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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재미만 놔두고 다 바꿨다 '진화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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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6.20 03:07

레고 CEO 조르겐 빅 크누드스톱. /이성훈 기자 ·그래픽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불황 때 더 잘 나가요 '블록쌓기 왕국' 레고
블록쌓기 재료의 진화
더 놀기 좋게, 더 튼튼하게나무→플라스틱→凹凸…남이 베낄 만하면 또 바꿔
인터넷 시대 맞춘 진화
"인터넷선 모두가 레고 디자이너"어른까지 마니아로 만들어…무보수 자발적 참여자만 12만명
소비자와 함께 제품 개발‥ 레고의 신화는 계속된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레고(Lego)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 혼내거나, 레고 블록 어질러 놓은 아이들에게 정리하라고 잔소리했던 일 말이다. 레고 블록은 1949년 처음 발매됐지만, 레고로 만든 성(城)이며 해적선, 로봇들은 여전히 전세계 어린이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몇 달 전 외국 잡지를 뒤적이다 'Lego'라는 단어에 눈이 멈췄다. 몇 해 전만 해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부활에 성공했다는 기사였다.

이상하다. 기자의 네 살배기 딸도 레고를 세 세트나 가지고 있고, 중학생 조카 집에도 레고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균 62개씩의 레고 블록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레고가 왜 어려움을 겪게 됐고, 또 어떻게 부활에 성공했을까?

기자는 이 궁금증을 풀 기회를 얻었다. 지난 10일 덴마크의 소도시 빌룬트(Billund)에 있는 레고 본사를 찾게 된 것.

빌룬트는 레고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룬트 공항만 해도 레고가 1964년 자신의 땅에 자신의 돈을 들여 지어 빌룬트시에 기부한 것이다. 약 6000명의 인구 중 2000명 정도가 레고에서 일한다. 레고 인형이 도로 표지판을 들고 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레스토랑에도, 호텔 로비에도 레고 블록이 쌓여 있었다. 레고의 본사 빌딩들은 빌룬트 여기저기에 블록처럼 흩어져 있다. 대개 1~2층 정도로 낮고, 건물 창문에는 레고 특유의 빨강, 노랑, 파란색들이 칠해져 있다.

레고를 부활시킨 주인공으로 일컬어지는 조르겐 빅 크누드스톱(Knudstorp) 사장은 불과 41세. 게다가 동안(童顔)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대로변의 아담한 단층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든 길을 가다 고개만 돌리면 유리창을 통해 그가 무얼 하는지 훤히 볼 수 있다.

빨간 레고 블록을 왼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레고 블록으로 무얼 해도, 그것이 노는 건지 일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으니 괜찮다"고 조크로 답했다. 그의 사무실엔 물개와 비행기 등 수십 종류의 형체들이 레고로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2004년 말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 레고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레고는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비디오 게임기에 어린 고객들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대응책으로 레고는 스스로 비디오 게임 시장에 뛰어드는 한편, 테마파크(레고랜드)와 의류, 영화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와 '해리포터 시리즈' 등 영화를 소재로 한 제품을 출시하며 상품 구성을 어린이 중심에서 성인 고객층으로 확대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오히려 기존의 어린이 고객이 떨어져 나갔고, 무리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쌓인 빚으로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다. 1998년에는 창립(1932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고, 2004년에는 18억 덴마크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4300억원)에 이르는 큰 적자를 기록했다.

"의욕이 앞서 너무 무리하게 확장을 했던 것이 문제였어요.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말이죠." 크누드스톱 사장은 당시의 패인(敗因)을 설명하며 앞에 있던 레고 블록을 지그재그로 아무렇게나 겹쳐 쌓아 올렸다.

"저는 CEO가 된 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류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잘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 거죠." 그는 자신이 쌓았던 블록을 뜯어낸 후 이번에는 하나씩 위로 똑바로 쌓아 올리며 말했다.

크누드스톱 사장은 취임 후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빌룬트와 미국, 영국, 독일에 있는 레고랜드 4곳의 지분 70%를 사모펀드에 팔았다. (나머지 30%는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의류와 영화 등의 사업도 매각한 후, 브랜드 이름만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라이선스로 전환했다. 대신 주력인 장난감(레고 블록) 사업에 집중했다. 성인 고객을 겨냥한 모델을 꾸준히 내놓는 한편, 기존 어린이용 모델인 '듀플로(Duplo) 시리즈'를 보완해 나갔다. 레고는 2005년 흑자로 전환했으며,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매출이 18.7%, 순이익이 32 % 급증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제가 어려울 땐 부모들이 장난감 하나도 유명하고, 안전하고, 튼튼한 것을 고르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경제위기에 앞서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했던 것이 보약이 됐다는 분석이 함께 나왔다.

