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여사님 덕분에 회사가 성장했습니다"

    입력 : 2015.01.14 18:14 | 수정 : 2015.01.14 18:17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기업 CEO의 명함에는 늘 사장이나 회장, 혹은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적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명함에는 ‘책임대표사원’이라고 적혀 있다. 남들보다 어렵게 시작해 일군 기업이지만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삼구아이앤씨의 성공을 모두 조직원, 특히 현장에서 힘들게 근무하는 현장직원들의 성실함과 노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따뜻한 마음 경영'이 2013년에도 '40% 성장', 2014년 예상 매출 5천억원, 생각지도 못한, 업계 사상 초유의 성과를 달성하게 됐다. 현재 업계에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이러한 성과를 낸 지난 1년을 마음껏 자랑하고 축하 받는 것이 마땅함에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고 언제나 초심을 지킨다. 구자관 책임대표사원과 삼구아이앤씨의 새해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빗자루와 걸레 하나로 시작한 아웃소싱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1968년 청소용품 제조를 시작으로 1976년 설립된 삼구아이앤씨는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아웃소싱분야 한우물만을 개척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특히 2013년은 매출액 3천5백억 원을 올리며 전년대비 40%의 성장을 하면서 업계 사상 초유의 실적을 달성했다. 또한 카타르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해외진출의 첫 단추를 뀄으며, 서비스 품질 개발과 고객가치 창출, 업계 발전을 위해 삼구미래경제연구소도 탄생시켰다. "축하드린다"는 기자의 인사에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업계 기업들 중에는 2013년도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도 많기에 무조건 기뻐만 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지금까지의 다른 기업에서 볼 수 없었던 삼구아이앤씨만의 조직문화와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의 직원과 고객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기반으로 하는 신뢰경영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CEO라는 직함보다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직책을 통해 조직원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자 노력하는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의 리더십은 많은 후배 경영자들에게 적잖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말이 거론된 것은 이미 몇 십 년 전입니다. 처음 이 직함을 사용한 계기는 삼구아이앤씨만의 비즈니스 모델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구아이앤씨는 아웃소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1만5천여 명의 조직원이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근무를 하지만, 실제 현장에는 우리의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업의 자산을 관리하는 특수한 업무라서 이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는 존재하지만 그에 따르는 권리는 없는 거지요. 권리가 없다 보니, 우리 직원이 실수로 고객의 자산을 손상했거나 잘못 관리했을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직원에게 돌아옵니다. 문제는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 분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CEO 입장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임대표사원이란 조직원의 실수에 대해서는 모두 제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청소를 예로 들어봅시다. 아무리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청소하더라도 누군가 종이조각을 떨어뜨렸을 때, 지나가는 기업 고위간부가 이를 지적하면 청소 점수는 0점이 되고 맙니다. 10년 내내 성실히 건물을 관리하더라도 딱 한번 도둑이 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경비근무를 서는 조직원에게 돌아갑니다. 박봉을 받으며 일하는 그분들이, 제가 감히 아줌마가 아닌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삼구아이앤씨가 존재할 수 있고, 제가 이렇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을 보듬고 존경해 드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원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제가 진다는 뜻에서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 '여사님'이라는 호칭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이는 삼구아이앤씨만의 존경과 배려로 가득 찬 조직문화가 회사의 지속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부고객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내부고객입니다. 내부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외부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건물을 청소하는 '여사님'들은 밖에서는 청소부지만 가정에서는 가족을 책임지는 훌륭한 어머니십니다. 밖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가정에서는 자녀의 교육과 가정의 평안을 위해 24시간 힘들게 땀 흘려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 그분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우리 어머니 그리고 여사님을 홀대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왜 사람이 지나가면 머리를 숙이고 피해야 하는지, 소신껏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물 묻은 손을 숨기셔야 하는지, 이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매여 옵니다. 가정에서는 훌륭한 어머니로서, 그리고 밖에서는 누구보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 고생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분으로 모셔야 할 분들입니다."


    현장 직원들 마주치면 90도로 인사하는 책임대표사원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삼구아이앤씨의 1만5천여 명의 조직원이 없다면 구자관이라는 사람의 존재가치도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늘 현장 직원들을 마주칠 때면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를 한다.


    CEO의 리더십과 경영철학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제로 매우 크다. 그래서 CEO가 어떤 리더십으로 구성원들에게 다가가는가에 따라 그 조직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도 있고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조할 수도 있다. 구 책임대표사원은 직원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경영의 최우선 순위로 꼽고 있다.


