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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정원… 잡초 뽑아야” 마지막 구조조정 칼 휘둘러

‘잘라도 잘라도 끝이 없다?’

세계최대 종합식품회사 네슬레(Nestl?) CEO 겸 회장 피터 브라벡(Peter Brabeck·62)은 자신의 역할을 정원사에 비유한다.

“회사는 정원과 같다. (아름답게 유지하려면) 항상 잡초를 제거해 줘야 한다.”

CEO로 재직한 지난 10년간 그는 이런 원칙에 따라 비만증에 걸린 식품업계의 거인을 보다 작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브라벡은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내년 4월 CEO 퇴임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동기는 퇴임을 앞둔 CEO의 ‘마지막 열정’과 최대주주로 부상한 미국 투자자들의 압력.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브라벡이 퇴임 이전에 10년간의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40년 전통의 네슬레는 1866년 설립이래 가장 글로벌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국내 매출 비율이 2%밖에 안 된다. 전 세계 100여개 국에 26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경영진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현지의 법적·종교적·문화적 관행을 존중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자회사는 1200개, 브랜드는 변종을 포함해 총 13만개에 달한다. 브랜드 중 30%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도 매출 786억달러(약 72조원)로 2위 유니레버(498억달러)를 큰 차이로 따돌렸지만, ‘돈벌이’에 이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각 회사의 식품부문만을 놓고 본 영업이익률에서 네슬레는 13.5%로 7위를 기록했다. 펩시코(18.7%), 크래프트(Kraft·15.3%) 등 매출 규모가 절반에 불과한 경쟁자들에 크게 뒤졌다.

네슬레의 사업영역은 회사가 밝히듯 사실상 모든 식음료의 범주를 포함한다. 초콜릿과 커피에서부터 생수·냉동식품·유아식·애완동물 먹이까지 매우 다양하다.

회사가 워낙 크다 보니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매년 새로운 초콜릿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고, 이를 다시 없애는 일이 반복됐다. 비효율적인 운영도 문제였다. 스위스 소재 사탕 공장들이 각각 설탕을 따로 주문한다든지, 인건비가 높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같은 제품의 생산 단가가 더 높은 상황이 지속되는 식이었다.

브라벡은 지난 10년간 이런 문제들을 많이 개선했지만, 임기를 얼마 안 남기고 또 다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35% 지분율을 확보해 대주주로 떠오른 미국 투자자들의 압박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브라벡은 이에 대해 “100미터를 10초에 달리는 육상선수를 훈련시켜 9.8초로 단축시키는 게 내 임무”라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아이스크림 판매원으로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브라벡은 구조조정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왔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빈의 국제무역대를 졸업하고 24세에 호주의 네슬레 자회사에서 아이스크림 배달 영업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브라벡은 이후 칠레·에콰도르·베네수엘라에서 20년 가까이 현지 지사장으로 근무하는 등 국제 감각을 두루 쌓았다.

1997년 CEO 선임 당시 일화가 있다. 마케팅 담당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던 브라벡이 당시 CEO 헬무트 마우허(Helmut Maucher)를 만났다. 브라벡은 본부 근무를 마다하고 현장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해오던 차였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마우허는 “왜 그럽니까? 도대체 원하는 게 뭐죠?”라고 물었고, 브라벡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 자리입니다.” 브라벡은 몇 개월 뒤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된 동시에 CEO에 올랐다. 취임한 그는 “회사에서 내 역할은 자기만족(complacency)과 싸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3년 만에 원가절감으로 수익을 12% 높였고, 5년 만에 이익이 나지 않는 공장 156개를 정리했다. 그가 10년 동안 통폐합한 브랜드는 수천개에 이른다. 무조건 감축만 한 건 아니었다. 생수와 애완동물 먹이처럼 향후 수익이 기대되는 분야에 집중투자했다. ‘글로브(Globe)’라고 불리는 IT 통합 시스템을 도입해 지사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해결했다. 총 5종에 이르던 이메일 시스템, 20종의 회계·재고 관련 소프트웨어로 인한 보고체계의 혼선을 개선한 것이다.

브라벡은 2002년에 알프스 마테호른을 등정한 열혈 산악가이다. 3명의 자녀를 둔 그는 칠레인 부인과 스페인어로 대화하고, 주말에는 할리데이비슨을 탄다. 무늬 없는 셔츠에 회색 양복을 즐겨 입는다. 그는 현재 ‘가치 파괴자(value destroyers)’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일종의 ‘살생부’를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실적이 저조한 사업 분야를 나열한 목록으로, 매달 임원회의에서 실적을 점검한다.

브라벡은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제3세계의 노동착취를 가속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는 꿈쩍도 않는다. “소비자의 기대와 사회 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경영자의 임무는 이런 외부 환경과 보조를 맞춰 회사를 변화시켜나가는 것입니다.”

40년을 네슬레에서 근무한 그의 CEO 임기는 내년 4월 끝난다.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 살생부에 오른 임원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