―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요? 결과가 좋았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나요? (웃음) 하지만 못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잖아요."

―잘하는 것만 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심한 상황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나요?

"도전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서두르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거지요. 기업은 5년에 한번 정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1년에 5번씩 도전하는 건 욕심입니다. 그렇게 해야 변화에 올바르게 적응할 수 있어요."

―상황에 맞춰 진화(evolution)하라는 건가요?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그렇습니다. 기업도 생물의 진화처럼 자연스럽게 변해야 오래 살아 남는 법입니다."

찰스 다윈이 이런 말을 했다. "끝까지 생존하는 것은 강한 종(種)도 아니고, 지적인 종도 아니며, 변화에 가장 적응을 잘하는 종이다." 다윈의 이 말을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잘 구현하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레고(Lego)일 것이다.

레고는 창립 후 오랜 세월 장난감, 특히 블록 분야에서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레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천적(天敵)을 만나게 된다. 기존 장난감과는 차원이 다른 비디오·컴퓨터 게임이라는 외래종이 어린 고객들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레고의 활동 영역도 점차 줄어들었다. 트렌드를 선도하던 레고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레고 역사상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 시기에 찾아왔다. 레고는 두 가지 생각의 굴레를 깨뜨렸다. '레고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레고의 고객은 어린이'라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레고는 1998년 MIT대와 손잡고 움직이는 레고 로봇인 '마인드스톰'을 출시했고, 1999년에는 어른과 마니아 고객층을 겨냥한 '스타워즈' 시리즈를 내놓았다.

조르겐 빅 크누드스톱(Knudstorp) 사장은 "당시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는 회사에 큰 짐으로 남았지만, 성인 고객층을 공략했던 건 뒤에 회사의 큰 자산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레고엔 'Afols(Adult Fans of Lego)'라는 성인 동호회 모임이 있는데 전 세계에 회원이 25만명에 이른다. "성인 고객들은 아주 열성적인 마니아 그룹이 됐어요. 제품의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내고, 또 신제품 아이디어도 제시합니다. 어린이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른이 고객이 됨으로써 제품의 가격대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다.

■ '개방과 공유'의 물결에 올라타다

레고는 '개방과 공유'라는 디지털 비즈니스 환경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기업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 회사는 2003년 고객 스스로 온라인에서 레고 모델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인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를 공개했다.

현재 레고에 고용된 제품 디자이너는 고작 120명 정도인 데 반해 온라인에서 이 프로그램을 써서 활동하는 자발적인 디자이너가 12만명이나 된다. 물론 이들은 돈 한 푼 받지 않는다. 레고는 이들 자발적인 디자이너 가운데 활동이 활발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을 가려 '레고 대사(deputy)'로 임명한다. 레고는 이들을 본사로 초청해 디자이너와 직접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객의 좋은 아이디어는 실제 상품으로도 만든다.

크누드스톱 사장은 "다른 기업들은 비고객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만, 우리는 반대"라고 말했다. "우리는 기존 고객들이 레고를 더 잘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레고 경진대회를 열고, 동호회 활동을 지원합니다. 자연히 기존 소비자들이 레고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회사는 고객에게 '우리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줘야 합니다. 고객이 올린 글에 댓글을 달고, 우수한 활동자를 뽑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소비자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보상은 없어요." '광(狂)팬'들을 주된 성장 동력으로 삼는 할리 데이비슨을 연상하게 하는 경영 방침이다.

레고는 인터넷 해커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일화로도 유명하다. 1998년 움직이는 레고 로봇 '마인드 스톰'을 개발했을 때다. 소비자들이 제어장치 프로그램을 해킹해 마음대로 바꾸어 인터넷에 올렸다. 레고의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한 셈이지만, 레고 경영진은 숙고 끝에 오히려 소비자들이 이를 마음껏 활용하도록 오히려 프로그램 원본을 공개해 버렸다. 그런데 그 뒤 소비자들이 경쟁적으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과정에서 성능에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단순 동작만 가능했는데, 이후에는 계단 오르기 등 복잡한 동작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만약 다른 경쟁사가 프로그램을 베끼면 큰일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해 크누드스톱 사장은 "경쟁사가 베끼는 사이에 소비자들이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요즘처럼 정보가 널린 세상에는 비밀이라는 게 없다고 봐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개방하고 공유하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겁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최근 방한한 세계적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Kotler) 교수로 하여금 레고를 소비자 참여 마케팅의 모범이라고 지목하게 만들었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 레고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