    "만약 제가 직원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CEO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저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들을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그분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누구보다 잘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시장 환경이 좋지 않아 취직도 못했습니다. 돈도 없었지요. 배우지 못한 저를 쓰려고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해서 시작한 일이 청소업이었고,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오로지 제 분수만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여사님을 비롯해 우리 직원들에게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성실히, 열심히 일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마음, 저를 알아봐주고 찾아주신 그 고마운 마음을 인사로 대신하는 거지요."


    - 직원분들도 당연히 책임대표사원을 믿고 따를 것 같은데요, 서로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원과의 소통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데요. 책임대표사원님만의 커뮤니케이션 노하우가 있는지요?


    -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겠지요.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입니다. 훌륭한 소통의 시작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삼구아이앤씨에서는 고자질하는 직원이 없습니다. 남의 말을 전달하는 것은 감정과 상황을 100% 재현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억양 하나에도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말을 전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입니다. 그래서 경영을 하면서 조직원의 말을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하거나 또 제게 그런 말을 하는 문화는 없앴습니다. 불협화음과 이간질을 낳을 수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저는 조직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가끔 소주도 함께 마십니다. 직장을 떠나 서로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인 만큼 그곳에서는 직책이 존재하질 않습니다. 어떤 기업에서는 CEO에게 술을 한잔 따르고자 하는 직원은 항상 무릎을 꿇고 술을 따릅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술을 한 잔 권하고 싶은 직원이 있다면 자리에서 바로 술 잔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자 사장님 술 한 잔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저한테 술잔을 던지는 거지요. 그럼 제가 술잔을 받고 제 옆에 있는 직원이 저에게 대신 술을 따릅니다. 제가 시원하게 한잔하고 나면 "박 대리 술 잘 마셨습니다. 여기 제 술 잔도 받으세요"라며 저도 술 잔을 던집니다. 때로는 술잔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날라오기도 합니다(웃음). 이처럼 전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서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업,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기업을 꿈꾼다. 삼구아이앤씨도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일에도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발벗고 나선다. 삼구아이앤씨는 소년소녀가장돕기, 교도소 교화운동, 독거노인 돕기, 시각장애인 의안수술지원, 결식아동 돕기 등의 사회봉사활동을 실천한다. 하지만 구 책임대표사원은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한 사회봉사활동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제게 밥 한 그릇이 있는데 이 한 그릇을 다 먹지 않고 반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남는 것을 다른 사람을 줬을 때, 이는 진정한 사회봉사라 보기 어렵습니다. 남는 것을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봉사는 제게 밥 반 그릇이 주어졌을 때, 이걸 내가 다 먹어도 모자라지만 주변의 배고픈 사람을 위해 반을 뚝 떼어 줄 수 있는 행동입니다. 먹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어야 함에도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회봉사입니다."


    이를테면 콩 한쪽을 나눠먹는 식이 아니라 콩 반쪽도 나눠먹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고령화 사회 문제해결에도 앞장 서는 기업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지난 2011년 서강대학교에서 노동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늦은 나이에 노동경제학을 공부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50대 후반대의 직원이 많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 이분들이 정년퇴직을 하게 됩니다. 현재 정년이 57세에서 58세 사이인데, 문제는 이 시기에 일을 그만두게 될 때 발생합니다. 평균수명이 68~70세였던 시절에는 퇴임 후 그 동안 벌어 모아둔 자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세가 넘습니다. 즉 57세까지 일해서 20년간의 노후를 보내야 하는 거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버틸 만 합니다.


    하지만 약 10년 후에는 아마 우리의 평균수령이 10년 이상 늘어날 것입니다. 즉 90세가 넘게 되는데, 30년 이상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데 남성 기준으로 30세에서 37세 사이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 결혼해서 1년 후에 한 명의 아이를 갖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37세에 아이를 낳은 가장이 정년퇴직을 할 시기가 되면 이 아이는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노후를 위해 모아뒀던 노후자금이 자녀의 대학등록금으로 쓰이게 되고 또 이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자금도 지원해 줘야 합니다. 결국 노년을 위해 모아둔 자금이 한 푼도 남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일반 근로자는 결국 독거노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더 나아가 그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양쪽 집안의 부모, 조부모, 자녀를 책임져야 합니다. 즉 혼자 벌어서 혹은 맞벌이를 해서 10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현실이 곧 다가올 수 있습니다."


