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의 영양이야기12 - 자극적인 음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②

      입력 : 2015.01.07 13:40 | 수정 : 2015.01.12 14:06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강남의 한 퓨전 한식당. 식당 안에 들어서자 고급스럽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메뉴판을 펼쳤다. 한식을 기본으로 한 음식들이 깔끔하고 건강한 인상-비싼 음식가격도 그런 인상을 주는데 한 몫을 하였다-을 주었다. 각종 채소에 상큼 고소한 들깨소스를 얹었다는 불고기 샐러드를 주문했다. 맞춤 제작하였을 도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은 은은한 조명과 함께 근사해 보였다. 한껏 기대하고 한 입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실망감이 몰려왔다.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기 위해 넣었을, 심지어 설명에도 없었던, 고추냉이 맛이 너무 강했다. 식감이 아니라면 씹고 있는 것이 배인지, 더덕인지, 밤인지를 구분하기 힘들었을 만큼 온통 '와사비 맛'뿐인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은 제대로 요리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요리에 사용된 각종 재료가 신선하고 좋다는 사실을 '혀의 감각'이 아닌 '메뉴판의 문장'이 대신 설명하기 때문이다. 최연소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천재 셰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셰프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랭 뒤카스는 한 인터뷰에서 "요리는 재료와 순간의 미학"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순간'이란 재료가 가진 결정적인 맛을 끌어내는 찰나이다. 그는 '요리의 핵심은 뛰어난 재료'라고도 말한다. 그에게 요리는 훌륭한 재료(이는 당연히 비싼 재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가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대가의 요리철학이 보여주듯, 제대로 된 요리는 먹는 사람이 자극적인 양념 맛이 아닌 재료의 맛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


      양념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진 음식은 식재료의 질을 가린다. 좋은 식재료의 질을 가리는 것은 위와 같이 요리사의 요리철학(개성이라는 관점의 좁은 의미)과 관련한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식재료의 질을 가린다면 그것은 먹는 사람의 건강과 관련되기에, 요리하는 사람 양심의 문제이다. 양념은 때로는 질 나쁜 식재료를 '맛있는' 음식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특히 동물성 식품의 경우 재료 자체의 질이 떨어질 때 강한 양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재료의 질을 보완해 상품 가치를 약간 올리는 수준을 넘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을 것으로 둔갑시키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위생처리하지 않은 돼지의 내장을 별미식품으로 가공 판매한 사례를 고발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원상태로는 먹을 수 없는 그것이 자극적인 양념으로 '범벅'되어, 재료의 질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미각을 속일 수는 있지만 위를 속일 수는 없다." 갖은 양념으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음식이 미치는 영향은 우리 몸에 그대로 남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한 양념이 필요한 식문화도 존재한다. 인도와 같이 더운 나라에서는 비교적 양념을 강하게 사용한다. 적도 부근의 날씨는 세균에 의해 식재료가 변질되기 쉽다. 그래서 식재료의 변질로 인한 위해를 줄이고자 예부터 항균작용이 있는 마늘, 양파, 강황 등의 양념들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지역에서도 재료의 맛과 특성에 따라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양념을 사용한다. 무조건 강한 양념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그의 최근작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노스캐롤라이나의 바비큐 장인들을 만난 일화를 소개한다. 그 중 한 장인은 "고기의 풍미나 품질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절대 소스(양념)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모든 요리에 적용할 만한 훌륭한 조언이다. 좋은 재료라면 강한 양념이 필요 없고, 굳이 음식에 강한 양념을 사용했다면 나쁜 재료의 질을 숨기기 위한 의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한 양념을 사용한 음식을 만났을 때는 조리 전 재료의 질이 어땠을지 먼저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것이 요리사의 요리철학이나 식문화와 관련된 것인지, 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숨기기 위한 비양심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력이 없다면 자극적으로 양념이 강한 음식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겠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