돌이켜 보면 레고는 탄생부터 도전에 대한 응전(應戰)의 결과물이었다. 이를 빌룬트의 '레고 박물관'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1932년 창업 당시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Christiansen) 창업자가 손수 만들었던 나무로 된 오리 장난감부터 최근에 나오는 스타워즈 시리즈까지 시기별 대표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 어린이가 레고 블록으로 만든 사자의 입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레고는 어린이만의 상품이 아니다. / 블룸버그
손재주가 좋았던 가난한 목수 크리스티안센은 평소 조카들에게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주곤 했다. 대공황이 위세를 떨치던 1932년, 일감이 줄어들자 크리스티안센은 궁여지책으로 나무 장난감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장난감이 의외로 인기를 끌자, 크리스티안센은 2년 후 회사 이름을 '레고'로 짓고 장난감 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레고(Lego)는 덴마크어 'leg'와 'godt'의 합성어로 '잘 논다(play well)'는 뜻이다.

레고의 첫 번째 진화는 재료에서 일어났다. 나무 장난감은 무겁고 잘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다. 1940년대 초 레고 공장에 큰불이 나 나무 재료들이 모두 불탄 일도 있었다.

큰 손해를 본 크리스티안센은 새로운 장난감 재료 개발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내구성이 뛰어난 플라스틱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1947년에 덴마크에서는 처음으로 플라스틱을 이용해 장난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이비 붐이 불기 시작했다. 장난감 회사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크리스티안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변덕 심한 아이들이 몇 번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금방 싫증을 내는 것에 주목했다. '여러 모양으로 바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이 바로 블록 장난감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나무로 된 블록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표면이 평평해 높이 쌓으면 금방 허물어졌다. 크리스티안센은 1949년 블록 윗부분에 요철(凹凸) 모양을 만들고, 아랫부분을 텅 비워 서로 결합할 수 있는 형태의 새로운 블록을 만들었다. 바로 오늘날의 레고 블록의 효시다.

레고의 진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58년 창업자가 작고한 뒤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 고프레드는 새로운 블록을 선보였다. 레고 블록의 아래쪽에 동그란 형태의 튜브를 만들어 넣어 다른 레고 블록의 요철 부위와 더욱 튼튼하게 결합될 수 있게 했다. 레고 블록을 모방한 제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가운데 결정적인 우위를 다질 수 있는 기술이었다.

레고는 1960년대 말 4세 이하 유아들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블록의 크기를 키운 '듀플로(Duplo)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아이들의 창의성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1970~80년대 레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크누드스톱 사장은 "레고는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창의적 제품을 꾸준히 내놓았지만, 모두 어린이용 장난감이라는 핵심 사업(core business)에 바탕을 둔 진화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레고 진화의 원동력을 '품질(quality)'와 '독창성(uniqueness)'에서 찾았다.

"레고 제품의 허용 오차는 0.0002㎜입니다. 플라스틱 주형 기술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지요. 유사한 제품은 많지만, 레고처럼 늘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 모델을 내놓는 곳은 없어요. 이런 저력 때문에 장난감이라는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 가상공간에서 계속되는 레고의 진화

레고의 진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크누드스톱 사장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도에 출시 예정인 '레고 유니버스(Lego Universe)'라는 온라인 게임이 그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레고로 된 캐릭터들이 등장해 레고 세상을 탐험하는 내용이다. 그는 "레고 유니버스 개발 과정에도 열혈 팬들이 참여하고 있어 저도 최종 상품이 정확히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레고는 1990년대에도 유사한 게임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성공할까? "그때는 우리가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했지만, 이번엔 좋은 파트너를 구하고 있어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못하는 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겁니다. 이것도 개방과 공유의 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 레고(Lego)

1932년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직원 10명을 데리고 덴마크의 소도시 빌룬트에서 창업했다. 크리스티안센 가문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비상장 회사다. 최대 주주이자 창업주 올레의 손자인 크엘드 키르크 크리스티안센(62)의 재산은 21억달러로 올해 포천(Fortune) 선정 갑부 리스트 318위에 올랐다. 레고는 현재 130여개 국가에 진출해 있으며, 전체 직원수는 약 540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