    -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절실한 것 같은데, 고령화 문제는 삼구아이앤씨의 비즈니스와도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 "네 맞습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 톨게이트 매표원으로 젊은 여성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젊은 여성이 아닌 고령층의 매표원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매표원의 업무는 단순해서 고령층이 수행하기에도 적당한 업무입니다. 일례이지만, 이처럼 서비스 산업에는 노인이 종사할 수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습니다. 레스토랑 서빙 업무도 그 좋은 예가 되겠지요.


    젊은 청년들이 일할 곳은 따로 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젊은 패기와 힘, 열정과 땀이 깃든 곳은 젊은 세대의 몫이겠지요. 고령자의 일자리 창출은 사회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는 결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자녀들 역시 건강한 사회에서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보람 있게 인생을 사는 모습, 그러한 문화를 만드는데 삼구아이앤씨가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구 책임대표사원은 고령층으로 접어들고 있는 직장인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잡 쉐어링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국가정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돈이 넘치는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갓난 아기부터 노년층까지 모두에게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준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자리 없이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노인들,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미래를 위해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기본적인 생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책임대표사원의 어머니 스토리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서재에서 앨범을 하나 꺼내서 누렇게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의 사진, 그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내 어머니”라고 소개했다.


    "어머니의 고된 삶은 모두 제 탓"이라는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가로등도 없어 깜깜한 새벽 4시, 어머니는 한참 잠에 빠져있는 어린 아들을 흔들어 깨운다. 잠자리에 든 지 불과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은 열여섯 살짜리가 깨운다고 벌떡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6시까지 공장에 닿으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어머니는 칭얼대는 아들을 때려서 깨운다. 그렇게 아침밥도 못 먹고 떠밀려 집을 나선 아이는 한 시간 반 동안 산길을 걷는다.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매일 아침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는 어머니를 탓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퇴근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5시에 시작하는 야간 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남들이 8시에 출근하면 저는 6시까지 공장에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학교에서 10시까지 공부하고 나면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없는 살림에 변변치 않은 밥상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면 12시나 돼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겠어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미웠지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고백하시길 '내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았지만 새벽 4시에 너를 깨워 공장에 보내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고된 삶이 모두 제 탓이라며 죄송한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제가 우리 어머니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야간 고등학교는 공부를 못하는 깡패들 아니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어요. 그래서 학교 청소는 모두 힘없는 근로 학생들이 도맡아서 했습니다. 밤 10시에 수업을 마치고 청소를 한 후, 산길을 걸어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됐죠. 그렇게 쉬는 날도 없이 일하는 자식을 안타깝게 여긴 어머니는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수제비가 해물, 야채가 들어간 웰빙 식품이지만 당시엔 건더기라고는 거의 없는 멀건 국물이 다였어요. 그런데 제가 국물을 싫어했거든요. 국물을 조금 마시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어머니께서 걱정을 더셨을 텐데, 어머니는 당신의 몇 점 없는 수제비를 제게 다 건져주고는 제가 남긴 소금 국물까지 들이켜 배를 채우셨습니다."


    껍질도 아까워서 통째로 빻은 밀이었기에 건더기를 입안에 넣으면 혀가 깔깔했다. 열 식구가 먹는 수제비에 멸치 한 두 점을 넣고 끓인 국물은 비린 맛은커녕 짠맛만 났다. 그 소금이 혈압에 얼마나 안 좋은지를 생각하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 건강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하고 나서였다.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어머니가 혈압 때문에 쓰러져서 일찍 돌아가신 것이 꼭 제 잘못만 같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반신불수가 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온 정성을 다해 간호하신 덕분에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지만, 여전히 몸이 불편하셨죠. 그러던 어느 겨울날,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신 어머니는 설상가상으로 대퇴부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으로 뼈가 약해지잖아요.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계셔서 그런지 나중에 깁스를 풀어도 다리를 굽히지 못하셨습니다. 그런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용변을 보셨을지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좌변기도 없던 시절에 멀쩡한 사람도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시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자식이 되어서 어떻게 단 한번도 어머니의 불편함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는지……. 그렇게 고통스러우셨을 어머니는 결국엔 일하는 사람을 시켜 다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나무 용변기를 짜왔습니다. 저희 남매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힘들다는 내색 한번 보이지 않으셨으니까요."


