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通3사, 보조금 과열 경쟁 또 시작… 판매점에 인센티브 최대 70만원 줘
단통법 믿고 먼저 산 고객만 호구로

지난 2일 새벽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 인근의 한 휴대폰 판매점. 출입구 바깥으로 수십여명이 긴 줄을 늘어섰다. 전날 일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이폰6 번호이동(통신사 변경) 고객은 10만원대에 개통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이곳뿐 아니라 1일 밤과 2일 새벽 사이 서울 사당동, 잠실역, 경기도 고양시 일부 휴대폰 판매점에서 이런 장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스마트폰으로 판매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지방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달 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동통신회사들의 '불법 보조금 경쟁'이 애플의 '아이폰6' 출시에 맞춰 다시 등장했다. 단통법 시행 한 달 만에 최신 스마트폰 가격이 사실상 10만원 이하까지 떨어지면서 법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이 정한 보조금을 받으며 휴대폰을 구입한 사람들만 바보가 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 스마트폰 기기변경을 했던 한 가입자는 "지난달에 제값 다 치르고 스마트폰을 구입했는데 결국 '호갱'(호구+고객)이 되어 버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말 밤의 보조금 대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社)는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법정 지원금(보조금) 상한선인 30만원 이상의 보조금이 지급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공짜폰으로 가장 많이 풀린 제품은 아이폰6 16GB(기가바이트)였다. 이 제품은 출고가 78만9800원에 17만~19만원의 지원금이 책정됐고, 중고폰 선(先)보상금 34만원까지 받으면 27만9800원~25만98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사이 여기에 불법 지원금이 10만~20만원씩 얹히면서 단돈 몇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휴대폰 판매점들이 아이폰6를 판매할 때마다 이통사로부터 받는 인센티브가 과도하게 책정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날 이통사들은 아이폰6에 최고 70만원의 인센티브를 책정하며 판매점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 수준을 넘어서는 고액의 인센티브를 책정하면 판매점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인센티브 일부를 고객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예컨대 70만원 인센티브 중 40만원을 고객에게 주더라도 30만원은 자기가 챙길 수 있는 것이다. 한 대라도 팔지 못하면 아예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으니, 고객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 더 이익이다.

단통법 시행 1개월 만에 '불법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이 무너지면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4 등 지난달에 출시된 최신 스마트폰을 제값 다 주고 가입한 사람들만 손해를 봤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통사들,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 아니다"

이통 3사는 상대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영업 조직들이 소위 '리베이트'로 통하는 인센티브를 경쟁적으로 올리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경쟁사가 게릴라식으로 특정 지역, 특정 시간대에 공식 지원금과 별도의 추가 보조금을 먼저 지급했다"며 "유독 한 통신사만 '가입자 순증'을 보인 것이 증거"라고 주장했다. LG유플러스 측은 "아이폰6 판매 첫날 부진한 실적을 보인 경쟁사들이 주말을 이용해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시행해 이탈된 가입자를 만회하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과다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면서 일선에서 대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판매 실적이 좋지 않은 아이폰6 16GB 모델 '밀어내기'라는 주장도 나왔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이폰6는 64GB와 128GB 모델만 집중적으로 팔리다 보니, 비(非)인기 제품이 재고로 남을 것을 우려해 게릴라식 판촉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방통위, 移通 3사에 경고]

'단통법 무용론'까지 제기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2일 오후 이통 3사 관계자들을 불러 엄중 경고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처음 발생한 이번 불법 보조금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현장조사를 거쳐 과태료 또는 과징금 부과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단통법에 따라 정부는 이통사에 대해 매출액 3%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대리점·판매점에도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및 이통사 임원에 대한 형사 고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