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미터급 직경의 미세한 용기
기능성 음료·화장품·섬유·복사지서 차세대 디스플레이까지 용도 무궁무진
인체내 암세포만 정확하게 공격하는‘스텔스 리포좀’의약품도 개발중

“살아서 장(腸)까지!”

한 요구르트의 광고 카피다. 여리디 여린 유산균이 엄청나게 독한 위산을 뚫고 장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정한 유효 성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마이크로 크기의 용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을 마이크로 캡슐(microcapsule)이라 한다. 마이크로 캡슐은 기능성 웰빙식품부터, 향기제품, 차세대 의약품, 그리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능성 보호막’ 마이크로 캡슐이 펼쳐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차세대 기능성 보호막

마이크로 캡슐이란 직경이 수 ㎛(마이크로미터)에서 수백 ㎛ 사이에 불과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용기를 말한다. 불안정하거나 지속성이 약한 유효성분을 고분자, 세라믹 또는 유무기 복합제로 둘러싸거나, 코팅하는 기술이 마이크로 캡슐의 근본 기술이다.

‘수퍼비타민 E’라는 별명을 지닌 아스타잔틴은 일반 비타민E가 갖고 있는 항(抗)산화력의 1000배에 달하는 효능을 갖고 있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쉽게 산화돼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효용성이 떨어져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아스타잔틴은 마이크로 캡슐을 만나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이크로 캡슐이 유효성분을 감싸 외부환경으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살아서 장까지’ 작용하는 캡슐형 요구르트의 마이크로 캡슐이 강한 산성인 위산에 견디는 것처럼 장에서도 녹지 않으면 유산균은 결국 체내에서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고 배출돼버릴 것이다. 이 때문에 위산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다가 장에 도착하면, 장의 pH(산성도 기준) 조건에서만 녹아버리는 마이크로 캡슐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크로 캡슐은 방출제어 시스템으로 내부 물질의 방출 위치와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 원하는 외부조건하에서만 효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조 공정 중이나 평상시에는 안정성을 유지하다가, 실제 사용할 때 외부자극에 의해서만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캡슐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압력·pH·온도·빛 등 특정 외부 조건에만 민감하게 반응, 캡슐이 파괴·용해되도록 하는 캡슐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마이크로 캡슐은 1940년대에 약물전달 시스템(DDS·drug delivery system)에서 정립됐으나, 처음 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1950년대 미국 NCR사가 개발한 감압복사지(pressure sensitive recording paper)를 통해서다.

감압복사지란 압력이 주어지면 캡슐 속에 담긴 잉크가 터져 나와 인쇄가 되는 복사지로 신용카드 영수증에 사용되는 먹지가 필요 없는 복사지가 대표적 예다. NCR사는 원래 발색제(color former)를 녹인 기름 미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이크로 캡슐 기술을 도입했지만, 외부압력에 따라 염료의 방출이 조절되는 성질이 발견돼, 감압 복사지가 탄생하게 됐다.

이후 마이크로 캡슐을 다양한 일상 생활용품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1980년대에 와서야 일본이 방향·탈취·항균 등 각종 기능성 물질을 담은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기능성 섬유 소재의 상용화에 성공해 각광을 받았다.

현재 마이크로 캡슐 관련 연구는 새로운 제조법 개발과 함께 기능성 마이크로 캡슐을 새로운 분야에 확대 적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캡슐 재료에 표적 지향성 같은 특수 기능성까지 담아 응용범위를 확대하고, 캡슐 크기를 더 미세화하여 나노 캡슐화 하는 방향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 음료부터 의복까지 일상생활 응용분야 무한

현재 마이크로 캡슐은 기능성 음료, 화장품, 세정용품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양복, 속옷, 섬유유연제 등의 섬유제품, 접착제, 전자제품, 복사지 등 생활산업 전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을 개선하기 위한 기능성 섬유소재, 알레르기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아이용 내의, 파자마, 체육복, 침구용품 등에도 적용된다.

