과, 사업시작 두 달만에 흑자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대리점을 늘리고 매장이 커지면서 해외 업계에서도 심 대표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당시 지멘스와 스타키의 보청기 대리점을 하던 그에게 스타키로부터 지사장 제의가 온 것이다. 그렇게 스타키코리아의 CEO로서 심 대표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의 취침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선다. 해외 본사와 소통하기 위해서 늘 현지 시간에 맞춰 근무를 했던 버릇이 몸에 배인 것이다.


    스타키코리아에 있으며 필립스의 초소형 보청기 모델의 현지화에 성공한 사례는 여전히 신화처럼 남아 있다. 필립스의 초소형 보청기 모델을 국내에 판매하고 싶었던 심 대표는 현지 시장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이라는 필립스 본사의 거절 의사에 직접 아인트호벤 본사까지 찾아가서 대표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 네덜란드 현지까지 찾아온 CEO의 열정에 감동한 필립스 대표는 그와 친구가 되었다.


    이후 컴팩트하지만 고가에 제작하기 힘들었던 제품의 약점을 기존 제품의 강점과 접목시켜 좀 더 대중적인 제품으로 재탄생하도록 아이디어를 보탰고 이를 스타키에서 도입하며 대히트 상품이 되었다. 스타키가 세계적인 보청기 기업으로 재도약 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사례였다. 현재 심상돈 대표는 스타키의 전 세계 지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CEO이자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CEO이기도 하다.



    감사의 마음, 성공을 부르는 원동력


    살아가며 여러 위기와 기회가 있었지만 심 대표는 그때마다 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처음 사업을 할 때 그는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경험했지만 오히려 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고 책임감을 갖도록 했다. 크나큰 슬픔도 긍정의 자세로 본다면 오히려 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쓴 약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업을 성장시키며 느낀 또 하나 중요한 미덕을 깨달았다. 바로 '겸손'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을 접해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강한 자만이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 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한 단어로 이 모든 것이 귀결됨을 깨달았다. 바로 '감사'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터뷰 할 수 있는 것, 건강한 것, 이 땅에 태어난 것, 정말 감사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감사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감사하면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성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하니 당연히 보답을 해야 합니다. 남을 돕고 위하는 일도 내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감사한 일에 대해 작은 보답을 하는 것일 뿐이죠."


    그는 자신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는 인생의 계기를 맞게 되었고, 군대를 카투사로 가서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고 사업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보청기 사업을 하며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현실을 알게 되고 봉사를 배우게 되었고, 그들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개천용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도 그들이 처한 현실이 힘들고 고됨에 감사하라고 조언한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그것이 경험으로 쌓여 내공이 되고 두려움 없는 도전의 밑천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가능성을 타진하고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에 서 있다면 그 현실에 감사하세요. 영웅들의 이면에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기에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족하면 그 풍족함에서 끝나던지 보통은 그 풍족함조차 지켜내지 못합니다. 남들보다 모자란 현실에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성공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성공의 행운도 따릅니다."


    성공의 행운이 따르는 심상돈 대표의 감사 릴레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