    어머니의 고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그는 아직도 어머니께 용서를 구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왜 지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지,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마음에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은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얘기를 꺼낸다. 그리움에 사무쳐서다.


    "입이 무거운 사람에게 우리는 그 사람의 입이 천근 같다는 표현을 쓰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그런 분이셨습니다. 과묵하시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아침마다 잠을 못 깨서 어머니를 애먹였는데도 어머니는 제게 잔소리를 한 적이 한번도 없으셨어요."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의 어머니가 얼마나 말을 아끼는 분이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노름에 빠져서 매일 밤을 바깥에서 노름으로 지새우다가 아침에 귀가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여자는 남자가 무슨 짓을 해도 밥상을 차려주는 시대였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잘한 것도 없으면서 아침마다 당당히 집에 들어와 밥상을 기다렸다. 또 그런 남편일지라도 어머니는 삼시 새끼 아버지의 진지상을 차려 올렸다.


    "그 날도 아버지는 밤새 노름을 하고 아침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밥상을 차려오라고 시켰습니다. 어머니는 군소리 없이 밥을 지었죠. 그리고 속이 뒤틀리는데도 진지상을 차려서 아버지 앞에 조용히 내려놓고 방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아버지가 크게 노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밥그릇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밥이 아닌 화투 장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집안의 가장인데, 자존심이 크게 상한 아버지는 순간 화가 난 것이었겠죠. 부끄러운 마음도 있으셨을 테고요. 결과적으로 그 사건 이후, 아버지는 노름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어머니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도 아버지의 노름버릇을 고쳤습니다. 말싸움 한번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뛰어난 분이었다. 어머니는 남자 형제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지만, 그들의 책과 글씨를 어깨너머로 보고 독학할 정도로 명석했다. 아궁이를 땔 때 쓰던 부지깽이로 부엌의 진흙바닥에 글자를 써가며 연습해서, 한자투성이였던 옛날 신문을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는 손수 편지를 써 보낼 정도였다. 어머니의 남자 형제이자 구 책임대표사원의 외삼촌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최초의 택시회사 '경성택시'를 세울 만큼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그가 기억하는 외가식구들은 타고난 재주도 많거니와 어머니는 지혜로움까지 겸비한 여성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속마음을 모를 만큼 어머니는 표현을 아꼈다.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던 시절, 그런 시대적 차이를 감안하고도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이 들려주는 어머니 일화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웠다.


    "어머니는 자식 셋을 일찍 보냈습니다. 첫째, 둘째 아들을 잃고, 딸 하나를 더 가슴에 묻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단명(短命)이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산모가 성치 않으니까요. 여자들이 만삭의 몸으로 연중 가장 힘들다는 춘곤기에 보리를 찧습니다. 그렇게 마당에서 힘을 써가며 절구질을 하는데 당연히 산통이 시작되지요. 그러면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낳고, 직접 탯줄을 자르고, 뜨거운 물을 끓여서 아이를 닦아 눕혀놓으면 몸조리할 틈도 없이 다시 마당에 나와서 빻은 곡식으로 밥을 지어 가족을 먹입니다."


    삼구 가족들이 배고파지는 것 용납할 수 없어


    그런 어머니가 누구보다 안타깝고 보고 싶지만 그는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70대 재벌 총수들이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그 '젊음'이 그에게는 전혀 부럽지 않다. 그러나 그토록 잔인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는 것을 안다. 고기 맛이 나는 라면 국물은 행여라도 좋아할까 싶어 자꾸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말씀하신 어머니, 기와가 다 깨져서 그릇이란 그릇은 다 꺼내 빗물을 받아가며 텅 빈 집을 지켰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는 숱한 위기의 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을 딛고 일어나 설립한 삼구아이앤씨는 2013년 40%라는 경이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2014년에는 매출 5천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1조 회사 달성…어느 어머니가 이토록 훌륭하고 자랑스럽게 성장한 아들을 두고도 행복하지 아니할까? 여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아들의 마음이 있다. 지난 세월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 해도 어머니의 상처는 이미 티끌 하나 없이 아물었으리라.


    마지막으로 구자관 책임대표사원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소박했다.


    "삼구 가족들이 배고파지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회사가 더욱 성장해 직원들이 월급도 더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 회사가 단순히 청소하는 회사, 경비하는 회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물론 아웃소싱산업도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업계를 그릇으로 표현한다면, 깨끗이 닦고 닦아 빛이 나도록 해서 업계 구성원들이 다 함께 잘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하는 소명의식도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