국내 기능성 화장품 개발업체인 코스맥스는 마이크로 캡슐 기술을 이용하여 공기와의 접촉을 통한 산화에 불안정한 코엔자임 Q10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수분이나 공기에 불안정한 기능성 성분을 마이크로캡슐에 담으면 평소에는 캡슐 안에서 안정되게 유지되다가 피부에 바를 때 마찰에 의해 파괴, 기능성 성분이 방출되도록 하는 원리다.

마이크로 캡슐은 각종 향기를 발산하는 분자를 캡슐에 담아 효과가 장기간 지속되게 하거나 마찰 등 외부자극에 의해 유효성분이 순간적으로 방출되도록 하는 향기 제품에도 활용된다. LG화학은 향기치료(aromatherapy)에 사용되고 있는 향을 마이크로 캡슐화해 벽지의 표면 처리층과 인쇄층에 첨가한 방향(芳香)성 벽지를 출시했다. 이 방향성 마이크로 캡슐은 장기간 미세한 향을 발산하고, 표면에 마찰이 있으면 캡슐이 터지면서 집안의 냄새 제거, 스트레스 해소, 안정작용, 청량감 등의 기능을 한다. 이 밖에도 자동차용 접착제, 환경친화형 첨단 살충제, 각종 약재 및 애완견용 항균 위생제품에도 활용되는 등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 첨단 약물전달 시스템의
핵심 기반기술

벨기에 겐트대(Ghent University)와 루벵 가톨릭대(University Catholique de Louvain) 연구진은 인체에 주입되면 몇 주 혹은 몇 개월 동안 하루 분량의 약성분과 백신을 정확하게 체내에 방출하는 ‘자폭 마이크로 캡슐’(self-exploding microcapsules)을 개발했다. 이러한 약물 전달 시스템은 시차를 두고 수차례 또는 지속적으로 투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매우 유용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시스템이 몇몇 백신의 주사방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차를 두고 2~3회 접종이 필요한 백신의 경우나 일정한 간격으로 약물투여가 필요한 경우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약물 투여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캡슐 기술은 인체 내 효소의 공격을 피하면서, 열 추적 방식으로 암세포에 도달,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약물전달 시스템, 일명 스텔스 리포좀(stealth liposome)을 활용한 의약품 개발에도 적용된다. 특수 표면처리한 캡슐은 백혈구, 세균분해효소 등 면역체계로부터의 공격에서 항암 약물을 보호하며, 특정온도에만 녹게 하거나 목표지점에서만 항원·항체반응을 일으켜 캡슐이 터지도록 해, 표적부위에서만 항암약물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텔스 리포좀 기술은 의약 선진국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제약이 암 퇴치를 위해 온도감응성 항암제, 미사일 항암제 등 2건의 기술을 개발 중이다.

마이크로 캡슐에서 더 나아가 나노사이즈의 캡슐을 사용, ‘유도탄’처럼 목표물인 암세포에 정확하게 전달, 암세포만을 제거하는 표적 항암제의 개발에도 핵심기술로 사용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송시영 교수가 개발한 ‘자성 나노캡슐 항암제’는 암세포 조직에 자성(磁性)을 걸어놓고, 자성을 가진 항암나노캡슐을 끌어당기게 하는 것으로, 나노캡슐이 일반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캡슐상태로 종양에 정확하게 전달돼 암세포만 공격, 제거하는 신개념의 항암치료제다.

마이크로 캡슐은 미래형 디스플레이인 전자종이의 핵심 소재 기술로도 응용된다. 전자종이란 구부릴 수 있는 유연한 필름 위에 문자나 그래픽 등을 쓰거나 지울 수 있어, 기존의 인쇄매체와 평판디스플레이의 장점을 접목시킨 미래형 디스플레이 매체이다. 1996년 미국의 E-Ink사에서는 특정 전하(電荷)를 띤 특정색의 전자잉크미립자와 반대 전하를 띤 다른 색의 잉크미립자를 마이크로캡슐에 담아 기존의 전자잉크 미립자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전자종이 상업화의 길을 열었다.

마이크로 캡슐기술은 생활용품 산업에서부터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 모두에 적용가능한 원천소재 기술이다. 그 활용가능성은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기초기술, 마이크로 캡슐을 정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