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14 - 나쁜 음식은 없다

  • 정유미 칼럼리스트

    입력 : 2015.01.07 13:46 | 수정 : 2015.01.12 18:30

    아버지는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취향을 가진 분이다. 모든 종류의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냉동한 생선은 싫어하고, 과일은 좋아하지만 껍질을 벗겨 냉장고에 보관한 것은 아무리 잘 밀봉해도 다시 찾지 않는다. 지금은 떨어져 산지 오래되어 함께 식사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아직까지 아버지의 음식 기호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래서 인지 아버지와는 유독 음식과 관련한 추억이 많다. 그런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짜장면이다. 방금 마친 식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면 종종 2차(?)로 짜장면을 찾을 만큼 그것을 좋아하셨다. 그렇다고 아무 짜장면이나 드셨던 건 아니다. 두세 군데의 단골집이 있었고, 거기서만 드셨다. 가끔은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했지만 그런 수고도 기꺼이 감수하셨다. 아버지에게 짜장면은 쉽게 전화 걸어 배달시켜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아버지의 짜장면과 비슷한 느낌의 짜장면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것을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고, 함께 중국집으로 향하던 길 위의 풍경이 떠오르고, 그 때 아버지와 함께 나눈 대화들이 떠오르고, 어린 나를 바라보시던 따뜻한 눈빛이 떠오른다. 짜장면 한 그릇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과 공간이 담겨있다. 많은 한국인이 짜장면과 관련한 개인적 일화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루에 한국인 여덟 명중 한 명은 짜장면을 먹는다는 통계가 있다고 하니 이 음식에 대한 우리의 각별한 애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짜장면도 가끔은 질책의 대상이 된다. 영양적으로 봤을 때, 열량이 높고, 나트륨 함량도 높으며, 돼지기름을 사용해 포화지방도 높다는 이유이다. 게다가 조미료를 많이 사용한다고도 하고, 잘 불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위해 면을 만들 때 화학 첨가제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음식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뭐니 뭐니 해도 생리적인 면일 것이다. 신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음식을 통한 영양공급이 필수적이다. 음식이 주는 영양은 각종 세포와 조직을 구성하고, 신체가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며, 체내의 다양한 대사과정들을 조절한다. 이런 면에서 영양적으로 좋은 음식은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음식은 때론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생리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음식을 선택하고 섭취하지는 않는다. 음식이 가지는 심리적인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음식을 소비할 때는 개인이 부여한 또는, 그를 둘러싼 문화가 부여한 음식 안의 관념(생각)도 소비한다. 음식은 때로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 주거나 사교도구로서의 역할 등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기에 좋은 것은 먹기에도 좋다.”라고 말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명언이 이해된다.


    어떤 음식이든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몸에 안 좋은 음식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도 기아에 허덕이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짜장면은 영양적으로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추억과 위안을 제공하는 음식이다. 그것을 영양적 기준으로만 따져 ‘나쁜 음식’이다 말하기는 싫다. 그러기엔 음식에게 미안하다. 영양적으로 따질 수 없는 심리적 유익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짜장면이 나쁜 것이 아니다. 나의 탐욕이 나쁜 것이다. 어쩌다 먹은 짜장면 한 그릇이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맛있고 좋다며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무절제함 즉, 나의 탐욕이 몸을 망치는 것이다. 누군가 ‘나쁜 식단은 있어도 나쁜 음식은 없다’고 말했다. 음식 하나가 몸에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는 음식의 전체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얼마나 먹느냐의 문제가 핵심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