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거리' 아닌 ‘유흥의 거리' 전락

상권,라페스타에서 웨스턴돔으로 이동

2003년 개장 이후 일산 상권을 이끌어온 ‘라페스타’ 쇼핑몰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연면적 2만 여평에 이르는 거리형 쇼핑몰로 각종 패션아울렛,식당가,멀티플렉스 시네마 등 총 300여개 매장이 자리잡고 있는 라페스타.하지만 최근 들어 일산의 명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주차장 부족,좁은 진입로 등 문제
우선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진입도로와 주차시설 부족 등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게다가 근처에 호수공원과 대형 백화점이 밀집돼 있어 평일 오후나 주말이면 심각한 교통정체가 빚어진다.주차공간 부족으로 운전자들이 불법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아 쇼핑객들의 보행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

라페스타를 종종 찾는다는 직장인 신미희씨(32)는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주차공간이 있어도 찾기 불편하다”며 “아예 차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상가 주차장 직원 김모씨도 “저녁 시간만 되면 불법주차를 하는 차량들이 즐비하다”며 “특히 인근 L백화점 세일 기간 동안에는 교통정체가 유독 심하다”고 말했다.

이에 고양시와 일산동구청은 단속을 위한CCTV를 추가 설치하고 불법주차 차량에 대해선 견인 조치를 취하는 등 나름대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하지만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수박 겉핥기식으로 단속에만 매달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박준환 고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근본적으로 주차공간을 확보를 해야 한다 ”며” 최소한 주말이라도 라페스타를 차가 안 다니는 도시로 만들어서 보행객들이나 쇼핑객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용카드결제 불편,안내판 부족
카드결제가 불편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신용카드가 필수 결제수단이 된 지 오래지만 라페스타에선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간이 매장 형태로 먹거리나 악세서리를 파는 소규모 매장들은 아예 신용카드 가맹점에 가입해 있지 않거나 가입이 돼 있더라도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택시를 타도 카드결제가 가능한 시대에 조금은 뒤떨어진 모습이다.

매장정보나 안내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안내판이 있긴 하지만 건물 측면 등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있고 또 현재 위치도 표시돼 있지 않아 쇼핑객들이 길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또 케이블 음악방송 KMTV의 본사가 라페스타 내에 위치해 있어 주말에는 라페스타 광장이 각종 쇼프로그램의 녹화 장소로 쓰이는데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차분히 쇼핑을 즐기려는 쇼핑객들과 장사를 하는 업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문화의 거리’ 아닌 ‘유흥의 거리’
근본적인 문제가 또 있다.말로는 ‘문화의 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흥의 거리’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속칭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유흥주점이나 안마시술소 등이 눈에 쉽게 띈다.초저녁만 되면 각종 성인업소 광고물이 길거리에 어지럽게 널리고 호객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청소년들이 지나다니는 앞에서 버젓이 손님들을 잡아끈다.

친구와 쇼핑을 나왔다는 학생 장은지씨(24)는 “식사나 쇼핑을 할 때 호객꾼들이 들어와서 명함을 주면서 말을 걸어와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준환 고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상가 입정 초기부터 이익이 나는 업종 위주로만 입정을 시키다 보니까 주로 술집,음식점,퇴폐업소들이 많이 생겨났다”며 “지자체가 라페스타를 ‘문화의 도시’로 가꾸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양시청과 경찰서에도 이 같은 호객행위나 불법광고를 단속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하지만 단속 의지는커녕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호객행위에 대한 단속은 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양시청 청소년계 한 관계자는 “호객행위에 대해선 청소년보호법과 관련해 별도록 규정된 바가 없어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또 일산경찰서 주엽지구대 관계자도 “경찰 인력이 한정은 돼 있고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단속업무에 초점을 둘 수 없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나가다든지,순찰을 돌 때 보이면 처리를 하고 있다”며 사실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저녁시간엔 보행로 한편으로 주점에서 내놓은 테이블과 취사도구가 가득 들어선다.업주가 공유면적인 인도를 무단으로 점거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단속기관은 뒷짐만 지고 있다.

◆구매력 높은 중장년층,라페스타 ‘외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쇼핑객들이나 구매력이 높은 30~40대 들은 점차 라페스타를 외면하는 분위기다.기존에 이곳을 이용하던 중장년층 고객들은 라페스타보단 인근의 웨스턴돔을 더 찾는 추세다.한마디로 일산 상권의 중심축이 라페스타권에서 웨스턴돔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라페스타 2층 곳곳엔 빈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점포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 인근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얘기다.박경순 웨스텀돔부동산 부장은 “라페스타가 초기엔 주목을 끌었지만 웨스턴돔이 등장해 라페스타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며 “최근에는 고객들이 라페스타보다는 웨스턴돔쪽을 많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웨스턴돔은 1천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 주차공간을 갖추고 컨셉 자체를 고급화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아울러 라페스타의 주 고객이 10대,20대 등으로 구매력이 비교적 낮은 반면 웨스턴돔은 가족단위 고객 유치를 위해 주로 고급 프랜차이즈업소 유치에 중점을 뒀다.현재까지는 이러한 고급화 전략이 맞아떨어진 모습이다.또 거리형 몰인 라페스타와 달리 천장이 돔으로 가려져 있어 날씨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웨스턴돔을 자주 찾는다는 주부 박지영씨는 “웨스턴돔은 주차도 편하고 돔으로 천장이 가려져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이용하는 데 편하다”며 “아기를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쇼핑과 식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란 웨스턴돔 사업지원본부 대리는 “20,30대등 비교적 구매력이 높은 고객들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며 “고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시설을 확충하는 등 라페스타의 단점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고객 배려하고 ’문화 공간’ 지향해야

웨스턴돔으로 일산 상권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라페스타 평일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중심 통로에 자리 잡은 커피전문점에도 손님이 뜸했다.주얼리샵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웨스턴돔이 생기고 나서는 대체적으로 장사가 안되고 있어 문을 닫는 곳도 많고 주인들이 많이 바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처럼 취재 도중 만난 라페스타의 상당수 상인들은 은연 중에 라페스타의 침체와 한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만의 영업전략을 내세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하지만 왠지 이전의 아성을 되찾기는 녹록지 않아 보였다.

물론 라페스타가 그동안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일산 문화의 중심 역할도 해 온 건 사실이다.그러나 지금은 ‘문화의 거리’란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따라서 전문가들은 라페스타가 지금부터라도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축제’라는 뜻의 ‘라페스타’란 이름처럼,축제가 있는 문화 공간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고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상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결국엔 실패한 쇼핑몰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앤] 이기주 기자 2kafk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