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13 - 결국 입맛을 바꿔야 하는 이유

      입력 : 2015.01.07 13:45 | 수정 : 2015.01.12 14:06

      "열량이 너무 과한 거 아냐?", "나트륨 함량이 그렇게 높았어?", "저렇게 달게 만들면 애들한테 안 좋잖아!", "몸에 나쁜 화학 첨가물이 정말 많이 들었네.", "그런 저질 재료를 사용하다니...", "이런! 국내산이 아니라는군." 산업적 식품에 대한 불만이 많다. 능동적 자성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되는 누군가의 지적에 대한 피동적 반응이 대부분이다. 뉴스 등을 통해 식품의 부정적인 면이 알려지면 소비자에게는 무엇 하나 맘 놓고 먹을 게 없다는 불안이 생긴다. 이런 불안은 배신감이고 때로는 공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불안이 잦아들면 "그렇게 떠들었는데 개선됐겠지" 생각하고 다시 그 식품을 찾는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드라마'와 같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식사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가정 안에서-적어도 공동체 안에서- 자급자족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시대가 산업화를 겪으면서 식사도 점차 산업화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식사는 산업적 도움 없이는 한 끼도 해결하기 힘들어졌다. 외식 메뉴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고 해도 그것에 들어가는 재료의 상당수가 식품기업의 가공을 거친 것이다. 재료의 구입처도 산업적 유통 채널을 통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오늘날 먹을 것의 대부분은 산업적 식품들이니, 결국 나의 생존을 위한 대부분은 산업적 식품에 달려있다 말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산업적 식품의 문제점이 부각될 때 소비자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다국적 기업의 식품에서부터 동네 분식집에 이르기까지 산업적 식품이라 불리는 것들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산업적 식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가질 때 소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다. 모든 식품기업(구멍가게 사장님도 포함해서)은 하나같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에 불과하다. 식품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이 나빠지기를 원해서 그들의 식품을 일부러 몸에 안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더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제품을 선택하기를 원하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의도가 전부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이다.


      안타까운 것은 값싼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건강과 공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식품은 '착한' 가격에 지방, 소금, 설탕,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맛있는' 것들이다. 소비자들이 이 같은 덜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한, 이윤을 바라는 기업들은 언제까지고 그런 제품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산업적 식품들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기업들이 먼저 변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순진한 의존' 행위이다. 기업은 언제까지고 '순수'하게 소비자가 더 좋아할 만한(더 많이 선택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낼 뿐이다. 시장경제 하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이 그렇고 식품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결국 소비자 스스로의 입맛이 바뀌지 않으면 기업은 바뀌지 않는다.


      기업이 소비자의 입을 강제로 벌려 그들의 식품을 먹도록 억지를 쓰는 건 아니다. 냉정히 보면, 산업적 식품을 먹는 것은 외부적 강요가 아닌 소비자 스스로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선택한 '자발적 행위'이다. 그런데도 살면서 신경 쓸 것이 많으니 먹는 것만큼은 신경 덜 쓰고 싶다는 안이함으로 문제가 생길 때는 무책임하게 기업에만 화살을 돌린다. 자신은 변하지 않고 상대가 해결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소비자 입맛이 건강과 멀어진 선택을 하는 이상 산업적 식품도 건강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에 안 좋다는 판단을 하면 해당 식품을 구매하지 않아야 함에도 소비자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기업은 그저 소비자의 입맛을 따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원망할 대상은 산업적 식품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입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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