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 빌딩. 한 회의실에 들어서자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회의실은 빌딩 중앙통제 시스템에 등록된 회의 스케줄에 따라 회의 시작 5분 전부터 자동으로 에어컨이 켜진다. 회의가 끝나는 시간은 등록돼 있지 않지만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를 뜨면, 에어컨과 전등이 다 꺼진다. 직원들의 신분증(ID카드)에 부착된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전파식별)를 통해 회의실이 빈 것을 파악한 중앙통제 시스템이 전원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보안 시스템도 첨단이다. 극비 회의를 진행한다면 회의실 창문에 인위적인 전파를 쏘아 창문을 진동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창문 떨림을 감지하는 레이저 도청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사람보다 더 똑똑한 첨단 ‘지능형 빌딩(intelligent building)’들이 건물 문화를 바꾸고 있다. 중앙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지능형 빌딩 시스템’은 출입 보안이나 주차 관리, 온도 조절 같은 ‘초보’적인 단계를 넘어서 빌딩 내 공기의 흐름까지 완벽하게 제어하고, 지열(地熱)이나 태양열을 이용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사람 출입따라 에어컨·전등 ‘자동’
레이저도청 막는 첨단 보안기능도
쾌적한 환경·효율적 관리 효과적

상암동 IT빌딩 ‘누리꿈 스퀘어’
무선랜·RFID 통한 첨단 기반시설
태양광·지열 에너지로 냉난방까지 

■ 지능형 빌딩이란 건물·사무자동화, 정보통신이 완벽하게 조화된 빌딩

지능형 빌딩이라는 개념은 미국 부동산 회사인 UTBS(United Technologies Building System)가 1984년 코네티컷(Connecticut)주 하트퍼드(Hartford)에 시티 플레이스 빌딩을 건설하면서 처음 도입했다. ‘스마트빌딩(smart building)’도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미국의 OCS(Office Communication System)사는 이를 ‘냉난방, 조명, 전력 시스템을 통해 운영이 자동화되고, 자동 화재감지장치, 보안경비, 정보통신망의 기능이 첨가된 건물’이라고 정의했다. 최근엔 건물자동화, 사무자동화, 정보통신이 완벽하게 조화된 빌딩을 일컫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웬만한 도시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는 고층 대형 빌딩에는 철저한 보안 및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이에 따라 건물 스스로가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형 빌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능형 빌딩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지능형 빌딩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세심한 전략과 계획에 의해 탄생한다. 건물주와 시공업체 간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맞춤식 설계가 이뤄지고, 건물의 성격과 운영 목적에 따른 맞춤형 사무자동화 및 정보통신 시스템을 설계해 배치하게 된다. 빌딩 전체의 상태와 환경을 스스로 감지해 적시적소에 대응하는 자동 제어 시스템도 기본 구성요소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高) 빌딩인 대만의 타이베이 101빌딩(508m)에는 독일 지멘스가 구축한 빌딩자동화 제어의 통합 솔루션이 도입돼 있고, 우리나라에도 서울 역삼동의 포스코 사옥, 강남파이낸스센터(옛 스타타워), GS타워 등에 지능형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제2청사와 전라북도청사, 외교부 청사, 국세청 등 정부기관 건물들도 지능형 빌딩으로 건립되고 있다.

지능형 빌딩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 중 하나는 안전성이다. ID카드를 통한 출입 통제 장치뿐 아니라 지문인식, 정맥인식 등 생체인식 시스템, 또 출입자들의 가방이나 소포 등을 점검하는 X-레이 검색대도 지능형 빌딩의 필수 장치다.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쾌적한 실내환경과 효율적인 빌딩관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빛의 밝기 및 온도·습도 등을 상시 감지함으로써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자동으로 환기가 되고, 건조하면 가습 기능이 작동될 뿐 아니라, 항상 적정 온도가 유지돼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사무실 내 밝기도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자연 채광의 덕을 볼 수 있는 창문 가까이에는 조명 밝기를 약하게 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무선통신, 광대역 통신망 등 초고속 정보통신 기술을 적용해 빌딩 전체의 각종 설비가 원격으로 제어되며 유기적으로 연동될 수 있는 것도 기본이다.

입주자들의 정보도 RFID 카드를 통해 제어됨으로써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건물 관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서초동 삼성타운은 RFID 카드를 이용해 실내 인구밀도를 측정함으로써 휴게실이나 사무실 등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환기량을 늘리는 등 자동 공조 시스템이 작동한다. 빌딩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반 빌딩에 비해 초기 투자비는 총 건축비의 5~10% 정도 추가로 들게 되지만 냉난방, 전기 수도 등 에너지 분야에서 20%, 빌딩 자동화 시설의 운용 및 유지 분야에서 20%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사무 생산성은 20~30% 향상되고, 고가의 첨단 시설 및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등 직·간접적 경제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국내선 2006년부터 ‘지능형 건축물 인증제도’시행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공조(空調) 및 발전 시스템을 도입해 비용 효율을 높이는 건물도 등장하고 있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이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내에 건립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콤플렉스 ‘누리꿈 스퀘어(NURiTKUM Square)’는 세계적인 IT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목표에 걸맞게 무선랜과 통합배선시스템을 통한 첨단 사무환경, RFID를 통한 위치정보시스템, 생체인식보안시스템 등의 기반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돋보이는 것은 태양열, 태양광, 지열(地熱) 등 자연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건물은 지하 200m까지 굴착해 4계절 내내 15도 정도를 유지하는 지하수를 퍼올려 겨울에는 난방용, 여름에는 냉방용으로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또 공기 순환 방식도 대형 빌딩이 일반적으로 채용하는 건물 꼭대기에서 급기(給氣)·배기를 동시에 행하는 방식에서 탈피, 급기는 바닥에서, 배기는 천장에서 이뤄지는 순환형을 채택했다. 이에 더해 바닥에서 공급된 공기로 건물 각 층의 창문에 공기 외벽을 만드는 에어 배리어(air barrier) 시스템을 구축, 에너지 낭비를 막고, 건물에 작용하는 각종 부하도 줄이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건설작업을 맡고 있는 삼성물산 노석중 팀장은 “바닥공조 시스템, 지열설비, 태양열설비 등을 통해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건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자동 제어에 의한 지능형빌딩 1등급뿐 아니라 친환경, 대체에너지 사용 등으로 더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 8월부터 ‘지능형 건축물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앞으로는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고(高)부가가치 건설시장을 창출하고, 유비쿼터스 기술이 융합된 첨단 건축을 통해 U-City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지능형 빌딩 활용도는 운영자의 설비 이해도 및 교육 부족 등의 원인으로 5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지능형빌딩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인 지멘스 빌딩자동화사업부 최의중 부장은 “앞으로 지능형 빌딩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있는 기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면서, “담당자가 철저한 이론·실기 교육을 받고 시스템 운영 능력을 몸에 익히면, 지금 당장 빌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